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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상 Nov 13. 2024

신분 차이

#인스타소설

신분 차이

- 은상’s #인스타소설



1.

김영석 박사는 단양의 이름 없는 절벽 아래서 발견된 남녀 미이라를 조사했다. 둘이 꼭 끌어안고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것 좀 보세요. 아주 특이한 미이라예요.”

김 박사는 취재 차 찾아온 박 기자에게 말했다.

“뭐가 특이한 거죠?”

박 기자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미이라를 촬영했다.

“이들 복장을 보세요. 여자는 신분이 높은 양반의 복색인데, 남자는 그렇지 않아요. 하층민일 가능성이 아주 높지요.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한 듯해요. 아마도… 신분의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껴안고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르죠.”

“그러고 보니 아주 처절한 사랑의 미이라군요.”

박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단양에서 발견된 처절한 사랑의 미이라’란 제목을 단 신문 기사가 났고, 이들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2.

건륭 53년, 절벽 위에 한 여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부모까지 다 죽이더니 이제 나까지 죽이려 하느냐. 나 또한 너를 살려줄 수 없다.”

여인의 손에는 번뜩이는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나 또한 너를 살려보낼 수 없다. 네 집안 씨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남기지 않을 터다.”

살기 등등하게 말하는 사내의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다. 

그 낫에 이미 목숨을 잃은 자들이 많은 듯, 아직도 핏빛이었다.

“네 사정은 알 바 아니다. 내 눈앞에서 네 놈에게 죽임을 당하는 부모의 얼굴을 보았으니 난 네놈만 죽이면 여한이 없는 몸이다.”

여인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네 아비의 모함으로 내 아버님은 목숨을 잃었고, 어미와 난 노와 비가 되었다. 어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난 복수를 위해 오늘날까지 피눈물을 흘렸다. 나 또한 마지막 핏줄인 너를 죽인다면 여한이 없다.”

사내는 핏빛 낫을 여인의 코 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여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느냐. 너는 나를 죽이는 게 소원이고 나도 너를 죽이는 게 소원이니 함께 죽어서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원혼을 남기지 않는 방도 아니겠느냐.”

사내는 생각하지 못한 일인 듯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좋다. 내 너를 죽이고, 너 또한 나를 죽이면 되는 것이니 이 절벽에서 함께 뛰어내리자.”

수십 길을 돼 보이는 절벽은 바위가 가득해 떨어지면 살 방도가 없어 보였다.

여인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내 너를 믿지 못하니, 내 옷고름과 너의 옷고름을 동여맬 것이다. 죽어도 떨어질 수 없을 것이야.”

여인이 소리치듯이 말했다.

“나도 원하는 바다. 나 또한 원수의 딸인 너를 믿을 리 있겠느냐. 옷고름을 동여매고 내가 깍지를 껴서 죽음에서 너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겠다.”

남자도 붉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들은 절벽 위에서 옷고름을 동여매고 뛰어내림으로써 서로의 원수를 갚았다.


3.

기사가 나오고 나서 독지가들이 돈을 모아 절벽 위에 ‘사랑비’라는 비를 세웠고, 새로운 관광코스가 되었다. 


- 끝 -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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