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키 Jul 15. 2020

소설책에서 감자로

우리 동네 연결고리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지.

일요일 오후 잠깐 동네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채 혼자 큭큭 웃었다.

보조석에는 비닐봉지며 상자가 자리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멤버가 책을 빌려주겠다고 하여 이웃 동네에 갔다가 소설책과 함께 풋고추와 마늘, 양파를 선물 받았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직접 농사지으셨다는 귀한 작물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일요일 오후의 느긋한 수다 시간까지 선물 받고는 헤어진 후 바로 옆의 친구네에 잠시 들렀더니 이번엔 세제 선물 세트와 직접 수확한 감자가 딸려왔다. 근처 온 김에 예전에 맛보라고 줬던 레몬커드 빈 병을 받으려 한 것뿐인데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주말에 단체모임을 다녀왔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마스크를 끼고 나온 친구와 차창을 사이에 두고 잠깐 인사만 나누고는 헤어져 이번엔 우리 동네로 차를 돌렸다. 며칠 전 친구 아들의 제리뽀 하나를 먹었다가 아들의 원망 가득한 눈길을 받고는 "이모가 한 봉지 사줄게!"라고 했던 그 한 봉지가 오늘 집에 배달됐다. 차를 쓰는 김에 갖다 줘야지 하고 친구네에 가니 마중 나오는 손에 묵직한 종이가방이 들려 있다.

앗! 또 감자다 ㅋㅋㅋ. 좁은 골목길에 잠시 정차했던 거라 물건을 주고받고 바로 큰길로 나오니 친구한테 전화가 온다. "언니 제리뽀 40개 이거 뭐야. 너무 웃기잖아. 묵직해서 놀랬어. ㅋㅋㅋㅋ" "나도 배달 온 거 보고 박스가 왜 이리 큰가 하고 빵 터졌지. 근데 감자는 뭐야?" "그거 혜정이가 준 거야. 친정 엄마가 보내주셨대."

그렇게, 평택에서 온 감자와 전주에서 온 풋고추와 마늘과 양파, 시민농장에서 캔 감자,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증정한 세제 선물세트가 빈 병 하나와 함께 보조석에 차곡차곡 쌓였다. 친구네 냉장고에는 제리뽀 40개가 채워졌고.

사실 책은 혼자 읽는 것이니 독서모임은 굳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굳이 서로 시간을 맞추어 책을 빌리러 가느니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다. (요샌 드라이브 쓰루라 시간 맞춰 가야 한다만.) 하지만 그랬다간 이런 우연한 즐거움은 없었을 거다. 추천을 부탁하고 책을 빌린 덕에 작가의 작품중 어떤 것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는지 알 수 있었고, 책에 메모한 단정한 글씨도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한 덕에 마늘을 까며 아버님의 손길과 마음을 상상해 보는 순간이 생겼다. 아들에게 마늘 파스타를 건네며 "이거 직접 농사지으신 마늘이래."라는 말도 얹을 수 있다. 세제와 감자를 얻은 탓에 '다음엔 뭘 갖다 주지'하는 고민이 생겼으니 오고 가는 물물교환엔 끝이 없을 듯하다. 예기치 않은 감자 풍년에 각종 감자 요리에 도전하게 생겼다.

소설책으로 시작해 감자로 이어진 동네 순회는 대면접촉의 연쇄작용을 새삼 일깨웠다. 코로나 19의 전염 양상을 보면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코로나를 배제하고 보면-그렇기에 사람과의 만남이란 더욱 재미있다. 기술이 발달한 덕에 온라인으로도 어렵지 않게 볼 수는 있다만 역시 직접 만나고 부딪히면서 의외의 변수가 생기고 파장이 번져 나간다. 친구 아들이 아니었으면 난 제리뽀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온라인에서의 만남도 유용하다. 독서모임이 있어 나와 다른 시선으로 책을 볼 수 있고, 좋은 책도 추천받을 수 있다. 특히 이 사태 속에 온라인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그래도 어서 얼굴들을 마주하고 싶다.

꼭 소설책과 풋고추와 마늘과 양파와 세제와 감자와 감자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내가 감염자라면... 오늘의 동선은 참 개탄스럽겠다만 ..;;;


매거진의 이전글 마늘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