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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키 Jun 10. 2020

수수야~옥수수야~

사랑해 사랑해.

옥수수를 아주 좋아한다.

뭐 이 글 시리즈의 첫 문장이 다 이럴 것 같다.

산마늘을 아주 좋아한다. 마늘종을 아주 좋아한다. 밤 산책을 아주 좋아한다...


지금은 내 손에 없지만, 기억나는 가장 오래된 사진 속의 나는 기저귀를 찬 채 옥수수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정신없이 옥수수를 뜯어먹는 아기가 귀여워서 "여기 봐!"하고 찍었는지, 고개를 돌려 사진기를 바라보는 얼굴엔 옥수수 알갱이가 붙어 있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엔 뒤뜰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고랑을 팠고 나는 옥수수 낱알을 3개씩 흙 속에 넣었다. 쪼그만 잎이 나오더니 그 모양 그대로 쑥쑥 자라서 금세 내 키를 넘어섰다. 옥수수가 굵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던지. 아마도 흙 속에 낱알을 꾹꾹 넣을 때부터 옥수수에 대한 사랑이 싹을 틔운 것 같다.

그 시절 시장에서 파는 찐 옥수수는 샛노란 옥수수였다. 뭘 넣고 삶았는지 달큰 짭짤한 냄새가 옥수수를 덮은 비닐 사이로 뭉개 뭉개 피어올랐다. 그러면 그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한 줄 한 줄 야무지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은 뒤 옥수숫대에 밴 달고 짠 물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일주일 굶은 흉년에 구황작물을 만난 거지처럼 탐을 냈다.

그런데 도대체 옥수수 시장에 무슨 변동이, 아니 변고가 생긴 건지 길거리  좌판에서 노랑 옥수수가 점점 사라졌다. 대신 영구 이빨처럼 검고 허연 게 섞인, 아니면 그냥 허여멀건한 찰옥수수들만 보였다. 옥수수 좌판이 보여서 다가갔다가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았나. 그 노랑 옥수수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대학생 시절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추억의 그 달큼한 냄새를 맡고 차에서 내려 좌판을 찾아내기도 했다. 바로 이 냄새야! 여기 노랑옥수수가 있어!!!!

당산동 어느 버스 정류장 옆, 그게 한국의 길거리에서 사 먹은 마지막 찐 노랑옥수수였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식었다. 안 보이는데 어쩔 건가. 그러다가 이역만리에서 내 사랑을 다시 만났다. 미국에 잠시 살던 시절, 초여름이 되자 마트마다! 그 노랑 옥수수가! 가득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가격도 거의 사료 수준으로 쌌다. 옥수수를 사료용으로 키우는 나라인데 왜 안 그랬겠나. 저 속에서 사흘 밤낮을 헤매다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은 광활한 옥수수밭이 사방천지인데 말이다. 가축용이건 인간용이건, 내게는 미국에 온 보람을 주는 몇 가지 기쁨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아주 매우 중독적으로 쪄 먹었다. 미국을 떠나올 때 가장 아쉬운 점 2위가 이 옥수수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1위는 앞서 쓴 글에서 알 수 있듯, 앤티크 샵이다)


그러나,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하고 자동차가 자율주행차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의 옥수수도 발전했다! 우리나라는 무려 초! 당! 옥수수라는 것을 개발한 것이다.....


자 여기서 잠깐. 초당옥수수란?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0942&docId=1237504&categoryId=32102

옥수수 러버로서, 초당옥수수를 알게 되자마자 주문해서 먹어보았다. 과연 맛의 신세계였다. 찌지 않고 먹어도 달다. 옛날 노랑옥수수보다 톡 터지는 아삭함도 강하다. 단점을 굳이 찾자면 껍질이 조금 질기다는 것과 재배가 쉽지 않다는 것. 다행히 요즘은 점점 재배가 늘어나는 것 같다. 몇 년 전, 초당옥수수가 소개되기 시작할 즈음엔 수확 전에 예약주문을 해야 했다. 언제쯤 옥수수가 오려나 고대하는데 농장에서 "너구리 습격이 심해서 배송이 늦어지겠습니다."란 안내를 올렸다. 너구리와 일심동체가 된 기분이었다. 그치? 맛있지? 전기가 통하는 철책을 두른데도 습격하고 싶은 맛이지! 하지만 내 것도 좀 남겨줘!!! 이것저것 조금씩 갉아먹지 말구 하나씩 하나씩 완전히 먹어서 배를 채우란 말이야~!라고 너구리 어깨를 붙들고 외치고 싶었다.  

아마도 초당옥수수를 먹은 너구리는 아주 하이~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몇 년 전까지는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없었고 온라인 예약 주문이 확실한 방법이었는데 이제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래서 느긋하게 첫 만남을 기다리며 눈에 보일 때 산다. 며칠 전이 그 날이었다. 마트에서 올해 첫 초당옥수수를 만나 5개를 사 왔고 아삭아삭 2개를 해치웠다. 여름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지웠다. 너구리도 몇 개쯤은 맛봤기를 ^^

눈에 띄면 꼭 드셔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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