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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May 08. 2023

쓰레기 속에서 발견한 사랑

한 달 한 권 그림책모임 5월의 책 윌리엄스타이그 ’ 티프키 두프키의 어

윌리엄 스타이그 작가는 카투니스트로 활동하다 노년기가 되어서야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관조의 시선과 여유를 윌리엄 스타이그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필을 보기 전까지는 이 작가가 나이가 있는 분이라는 걸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특유의 재치와 예측 불가능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은 외삼촌이 물려준 동화책 상자에서  읽게 된 ‘치과의사 도소토 선생님’ ,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편에서였다. 모든 이야기가 가진 쫀득한 구성과 거친 듯 균형 잡힌 경쾌한 펜선에서 탄탄한 내공이 느껴졌다.


‘’ 이분은 보통이 아닌 분이야!‘’

도대체 이분은 누굴까? 하며 덕질을 시작했는데,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월리엄 스타이그 작가님의 작품이 쏟아졌다. 알고 보니 애니메이션 슈렉의 원작자였다.


여러 가지 수식어를 떼고 보더라도, 윌리엄 스타이그 작가의 작품이 가진 이야기에 나는 관심이 많다.


짧은 분량의 이야기 속에 밀도 높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흐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다 읽고 나면 납득이 가는 스토리. 그 경쾌한 이야기 변주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 읽어 내려가고 있다.


윌리엄 스타이그 작가의 이번 그림책 ‘티프키 두프키의 어느 멋진 날’은 원제는 티프키 두프키 라는 쓰레기 청소부의 이름이다. 이 청년이 쓰레기 청소를 하다가 사랑을 만날 거라는 점괴를 오리 아줌마에게 듣고 이후에 발견한 에메랄드 목걸이의 주인을 찾아 하루 동안 떠나는 모험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초반부에 등장하는 쓰레기 더미를 보며, 나는 묘한  즐거움과 황홀경을 느꼈는데, 내가 예전에 쓴 쓰레기를 관찰한 시가 떠올라서였다. 쓰레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약간의 슬픔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쓰레기와 다름없이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과, 쓰레기를 뒤져야 하는 본인의 처지를 다소 비관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쓰레기 안에서도 새로운 쓸모를 찾아 일어나려는 의지적 행동을 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쓰레기를 뒤져본 적은 거의 없지만 중고물건을 구입하다 보면 가끔 그런 후줄해진 운동복 같은 기분이 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더러운 것쯤이야. 닦으면 돼지.’라고 걸린 마음을 넘겨버린다.


이 물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쓸모가 있다면 잘 쓰면 된다. 더욱이 지금 같이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지구에 기후위기가 닥쳤다면야, 헌물건을 다시 쓰는 것보다 더한 환경운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티프키 두프키는 그런 의미에서 헌 물건을 쓰는 일이나, 자신이 청소일을 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을 뿐 아니라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쓰레기에서 찾아낸 물건을 새로 조합해서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 쓰는 것을 자랑한다. 티프키 두프키의 자기소개를 읽으며 그에게 약간의 개인적인 애정을 느꼈다.


오리 아줌마의 점괘와 오리아줌마와 앙숙인 암탉의 점괘. 두 번의 점괘로 티프키 두프키의 삶이 오락가락한다. 사랑이라는 일생일생의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점괘에 의지한다니,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도 비행기를 보며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샌다거나, 실내화에 하트표시를 그리고 지워지도록 걸어 다니고, 나뭇잎을 뜯어서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세어보았다. 사랑점을 쳐봤자, 상대방에게 가서 한 번이라도 말 붙이고 웃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겠지만 그때는 차마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그런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윌리엄스타이그 작가의 그림책은 이야기의 밀도도 높고 속도도 빠르다. 티프키 두프키는 오리 아줌마의 점괘에 따라 목걸이의 주인을 찾아 나서고, 그 길에서 만난 암탉이 쏘아 올린 화살을 쫓아 삐뚤빼뚤 가며 허수아비 여인과 악기를 연주하는고양이, 의문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이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인데. 사랑을 하기 이전에 사랑하고 싶은, 반하는 대상을 찾는 과정도 참으로 길고 길다. 운명이라고 여기는 그 대상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어린 시절의 나도 그런 사랑을 꿈꾸며 기도했다.


제발 사랑을 만나게 해달라고.


사랑은 한참 뒤 그런 기도를 한 것조차 잊었을 때 갑자기 찾아왔다. 비뚤어진 화살에 길을 잃고 정신을 잃고 잠들었을 때 배고프고 지쳤을 때 나타난 사람을 허겁지겁 만났다.


티프키 두프키가 만난 여인은 등장부터 ‘뱀’을 조련하는 여인이기 때문에 허수아비 여인과 키스를 하는 망상에 빠진 ‘티프키 두프키’를  뱀으로 꽉 옭아매며 나타난다. 그 꽉 안는다고 착각했던, 그 뱀의 힘에 ‘티프키 두프키’는 꿈에서 놀라며 눈을 뜬다.

눈 앞에는 꿈에서 키스를 하던 허수아비 여인이 아닌, 씩씩한 뱀조련사 여인이 서 있다. 그녀는 아버지가 청소부이며 ‘티프키 두프키’가 목에 건 에메랄드 목걸이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운명인 걸까. 정말 그 목걸이의 주인이긴 한 걸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뱀조련사 여인이 나는 다소 공포스럽기도 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걸까. 꽉 안아주었던 뱀의 힘에 꿈에서 깬 것처럼, 어떤 구속을 통해 ‘티프키 두프키’는 현실에서 앞으로 뱀조련사 여인 에스트렐라와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랑을 쫓는 티프키 두프키 모험의 끝을 보며, 신데렐라는 그래서 왕자와 결혼했습니다와 같은 엔딩처럼 다소 싸함을 느낀다. 이 이야기의 해피엔딩은 현재의 사랑을 찾은 것이지만, 이야기 한 편이 끝나고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티프키 두프키의 2편을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 보며 웃음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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