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그러데이션
많은 물욕 중에서도 나는 몇 가지 한정판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다. 그중 하나가 마늘종이다.
요새 농작물에 철이 어딨나 싶지만, 적어도 마늘종에게만은 예외다. 마늘종은 봄 한정판이라는 도도한 제철의 시기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어? 아닌데? 마트에 갈 때마다 마늘종 봤는걸?이라고 생각했다면 원산지 표시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
이 시기가 아닌 때 마트에 놓인 마늘종은 국내산이 아니다.
국내산을 구할 수 있는 이맘때면 온라인에서 마늘종을 대량 구입한다. 굵게 묶인 한 다발의 마늘종은 색깔부터가 싱그럽다.
연두색에서 짙은 초록까지그러데이션 된 줄기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면 이 마늘종으로 무얼 해 먹느냐 하면, 씻고 잘라 살짝 데친 후 모두 냉동한다.
절반은 약 5cm 길이로 자르고, 절반은 0.5cm 정도로 잘게 자른다. 그냥 냉동한 적도 있는데 색깔이 거무죽죽해지는 것 같다.
파릇하게 데쳐 냉동하면 색이 그대로 있다.
길게 자른 건 각종 오일 파스타, 스테이크의 가니쉬로 넣는다. 식감이 좋고 접시에 파릇함을 더한다.
통통한 마늘종은 구웠을 때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한 식감을 내는 것 같다.
잘게 자른 건 볶음밥에 넣는다. 백종원의 만능간장을 응용해서 간장소스에 졸여둔 간 돼지고기와
이 마늘종이 있으면 한 끼 볶음밥 만들기가 빠르고 쉬워진다. 달걀과 당근을 더하면 초록, 노랑, 주황의
색 조합이 완벽하다. 귀찮으니까 그냥 고기와 마늘종만 넣을 때가 90%.
냉동을 해도 무르지 않고, 오래가는 최고의 초록 일꾼. 초록이 필요한 자리를 위해 냉동실에서 늘 대기 중인 재료가 마늘종이다.
올해는 욕심을 부려 4kg이나 주문해 냉동실을 채워놨다. 냉동실 서랍에 봄을 꽉꽉 밀어넣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