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주 가파도 국제레지던시 살룻 수파수티웨치 예술세계에 관한 글
Here, I Stand For You. [1]
- 글. 독립큐레이터 홍희진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를 잃은 후 쓴 『애도 일기』에서 슬픔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줄어들지 않는 것, 소멸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것. 카오스적인 것, 종잡을 수 없는 거.
그러니까 순간들(슬픔의 순간/새에 대한 사랑의 순간),
그것이 일어났던 그 순간처럼 지금 여기에서도 똑같이 생생한 순간들.”
-1977년 11월 29일
태초와 오늘의 물이 흐른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공간은 텅 비어있지 않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것들로 공간은 가득 차 있다. 매일 죽음이 일어나고 생명은 순환하여 다음 세대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바다거북은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와 죽는다. 죽음은 어쩌면 새로운 생명을 향한 전 단계이다. 주어진 명(命)을 다 살던, 살지 못해 순환의 금을 밟은 여러 죽음들은 당대와 후대를 거쳐 슬픔의 세속이 일어난다. 슬픔의 시간은 완결되지 않은 채 카오스 속 어느 공간에 존속한다. 모든 인간은 한 번 이상의 죽음에 관해 이해를 강요받으며 슬픔을 몸으로 겪는 시간을 거친다. 한 세대에서 해소되지 못한 슬픔은 어떻게 대대로 애도되는가? 저 너머의 공간으로 가버린 죽은 이들의 혼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가? 이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은 무엇인가? 이 글은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와 제주도사이 평평한 섬인 가파도에 위치한 국제레지던시에 미디어아티스트 살룻 수파수티웨치(Saroot Supasuthivech)가 약 3개월간 체류를 하며 제작해 온 일부 작업들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살펴보는 글이다.
한국에 두 번째 체류하는 작가는 크게 세 가지 관심사를 갖고 작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귀양’이다. 제주도의 ‘원고양신풀이’라는 귀양풀이는 서귀포 지역 민속에서 나타나며, ‘장례 전반에서 걸쳐 생길 수 있는 부정에 의탁하여 제의를 받아먹는 신’인 귀양을 풀어주며 집에서 이뤄지는 의례이다. 이 때 영혼을 저승까지 잘 모셔달라는 질침[2]을 함께 하기도 한다.[3] 이렇게 신을 대접하는 풍속을 가진 제주도에서는 죽은 혼을 바다 깊은 곳인 천국으로 안내하는 수호자인 바다거북이 등장하는 용왕 전설도 있다. 귀향 본능을 가진 바다거북은 생의 시작과 끝점을 일치시키듯 자신의 탄생 장소와 죽음 장소 좌표를 맞춘다. 작가의 두 번째 관심사가 바로 영혼 수호자이자 귀향의 상징인 바다거북이다. 이 상징동물은 지금도 제주의 대규모[4] 죽음과 연관이 있는데, 작가의 세 번째 관심사가 바로 제주 4·3 사건이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내 정의를 그대로 담으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주민들이 억울하게 대규모로 사라진 사건이다.
이러한 관심사들로 작가가 만들고 있는 이번 영상작품 <가족에게 묶인 영혼 : 귀환(Spirits Bound to Family : Returning)>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루 스크린과 암흑의 공간이 번갈아 호흡하며 마치 샘물의 소리인 듯 생기 가득한 찰랑거리는 소리들로 시작한다. 영상 초반에 등장하는 3D스캐닝의 가파도 해변가 가상 풍경은 새의 눈(Bird eye, 영적인 시점) 관점으로 멀리에서부터 가까이 현실의 풍경과 중첩되면서 땅으로 관객을 데려온다. 가파도는 인접한 제주도 본 섬로부터 떨어져 나온 평평하고 작은 영토이다. 화면의 오른쪽은 강과 같이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있고 왼쪽 가파도에서 걸어 나오는 살아있는 몸(무용수)은 종이 무구인 기메[5]를 들고 차분히 바다 너머 영혼을 부른다. 제주 굿에 등장하는 기메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창문으로 종이 재질로 만들어 바람을 머금는 무구로 사용하는데, 이 작품 속에서는 마치 몸의 연장과 같이 길게 늘어트려 여러 종이 줄기들이 바다 바람 길에 따라 몸의 언어를 더해 온 우주의 사물들과 소통을 펼치도록 돕고 있다. 점차적으로 격렬해지는 징과 종소리는 공기를 가르며 휘날리는 기메를 통해 영혼을 부르는 혹은 안내하는 매개자 무용수의 몸 동작을 이끈다. 몸은 온 우주의 사물들 연결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 예측할 수 없는 공기와 날씨 그리고 몸의 연결은 바다를 향해 몸의 언어를 형성하면서 멀리 나가있는 혼들과 연결 지어 춤을 춘다. 제주도 민속 의례방식인 귀양풀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제주도 4.3 사건의 억울한 죽음으로 위로받지 못한 혼들을 생각하며 산산 조각난 여러 시공간들과의 접속을 시도한다.
몸은 기(氣)의 흐름이라는 차크라(Chakra)를 지니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과 몸의 주변부까지 몸이라는 차크라 세계를 생각해볼 때 온 우주의 연결은 몸을 통해서만 소통의 영적인 연결이 가능하다. 예(禮)를 갖추어 바다를 향해 인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연결접속의 시간을 표기하듯 예를 갖춘다. ‘예’자의 초문(初文)은 북을 상징하는데 규범화된 춤이 ‘예의’(禮儀)이다. 곧 ‘예의는 원시 춤의 ‘화석’으로 원시 춤의 상징이 예의로 나타난 것이다.[6] 최초의 사회인 춤으로부터 ‘세계의 영도(point zéro)인 몸’은 소통술로서 주축이다. 작가가 온 우주의 소통 기준이 되어주는 몸을 담아 만든 이 영상은 다시 블루 스크린으로 마무리 지으며 끝이 난다. 영상의 시작과 끝을 블루스크린이라는 틀 거리로 설정하여 작가는 관객을 들어가고 나오게 한다. 이것은 작가의 시각적 장치이기도 한데, 영상이 줄곧 흑백화면인 것을 보면 관객은 분명 작가가 설정한 어느 시간대의 열린 체계 속에 들어갔던 것이다. 다른 곳들과 중첩된 시간들로 설정되어 실재의 시공간들을 만들어내고 가상공간을 나타내는 블루 스크린으로 닫히는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지금과 태초의 일들을 가상의 매듭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구조를 연출하여 헤테로토피아를 유토피아로 전복시키는 기술을 펼친다. 현실에 없는 공간인 유토피아로 관객을 다시 데려다놓는다. 아감벤은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인 이 유토피아의 공간을 ‘실제 장소를 갖지 않는 배치’라고 일컬으며, ‘헤테로토피아들 사이에는 아마도 거울이라는, 어떤 혼합된, 중간의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거울, 그것은 유토피아다.’라고 두 공간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공통문화로서 죽음은 모든 문화에서 고유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생(生)과 사(死)의 세계, 영적인 세계와의 소통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의 예술세계는 이런 죽음과 연관된 공간 철학으로 헤테로폴로지 과학을 떠오르게 한다. 푸코는 헤테로폴로지 과학에 대해서 몇 가지 원리를 설명하는데[7], 모든 사회는 헤테로토피아들을 구성하며, 양립 불가능한 공간들을 여러 개 중첩시켜 하나의 장소에 동일한 위치 값을 가진다. 인간 개인의 기억 정도를 넘어서 민족, 문화 맥락의 상호텍스트성을 띄는 공동체의 기억, 사건에 대한 반작용, 기억 저장과 소환의 방식들로 헤테로토피아는 새로 조직되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실제의 한 장소에서 여러 공간의 다양체를 이루며 실재한다. 구체적인 그 장소를 둘러싸고 여러 접속 요소들과 차원을 달리하며 시간을 분할하고, 동시에 연결 지어지고 끊기기를 반복하며, 시시각각 열고 닫는 운동을 펼친다. 이러한 원리들을 상기하게 하는 약 6분의 이번 영상 작품은 작가의 작품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레드 라이트(Red Light), 블루 라이트(Blue Light), 그린 라이트(Green Light)’로 기술적 토대(Technical support)를 나타내고 있는데, 레드 라이트는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분노를 지니고 있는(Dark & Anger) 가려진 진실이나 사건을, 블루 라이트는 우화나 민요를 통해 사실이나 역사를(Fact & History),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미지수를 그린 라이트로 간주한다. 필자는 작가가 창안한 이 작품론을 ‘RGB론’이라고 칭하며, 그린 라이트를 전미래[8] 시점에서 작품으로 포획하지 못한 잠재소의 공간으로 생각한다. 이 세 가지 라이트의 가산혼합은 전시장에서 작동되어, 가려진 역사,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할 진실들을 우화, 민요, 동화, 민속 등 낯익은 위치로 전환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영상 설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작품들은 ‘바르게 위치하지 않은 것들’에 관해 몸과 연결된 중첩의 공간들로 이의제기 중이다. 작가는 가파도 해안가에서 죽은 바다거북을 발견한다. 영혼의 안내자인 바다거북은 스스로를 어디에 위치해두었는지, 바다 건너 가파도에 도착한 작가와 바다로부터 돌아와 죽은 바다거북은 어떠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그들은 무엇을 기억해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잊고 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아무것도 명료한 것은 없다.
[1] 대한민국 록밴드 ‘넥스트’(N.EX.T)의 1997년 싱글 앨범 수록곡 <Here, I Stand For You>(신해철 작사·작곡)를 본 글의 제목으로 사용한다. 이 제목은 ‘여기 있다.’라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뜻과 ‘당신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함께 담겨져 있다. 올해는 가수 신해철 사망 10주년의 해이고 그의 철학과 음악을 기억하는 많은 이가 여러 형태로 그를 추모한다. 작가의 작업세계에 비춰 필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의식해본다. 제목을 통해 그와 연결하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시간, 즉 ‘유크로니아(uchronie)’에 접속을 시도한다. 이 접속에는 단어 나열로 형성된 추상의 공간만 있을 뿐 실재하는 장소는 없다.
[2] 제주도의 맞이굿에서, 신(神)이 찾아오는 길을 치워 닦는 의식(儀式).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검색일 2024년 10월 31일)
[3] https://seogwipo.grandculture.net/seogwipo/toc/GC04601682(검색일 2024년 10월 31일)
[4] 작가는 필자와의 인터뷰(2024.10.19.)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추상적인 표현인 ‘대규모’, ‘수많은’을 뜻하는 ‘a lot’으로 희생자를 어림잡아 지칭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대개 이러한 사건에 대한 추모를 목적으로 예술제가 추진되며, 실상이 완료된 과거 사실처럼 한 번 더 덮여지게 되는데 이 또한 경계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제주4·3사건의 희생자는 14,442명이다.(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7,624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528명) [출처] 제주4·3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
[5] ‘기메’는 제주 굿에서 쓰여온 무구(巫具)의 하나로, 신의 모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신체 상징물이 대표적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6] 류쭝디 저(이유진 옮김), 『동양고전과 푸코의 웃음소리』, 글 항아리, 2013, 25-26쪽
[7] 미셀 푸코 저(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23, 14~24쪽
[8] 전미래(Le futur antérieur)는 프랑스어 문법 시제 중 하나로 미래보다 약간 앞서 일어나는 행위나 미래 어떤 시점에 일어나고 있을 사건을 말한다. 중요한 사건이나 행위의 찰나를 포획하기 위해 극적인 시공간의 편집술인 전미래는 사건의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긴장감을 최고로 고조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위의 글은 감수전이다. 작가의 활발한 작품 활동과 가파도 AiR의 지속을 염원하며 1차 마친 글을 올린다.
작가의 홈페이지
https://www.sarootsupasuthivech.com/
가파도 레지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