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양 갈래
아침에 딸을 유치원 등원 시킬 때면 긴장이 많이 된다. 덕분인지 과민대장증후군 마냥 화장실도 잘 가게 되어 변비 걱정은 덜었지만 전날 밤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재하 머리 때문이다. 내일은 과연 잘 묶을 수 있을까 잠도 오지 않는다. 심지어 꿈에 손이 움직이지 않아 머리끈을 못 돌려 괴로워하는 가위도 눌리곤 한다.
나는 오직 한 가지로만 머리를 묶을 수 있다. 양 갈래 머리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는 옥희 마냥 재하는 늘 그렇게 다닌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지만 늘 마음 한편에 짐처럼 재하 머리가 남아 있다. 어린이 집이야 백정 딸 마냥 보내도 귀족 영애로 만들어 주니 괜찮았다. 반면에 유치원은 원래 머리조차 보전 안될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유치원 등원하는 아이들을 보니 아침마다 샵 들러서 드라이하고 오는지 무도회장 입구를 방불케 했다. ‘아니, 저걸 엄마들이 다 해줬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한국인들이 손재주가 좋기는 좋은가 싶었다. 나는 원적이 함경도라 그런지 한민족보다 유목민 피가 더 섞인 듯했다. 그동안은 아내에게 머리 깔끔히 묶였다고 사진 찍어 자랑도 했지만 유치원 아이들 머리를 본 이후에는 의식이 되는지 손이 떨려 원래 하던 것도 잘 안된다.
문제는 우리 딸이 방년 5세가 되면서 외모에 관심이 늘었다는 점이다. 틈만 나면 모조 파우더를 두드리는 딸이 자기 머리가 엉망이라는 걸 알아채는 건 시간문제였다. 장난감 화장품 챙기며 자기 화장 안 하면 안 나간다고 하는 딸을 보며 괜스레 스스로에게 화가 나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도대체 누구 유전자를 닮아 벌써부터 치장 질이야. 제 엄마는 로션 떨어지면 내 거 뺏어 쓰는데」
지나가시던 큰 처형(재하 큰 이모)이 당황하며 조그맣게 말씀하셨다.
「… 아니 그게 왜 그리로 갔지」
가끔 청순하게 성공하는 날도 있었는데 하원할 때 보니 정수리 부분에서 양 갈래로 새로 묶여 있었다. ‘아니, 우리 딸은 목 옆으로 양 갈래를 해야 예쁜데 저렇게 꼭대기에 묶어놓으니 무슨 변발한 청나라 아기 같잖아’하고 하며 투덜댔었다. 유치원은 정말 대강 묶어주나 싶었는데 어제 그 이유를 알았다.
「아버님, 재하 머리가 길어 자꾸 국에 들어가서요. 이렇게 접어서 묶어 주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제가 이 것 밖에 못해서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제가 좀 해드릴게요」
재하가 끝날 때 종종 여진족 스타일이었던 건 재하 긴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재하 머리가 이러이러해서 그렇대」
「ㅋㅋㅋㅋ 괜찮아. 엄마들도 잘 못해. 우리 엄마도 머리 못 묶어 짜장면 사주면서 내 머리 내내 깎았어. 아무튼 좀 자를까? 아님 파마?」
「재하 위정척사잖아. 내 목은 잘라도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 할 걸」
대학시절 양이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나라를 파는 거라며 하라는 외국어 공부는 안 하고 놀던 아빠를 닮아서 인지 재하는 미용실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간밤에 마음속으로 재하 머리를 묶는 이미지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아침에 딸 뒤에 앉았다. ‘이렇게 양쪽으로 묶은 다음 다시 한번 접어 반으로’를 밤새 되뇌었건만 현실은 내가 유목민 피가 더 많이 흐를 것이란 확인뿐이었다. 처음에 재하는 「아빠, 언제까지 해야 해?」 이러다 30분쯤 지나니 「아빠, 이제 그만하자」 했다.
「째, 아빠가 머리카락 아프게 해서 미안해」
「괜찮아. 사람이 실수할 때도 있지」
엊그제 똥개가 말 안 듣는다며 재하 엄마에게 한 시간 동안 딸 흉을 봤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재하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러니 내가 밤에 쉬야 실수 하더라도 말없이 갈아줄 거지?」
「그건 안돼. 지지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