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 전시 《인당수에 간 눈뜬자들》(2023.9.15.~23.)를 보고
글 홍희진(큐레이터)
이 글은 동시대미술 작가들이 ‘백령도’라는 하나의 작품 소재를 공통적으로 관찰하며 고유의 방식을 어떤 방법으로 개발하는지 작업과정에 대해 목격을 하고 전시장을 거닌 관객이자 큐레이터로서 작성한 작품 평론이 아닌 전시 리뷰라는 것을 앞서 밝힌다. 백령도를 여행하고 온 다섯 작가들은 그들이 각자 수집해 온 작품 요소들인 그들 각자의 관점에서 발견한 백령도의 사실적 요소들로 각자의 기존 작품제작 방식의 경계를 벗어나 도전하는 방법을 강구하며 시각화 계획을 갖고 작업에 임한다. 황해도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 거센 파도에 뛰어들어 아버지 눈을 뜨게 한 심청이 설화는 백령도 현지 연꽃 바위가 존재하여 사실성을 갖으면서도 갸우뚱한 허구를 품고 있다. 이렇게 인당수는 존재하지만 존재했다고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북과 남의 경계에서 회자되는 미묘한 장소이다. 마치 바다의 물결이 한 방울 단위로 나뉘지 않듯 경계의 주체와 좌표는 분명히 있지만 이 미묘한 경계의 실제 모습이란 사변적일 수 있다. 다섯 작가들은 백령도로 나서며 스스로를 눈뜬장님이라고 사전지식 없이 떠나는 여행을 말하고 있지만 눈을 뜨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험이 이러한 상황만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경계는 장소적으로 환영과 상상의 세계와 닿아있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경계는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시장 이미지(작품 왼쪽부터 작가 순서는 박현철-공은택-강정민-송하영)@Elodie Heejin HONG 핸드폰 촬영
첫 번째로 아트플러그 연수 전시공간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을 가로 막는 박현철 작가의 대형 작품 <monólimen>은 낯선 출입구(포털)로서 붉은 빛을 불규칙하게 내면에서 뿜어내며 하얀 우레탄 소재가 겉면에서 수없이 오랜 세월동안 흐르고 있는 듯이 두텁게 봉인되어 출입구로 더 이상 기능을 상실한 형상을 자아낸다. 이는 평소 가죽, 갈대 등 자연소재로 생명체가 완성되기 전 중간 과정에 관심을 두고 시원적 형상을 자기만의 꿰매기와 조립으로 동식물을 ‘덜 만들어내는데’ 특이점을 돋보여온 박현철 작가의 작품이다. 박현철 작가가 백령도 바닷가에서 발견한 대피소를 보며 떠올린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모노리스’라는 제 3의 생명체가 만든 도구지만 목적을 알 수 없는 신비의 사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작가가 말하는 ‘자메뷰(jamais vu)’, 우리말로는 결코 본 적 없는 ‘생경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예술의 탄생 이래 여러 사조가 단절되고 기존 양식의 해체를 일삼지만 여전히 놀라움의 법칙만은 쫓고 있는 동시대미술의 전시장 초입에서 만난 낯선 포털의 대형 오브제는 제목과 반어적으로 전시장으로 우리를 들여다 놓는다. 그 포털은 송하영 작가의 거대한 색면 추상화와 직면하게 이어주며, 양 옆으로 정성진 작가의 프로젝션 설치 작품과 강정민 작가의 이미지 오브제들, 마지막으로 공은택 작가의 환영 작품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등 이번 전시의 큰 호흡은 이렇듯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포털 작품을 매개로 트인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 장막 없이 배열되어있는 작품들을 마주하는 박자감을 가지고 있다.
송하영 작가의 <공감각 회로> 전시장명@Elodie Heejin HONG 핸드폰 촬영
포털 작업을 뒤로 송하영 작가의 거대한 색면 회화작품 <공감각 회로>로 끌려가 들여다보자면, 단단하게 겹겹의 색들을 쌓아올려 여러 색면 회화 조각들이 각 틀 거리를 감싸며 입체차원으로 이동하여 조합될 때 또 다른 형상을 자아내고, 틀 너머 다른 틀들과 다른 색들로 접속 가능하던 개방적인 틀 개념을 강구해오던 송하영 작가의 기존 작업과 다른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작품은 가로 6미터, 세로 2.3미터에 다다르며 한 장의 대형 캔버스로 단면 속에서 색과 선의 힘으로 경계 지어지고 오히려 그 안에서 흐릿한 틀들로 해체되면서 다른 색들과 개방되어 연합하고 가장 외곽의 평면차원 안에서 입체성을 구현해내는 회화의 다른 현상들이 발견된다. 작가 특유의 추상적 이미지 기법은 백령도 지층에서 영감을 받아 평면 차원에서 응집되어 선, 색, 면들로 수집되어 다른 풍경화로 표현해 놓는다. 평소 사물 단위로 현실을 해체하여 파편 수준으로 수평적 나열을 하거나 사물에 움직임을 주어 이미지콜라주 등 재조합을 펼쳐 이미지를 이질적으로 다시 보게 하는 강정민 작가의 이번 작품은 백령도에서 만난 풍경들을 이미지 요소들로 부분 해체하여 재조합, 인쇄하여 입체 오브제들(<선명함이 겹쳐진 풍경들>, <풀과 줄기>, <작은 섬>)을 선보인다. 작가의 그간 작업들로 비추어볼 때 이미지를 보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번 작업에 스며들어 요소를 하나씩 나눠 보는 근시안과 풍경처럼 이미 조합되어있는 이미지 덩어리를 보는 원시안을 각각 출력하여 조각과 같이 부분 교차·조합한 이미지 오브제 작업들로 놓여 있다. 작가가 본 백령도의 정면과 이면이 무엇인지 구분지어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작가는 백령도의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경계하는 지점을 작품으로 끄집어내려는 의도를 밝히고 있으며, 시각의 본질로서 거리 차원에서 보고 보지 못하는 문제, 가려져 인식 못하는 사각지대에 대해 출력물이라는 앞뒤를 지닌 평면들을 교차시킨 오브제 형태로서 그 경계를 밝혀내는 방법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정성진 작가의 <경로 이탈> 전시장 이미지 @Elodie Heejin HONG 핸드폰 촬영
백령도는 거센 파도와 바람으로 특유의 지층과 암석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주목한 정성진 작가는 그 암석을 종이 조형물로 재현하여, 기존의 작업방식인 꿈에서 본 가상 이미지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하는 방식이 아닌, 실존하는 풍경을 새의 시선으로 비행하여 본 백령도의 자연환경을 투사한 프로젝션 설치작품 <경로이탈>을 선보인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차원에서 백령도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의 이미지를 흰 종이로 만든 축소 암석물에 투영시켜 인간차원에서 이탈한 시선을 시각화한다. 인간이 새의 시선을 갖기 위해 신체를 날 수 있는 기계에 태우거나 기계의 눈으로 촬영을 해서 본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닌 세상이지만 새의 눈으로 백령도를 본다는 작가의 상상은 자유로운 신체를 갈망하는 인간의 일차원적인 욕망으로 느껴진다. 마지막 작품으로 공은택 작가의 공간설치 작품 <교차점>은 남북 해상 군사 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알루미늄 프로파일 기둥으로 세워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누고 있다. 여러 기둥으로 여러 세로 줄의 그림자가 드리운 화면에서 그림자 지우지 않은 틈새 공간들 사이에서 보여지는 프로젝션의 재현적 영상 이미지들과 그 기둥의 반대편에서 기둥을 싼 거울 필름에서 번져 나오는 그물망과 같이 빛 형상으로 번져진 몽환적 이미지들은 판소리 ‘인당수’로 만들어진 돌림 노래를 배경으로 공간에 상충적으로 연출되어있다. 재현의 세계에 이웃하여 배열된 환영의 소환은 경계를 더욱 확실하게 표현하며 돌림 노래 양식을 사용하여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처지를 지속적으로 얽매어놓고 있다. 백령도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블랙홀로 모두 빨려 들어가 마치 아무런 잠재성도 변화도 없이 끊임없는 현재만 존재하고 있는 듯이 기념비와 같이 북방한계선으로 표현된 기둥으로 우두커니 서서 고정된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공은택 작가의 <교차점> 전시장 이미지 @Elodie Heejin HONG 핸드폰 촬영
이번 전시를 통해 다섯 작가들이 예술 하는 것을 관람해볼 때 ‘경계’라는 중심단어가 머릿속에 등장하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서 ‘O차원(Dimention Zero)’에 대해 각자 작품으로서 정의하는 일이 아니었는지 하나의 예측으로서 종합을 해본다. N차원의 초연결 사회에서 차원이 없는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숱한 경계 혹은 연결들과의 투쟁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바닷물에서 물방울 단위로 세고 나누는 무용의, 무효의 행위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우리의 차원과 경계는 어디이며 누가 주체이며, 어떤 변화를 욕망하며, 어떠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들이 아닐까하는 짐작을 해본다. 매체적 차원 이동을 하거나 환영을 소환하여 현실에 배치하고, 비인간 시선으로 이동해보거나, 익숙한 매체를 교체하거나 조합 방식을 이질적으로 행하는 등 예술가들은 스스로 뒤틀어 시도를 수행해보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 물 한 방울의 완전함을 갈구하고 있기도 하다. 다섯 작가들의 여행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해 백령도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낸 전시를 통해 우리를 발견해내고 우리의 지도를 그려 여러 번 구체화하는 경험을 통해 그 사변적인 경계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있는 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본 시간이다.
좌: 강정민 작가의 작품 / 우: 박현철 작가의 작품 일부 확대이미지 @Elodie Heejin HONG 핸드폰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