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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Sep 13. 2024

쓰레기 시대(垃圾时间)

중국 이야기인가 아니면 한국 이야기인가?

이 글은 오랫동안 제 글을 보아주신 ㅁㅁ님의 요청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가비지 타임()은 스포츠 경기 중 너무 큰 점수 차이가 나서 이미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종료 시간까지 경기가 진행되는 경우 이 잔여 시간을 가비지 타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가비지 타임의 중국어 번역이 라지(垃圾), 즉 쓰레기 그리고 뒤에 시간(时间)을 붙여 쓰레기 시간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봐요 소용없는, 대부분의 경우 개인으로서는 아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 이 쓰레기 시대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대체로 2023년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며 주로 중국인들이 목도하는 중국 사회의 변화가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개인은 이에 대해 어쩔 방법이 없어 결국 파국에 이를 것을 예감하며 개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중국의 미래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쓰레기 시대'가 유행어가 되었다고 전했다.(https://www.rfa.org/mandarin/yataibaodao/shehui/sh-china-garbage-time-07122024144742.html) 2024년 7월 초, 주식과 집값은 폭락하고 임금이 삭감되는 이른바 삼중 압박을 받은 CICC의 한 여성 직원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중국 영자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쉬진은 "역사의 쓰레기 시대에 실패를 관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해야 할 주제일 것"이라고 썼다. CICC의 이 직원이 받은 급여는 중국의 일반 대중이 받는 급여보다 월등히 높았기에 상징성이 있었다.


그 배경으로 10~2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중국인은 빈곤이 능력이나 노력 부족과 같은 개인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불평등한 기회나 경제 구조 탓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 CICS 산하의 빅 데이터 차이나가 발표한 설문 조사(2004년부터 2014년 대비 2023년 결과)를 보면 빈부가 개인 책임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04년 25%에서 2023년에는 48%로 증가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보상을 받는다에 대한 비율은 62%에서 28%로 급감하였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부를 얻는 것은 개인이 하기 나름인데 그 부를 얻는 방법은 결코 열심히 일해서는 아닌 것이다.


이 쓰레기 시대라는 말은 광범위한 공감을 얻으면서 중국 SNS에서 자주 쓰는 말이 되었다. 이를 중국 정부가 개입하여 사용을 못하게 블록을 하면서 이제는 중국어로 쓰레기라는 '라지'의 음을 따서 LJ, 그러니까 'LJ 시간'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LJ라는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니라 이전부터 네티즌들이 특히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거친 표현으로 많이 사용하던 것이어서 이 말 자체는 블록을 당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LJ 시간'이라는 단어는 블록 되고 있다.


중국 정부로서는 당연히 이런 LJ가 인터넷상에서 회자되는 것이 반가울 리 없다. 관영 언론은  일부 사람들이 국가 발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 사용한 사이비 학술 개념이라며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다”라고 반박하고 나섰다.(https://www.zaobao.com.sg/news/china/story20240713-4254420

중국 공산당 베이징시 위원회 기관지인 베이징일보는 7월 11일 '쓰레기 시대? 진실인가 거짓인가? '라는 논평을 게재하여 이 개념을 공격했다.(https://baijiahao.baidu.com/s?id=1804239825500202764&wfr=spider&for=pc)일부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개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든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후 평범한 사람들은 ‘평평하게 누워있는 것, 즉 탕핑(躺平)이 탈출구’라는 얕은 논리를 편다고 공격한다. 그러면서 이런 글들은 무력하여 절망한다(无奈无望)고 중국을 모두 부정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논리대로라면 중국 역사에 쓰레기 시간 아닌 시간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하며 1993년에야 식량, 석유 공급을 개방했고 양권 제도를 폐지했으며 21세기가 되어서야 다채로운 물질적 삶을 누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베이징일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쓰레기 시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국이 발전에 감사할 줄 모르고 턱없는 주장을 한다는 암시이다. 그러면서 베이징일보는 “역사는 민중에 의해 쓰이고 민중은 역사의 주인공이자 주체이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베이징일보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쓰레기 시간이라고 절망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대체로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개인이 '작용'할 수 있는 수단을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또한 혁명과 변화의 역사였다. 지금 중국 공산당 체제나 시진핑 지도부가 확고해 보인다 해도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안정된 정권은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징일보의 "민중은 역사의 주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체제가 개인이 국가나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어려운 것은 객관적 사실일 것이다. 특히 정치적 사상이나 이념의 자유가 없고 권위주의 일당 전제 정치를 하고 있는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이나 지도층이 불쾌해 할 수 있는 주장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손실을 직접적으로 당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그렇기에 제3의 길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바로 "청년 양로원" 현상이다. 


탕핑(躺平)이 무력한 젊은이들이 "될 대로 돼라"라는 자포자기라면 "청년 양로원"은 마치 은거하는 무림의 고인 같은 개념이다. 뭐 꼭 무림이 아니더라도 죽림칠현 같은 기분일까? 바로 중국 청년들이 탕핑처럼 포기나 좌절이라기보다는 경쟁과 치열한 세상을 떠나 조용한 시골로 가서 마치 은거한 노인들처럼 사는 현상이다. 이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하며 가능한 자립 하여 산다. 조용한 산골에 가서 집을 마련하여 조용히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이다. 문학, 음악, 또는 SNS 동영상으로 소소한 수입을 올리며 근근이 산다. 혼자 사는 이들도 있지만 몇몇이 모여서 살기도 한다. 자연환경이 좋고 물가가 낮은 지역, 위난성이나 구이저우 성 같은 곳이다. 윈난 다리(大理)에 이런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모두 치열한 현대 사회의 피라미드 올리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이지만 탕핑처럼 체념하고 방구석 폐인으로는 살지 않는다는 면에서 밝고 긍정적이다.


필자는 이들 젊은이들을 통해 중국의 삶이 결코 중국 공산당이 말하는 것처럼 밝지 않으며 동시에 탕핑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절망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현재 중국이 가지고 있는 모순의 상징이며 현재 중국이 풀어야 할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중국 체제의 모순으로부터 결코 우리나라도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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