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상 Dec 13. 2023

유익을 찾아서

투덜투덜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가 '11%'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2000년생이 온다]란 도서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90년생이 온다]에서 한번 인세 문제를 겪었던 만큼 11%에서는 ‘저자 인세는 11%부터’, ‘모든 책에 위조방지 홀로그램 부착’, ‘판매가 아니라 인쇄하면 인세 지급’ 등의 새로운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간의 사정이 있으니 저자가 유리한 정책을 세웠다는 건 그렇다고 치고, 세부적으로 출판사와 저자 모두에게 유익이 있어야 이런 정책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위조방지 홀로그램 부착 정책은 모든 책마다 고유의 시리얼 넘버가 있어서, 저자 모르게 출판사가 책을 더 찍을 수 없고, 각 책마다 고유성이 생겨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는 이점은 있다.

그런데 조금 비정하게 말하자면, 요즘 책이 저자 몰래 복제를 해야 할 만큼 귀하지 않다.

일부 베스트셀러(90년생이 온다는 그 일부에 들어갈 만큼 베스트셀러였으니까)를 제외하고, 요즘은 초판을 다 파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한다. 초판이라고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0부가 기본이었으나, 현재는 1000부~1500부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런 시장에서 굳이 저자를 속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재쇄를 찍지 못하면 저자에게 인세 보고를 하기도 미안한 형국이다. 

그래서 복사방지 홀로그램은 비용만 늘리고, 대부분의 출판사나 저자(말했다시피 베스트셀러 작가 제외)에게 어떤 유익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이런 시도는 이미 전에도 많이 있었다. 

이전에 게임 가이드북을 만들 때는 게임 아이템이나 무료이용권을 도서에 포함시키느라 각 도서마다 다른 시리얼넘버를 부여해서 판권면에 부착하기도 했고, 한 베스트셀러 작가는 스스로 홀로그램 스티커를 만들어와서 인지 대신 부착해 달라고(당시 인지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졌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부탁해서 들어준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작가도 더 이상 인지를 붙여 달라고 하지 않는다. 출판사나 저자에게 큰 유익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각 도서에 부여한 고유성이 출판사나 저자 모두에게 유익하려면, 그 고유성(시리얼 넘버라고 하자)이 장부와 연동되어야 한다.

출판사에서 1~2000번까지 시리얼넘버를 매긴 책을 만들고 나면, 1~300까지는 교보문고, 301~500은 예스24…… 이런 식으로 모두 정리가 돼 있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보문고는 또 교보문고대로 1~50은 광화문점, 51~100은 강남점…… 하는 식으로 정리가 돼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은 반품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두면 책이 소비자에게 제대로 판매가 되었는지, 아니면 서가에 꽂혀 있다가 반품이 되었는지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가 있으면 저자에게 정확하게 인세를 지급할 수 있고, 당연히 저자도 정확하게 인세를 지급받을 수 있고, 출판사에게 최대의 난제인 수금 문제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팔린 만큼 정확히 수금할 수 있으니, 어음(아직도 출판계에는 있다)도 없어질 테고, 현금 흐름이 빨라질 것이다. 그러면 저자와 출판사 모두에게 유익이 생기고 관계가 깨끗해진다.

그런데 지금 교보문고와 예스24 정도만 이야기해서 이런 시스템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게 총판과 지방총판, 도소매점, 독립서점까지 가면 사람의 힘으로 정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연간 출간되는 도서 종수는 2021년 기준으로 약 6만5천 종이다. 하루에 200종의 도서가 쏟아지고 있는데, 각 도서의 시리얼넘버를 관리할 수 있을까? 

일전에 책등에 칩을 심어서 고유성을 부과하고, 그걸 전산시스템으로 관리한다는 안이 나온 적이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가능할 것이다. NFC 칩을 책에 넣어두면, 출판사에서 출고하거나, 서점에서 계산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관리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잔인하게도, 책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투자하는 사람이나 기관 역시 나올 리 만무하다.

그래도 11%가 [2000년생이 온다] 외의 다른 책에도 이런 시스템을 잘 적용해서 성공하기를, 출판사 측의 유익도 발견해줘서 이런 시스템이 널리 퍼지기를 기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무엇으로부터의 독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