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very Boys

우리는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가

by 김은수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Group Psychotherapy 수업은 매우 흥미로운 수업이다. 과제 중 하나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Recovery Boys>*에 대한 감상을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제출을 마친 뒤에도 여운이 남아 몇 자 적기 위해 랩탑을 켰다.


<Recovery Boys>는 웨스트버지니아 오로라에 위치한 재활시설 ‘제이콥스 래더(Jacob’s Ladder)’에서 중독 회복 프로그램을 밟고 있는 네 명의 남성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곳은 일반적인 병원형 재활센터와는 달리, 자연 속 농장에서 함께 지내며 노동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는 아주 독특한 공간이다. 이 시설에서는 약물이나 교정을 위한 치료가 시행되지 않는다. 오롯이 자연 속에서 낮에는 농장의 동물을 돌보고, 밤에는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인간관계를 통한 치유’를 이끌어낸다.


미국은 마약 중독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많은 경우 그 근원에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고립감(feeling of isolation)과 그로 인한 만성 우울감(chronic depression)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땅덩어리가 넓고 지역 간 경제 불균형이 큰 미국에서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나는 낙오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제이콥스 래더에 들어온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오랜 시간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고 고립된 삶을 살아왔고, 그렇게 서서히 마약,술,도박 등의 중독에 잠식되어 결국에는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른 채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이콥스 래더의 설립자 케빈 블랭켄십 박사 역시 자신의 아들이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하니, 이는 단지 경제적·사회적 소외 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희망을 품고 있다. 참가자들은 반년 이상 디톡스 과정을 거치며 변화를 경험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신뢰를 쌓아가고, 서로를 “나의 어린 아빠(my young daddy)” 혹은 “내 형제(brothers)”라고 부르며 관계에 의미를 부여해간다. 일대일 치료에서는 보기 어려운 ‘관계를 통한 치유’가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은, 시궁창 같은 삶에서 벗어나 밝은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지펴주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된다.


과연 우리는 단지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서로를 치유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작품을 보며 그 답을 “그렇다”라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구원이나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다. 가까이는 내 가족에게 바로 나 자신이 그런 존재일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특히 내 아이들을 많이 떠올렸다. 누군가와의 관계 맺음이 주는 안도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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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제이콥스 래더에 등장하는 참가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회복하지 못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에게서 그런 ‘관계의 안도감’을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반면 다른 참가자들은 비록 다시 마약에 손을 대더라도, 자신을 위해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제이콥스 래더로 다시 돌아왔다. 판단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며, 그저 곁에 있어주는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과의 관계만으로도 누군가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나 따뜻한 결론이었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 단 한 사람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케빈 블랭켄십 박사는 아들의 중독을 돕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제이콥스 래더를 단순한 ‘치료소’가 아닌 삶을 다시 배우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치료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유연성과 연민(flexibility and compassion)’**을 강조한다. 상담자나 치료자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이콥스 래더에서는 농장에서의 노동, 식탁에서의 식사, 치료사와의 대화 속 어디에서든 이 두 가지 가치가 잘 드러난다. 상대방의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는 유연함, 그리고 그의 삶과 상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연민의 마음.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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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나이브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참가자는 어엿한 직업을 구하고 건실한 삶을 꾸려나가지만, 또 다른 참가자는(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보호시설에 보내진 아이들이 있는 Jeff) 결국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라진다. 그는 가장 절박하고 책임을 져야 상황이었음에도 끝내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다시 중독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의 이야기는 회복이 결코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 과정임을 보여주며 큰 울림을 준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 그런 인생처럼.


회복 가능한 정도의 내면의 힘 한 스푼, 딱 그 정도만 있어도, 그리고 그 힘을 공동체 안에서 조금씩 나누기만 해도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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