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 투혼
지지난주부터 지난주까지 아내가 많이 아팠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코뚜레 준비 하는 소 마냥 콧 속을 후볐는데 별 결과는 나오지 않고 피만 났다. 코피 때문인지 이제는 의미가 없어서였는지 나중에는 그만두는 거 같았다. 대신에 귀가 후 계속 누워 있었다. 밤에도 기침 때문에 민폐라며 옆 방 (신혼 때 마련했던) 좋은 침대에 가서 잤다. 재하를 돌보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아예 휴가를 내고 푹 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자기는 책임감이 있으니 죽어도 가서 죽겠다고 했다. 의무를 다하겠다는데 할 말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사가 출장 가 계신 주간이었다.
아내를 아프게 한 범인은 재하였다. 지지난주 며칠 동안 유치원에 못 나가면서 돈 십만 원은 홀랑 해 먹었다. 재하를 아프게 한 용의자는 A로 추정되었다. 나중에 A집에 놀러 가면 꼭 요구르트를 세 개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딸은 신제품이라 정비를 받으면 나았는데 우리 같은 구형은 치료를 받아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냥 시간이 약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목요일에 전라도 함평으로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뭘 먹었냐고 물어보니 육회랑 육회비빔밥을 먹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리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다음날 아침 폭풍설사의 후유증으로 골골 대고 있었다. 오늘은 꼭 쉬라 했더니 출근한다고 했다. 여름에 둘째 처형 계신 중국 놀러 가야 한다고 연가 아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가 찼지만 그러라고 했다. 물론 직장에서 토사곽란을 한 후 열두 시가 되기 전에 돌아왔다.
원래 있었던 아내의 토요일 약속들은 취소되었다. 주말에는 누워 쉬겠거니 했는데 오후쯤에 분연히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나 링거 맞고 올게』
『그래. 근데 왜 갑자기?』
『애들이 자기들도 감기로 아팠는데 다 수액 맞고 나았대!』
일요일에 만나기로 한 무리들이 링거 맞으면 나올 수 있다고 꼬드긴 모양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비슷한 사람끼리 노는 건 똑같았다. 그래도 갈 때는 얼굴이 흙빛이었는데 눈에 총기가 좀 돌아온 것을 보니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원래는 아내를 지하철 역에 내려주고 나는 딸이랑 할머니네에 가기로 했었다. 준비를 다 하고 나가려는 데 재하가 장난으로 머리에 붙이고 있던 헤어롤을 붙인 채 가겠다고 했다.
『째, 그거는 집에서 하는 거야』
별생각 없이 귀여워서 한 말이었는데 못하게 하는 소리로 들었는지 재하가 울부짖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아프고 난 다음 지지배가 하도 짜증을 부려 나도 쌓인 게 많이 있었다. 그냥 못 넘어가겠어서 일단 앉혔다. 아빠가 자기를 혼내려는 눈치를 보이자 엄마에게 안겨서 외쳤다.
『엄마랑 갈 거야, 엄마랑 갈 거야』
재하는 아직 엄마를 잘 몰랐다. 오늘 나가려고 어제 링거까지 맞고 온몸이었다. 딸의 투정은 큰 의미 없었다. 아내는 『재하, 아빠 말 잘 듣고 있어』라는 형식적인 한 마디만 남기고 총총총 사라졌다. 딸은 당황했는지 두리번거리다 이제 소리 지르지 않고 좋게 말하기로 약속했다. 할머니네 가는 길에 재하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