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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Feb 27. 2023

우리 딸 졸업 축하해

어린이집 졸업 기념 글

우리 딸은 어린이집 졸업한다니까 괜히 신나 했다. 이제 자기는 유치원 가니까 언니라는 것이었다. 유치원생을 언니라고 정의하는 바람에 초등학생은 ‘더 언니’, 중학생은 ‘더더 언니’가 됐지만 아무튼 자기는 언니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어린이집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엄마, 아빠, 이모’ 정도만 하고 엄마 쮸쮸나 찾는 게 일이었는데, 어느덧 키가 100cm 넘어 놀이공원 가는 돈이 덜 아까워지고 말도 많아졌으니 나름 중견 유아가 된 것은 사실이긴 하다.


재하는 어린이집 가는 날의 30%도 안 갔을 것이라고 재하 엄마와 종종 농담을 했었다. 분명 출석일 수 미달일 텐데 원칙대로 유급시키지 않고 졸업장을 주시는데 감사해 진짜 얼마나 안 갔는지 한 번 세어 보기로 했다(자료로 아내와의 카톡, 사진에 적힌 날짜, 키드키즈 알림장, 원장님과의 문자, 아이알리미를 사용). 재하는 2021년 4월 1일에 어린이집에 처음 나갔다. 공식 방학을 제외하면 2021년의 수업일수는 182일, 2022년은 237일, 2023년은 38일이었다. 2021년 재하는 130일을 출석하고 52일을 결석해 약 71%의 출석률을 보였다. 2022년은 163일을 등원하고 74일을 빠져 약 69%의 준수한(?) 출석률을 보였다. 깍두기 2023년은 38일 중 31일 등원해서 무려 81.5%를 달성했다. 어? 이러면 안 됐다. 생각보다 잘 나갔다. 그럼 내가 힘들다고 징징거린 게 엄살이 되어버리는 거 아닌가. 그래서 세부적으로 들어갔다. 2021년 어린이집에 있었던 시간은 평균적으로 약 3시간 37분가량이었다. 2022년에는 지표가 악화되어 어린이집에 겨우 약 2시간 58분 동안 있었다. 세 시간도 있지 않았다. 우리 집 똥강아지는 정말 밥만 먹고 왔다. 힘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결석 사유를 살펴보면 (코로나를 제외한) 병환 51일, 사회적 거리 두기 29일, 우리 세 가족 전염병으로 인한 격리 9일, 여행 10일, 와병 후 컨디션 난조로 인한 요양 11일, 예방접종 3일, 늦잠 12일, 기상악화 및 여행 후 회복 등의 사유 8일이었다. 이렇게 불성실하게 어린이집을 출석하다 보니 「아버님이 조금 더 신경 써 주세요」 하시던 원장님 말씀도 「재하 반가워, 오는 게 어디니」로 바뀌셨다.


그럼 재하에게 어린이집은 무슨 의미였을까. 재하는 하원할 때마다 늘 「너무 재밌어!! 내일 또 갈 거야」를 외쳤다. 하지만 사람의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진심을 알 수 있듯이 딸의 행동은 늘 정반대였다. 예를 들어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재하는 오늘은 날씨가 험하니 가지 않겠다고 눈을 뜨자마자 선언하곤 했다. 그러면 그날은 집에만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다. 대낮 기온이 영하 15도를 찍고 있어도 문화센터 발레는 꼬박꼬박 갔다. 가기 두 시간 전부터 신나서 발레 옷을 입고 「아라베스크~ 아나방~」을 외치며 빙글빙글 돌았다. 이런 식으로 대충 재하에게 있어 우선순위를 유추해 보면 「놀러 가는 거>>>>>발레>>>>>병원>>어린이집>>>>>주사 맞는 병원>>치과」 정도인 듯했다. 왜냐하면 병원 갈래 어린이집 갈래를 양자택일 시키면 병원을, 병원 가서 주사 맞을래 어린이집 갈래 그러면 어린이집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치과는 개중에 제일 싫은 곳이었다. 가지 않겠다고 난리난리 치다 뽀로로 소방서를 대가로 거니 그제야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단두대 가는 것 마냥 한 걸음에 50초씩 걸려 횡단보도 중간에 신호가 바뀌는 바람에 애를 들고뛰어야 했다.


다만 이 악전고투 속에서도 배워온 것도 많았다. 굶어도 가르쳐야 하는 건 맞는 이야기 같았다. 어린이집 가서 수저질도 가위질도 배웠다. 「저는 이재하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번호는 010…」이런 말도 외워왔다. 길 건널 때 손 들어야 한다고 아빠가 스무 번 외쳐도 듣지 않더니 어느 날 선생님이 알려주셨다며 건널목에서 팔을 귀에 붙이고 내리지 않았다. 누군가 자기 것을 뺐어 갈 수 있다는 문화충격도 받았다. 등원했던 날, 즉 지금으로 약 700여 일 전 친구 하나가 재하 머리핀을 가져간 일을 2년간 얘기했다. 애비 닮아 용서도 안 하고 잊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이성 손도 처음 잡아봤다. 사실 여럿 잡아봤다. 결혼하고 싶다는 정인도 생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잘 안될 것 같다. 걔랑은 다른 유치원을 가니까.


어쨌든 어린이집에서 마지막 날은 다가왔다. 앞으로도 많은 기관을 졸업하겠지만 이 시기만큼 극적이진 않을 성싶다. 아이가 엄마 젖과 기저귀를 떼고 말을 하고 약간 띠껍긴 해도 자아라는 것이 생겨가는 걸 보는 것보다 더 신기한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렇다.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하게 되다니 더 마음이 몽글하다. 물론 그 와중에 희생된 많은 내 머리카락에 애도도 함께 보낸다.


우리 딸이 제일 귀여웠을 시절 안녕. 나의 (만으로) 30대도 안녕. 원장님도 안녕.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딸아 나중에 사춘기 때 아빠가 괜히 미워지면 꼭 기억하렴. 아빠는 너 어린이집에서 낮잠 한 번도 안 재웠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네가 나중에 애를 키워보면 알 것이야. 졸업 축하해!!


초록 가방도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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