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뭐라도 하기로 한지 1일째.
어제 계획했던 미뤄둔 당근에 안 쓰는 물건들 올리기를 실행했다.
우선 아기 옷장, 신발장 정리부터.
사이즈가 작아졌음에도 아기가 너무 좋아해서 처분하지 못하던 것들,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핑크홀릭인 딸내미가 입기 거부한 것들까지.
비움의 미학을 곱씹으며 걸러냈다. '몇 개 없네?' 싶었는데 다 정리하고 보니 산더미.
콜라를 딱 한 모금만 마신 듯, 감질나게 아주 조금 속이 시원해졌다.
나의 당근 퀘스트는 이제 시작이었다. 당근을 통해 소비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당근에 물건을 팔아본다. 성공적인 판매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 필요했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고, 브랜드명부터 사이즈, 구매처, 제품 상태에 대한 상세 설명까지. 게시물 하나 올리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귀찮아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올랐지만 고작 어제 다짐한 오늘의 할 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거실에 잔뜩 펼쳐놓고,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 찍느라 이상한 자세로 앉아 게시글을 올리다 보니, 오전이 다 지나버렸다.
그때, 첫 채팅이 왔다. 내가 올린 제품 중 무려 4개나 구매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얼떨떨했다. 아니, 사실 설렜다. 당근이 뭐라고 심장이 나대냐 하시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성취감, 효능감이 반갑고, 또 좋았다. 심지어 금전적인 소득도 있었다. 이보다 더 정직한 수익이 어디 또 있을까? 택배를 부치러 가는 발걸음이 바빴다. 들떠서.
신기하고, 다행이다. 아무것도 안 했더니 아무것도 안 됐듯이, 뭐라도 하니 뭐라도 됐다. 내 손으로 게시물을 올렸고, 그 게시물로 판매를 했고, 돈을 벌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인데, 내가 참 무지했다. 큰돈을 버는 큰 일을 해야 '능력'이 있다는 생각에, 패배자여야 하는 줄 만 알았다. 능력이 '있음'에,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나도 능력 있는 사람이라 자부해도 되는 걸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뭐 저런 걸로'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들의 시선에서는, 그들의 평가기준에서 나는 한참 미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작은 실천이 나에게는 큰 용기고, 노력임에, 어렵지만 나 스스로를 언제나처럼 비난하기보다 조금 칭찬해주고 싶다.
첫 술에 배부르지 말자.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남은 당근 게시물들을 올리고, 블로그 글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