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에는 묵티나트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좀솜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포카라에서 베니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베니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 우리가 첫날 묵은 마을은 온천으로 유명한 따또빠니였다. 피로도 풀 겸 온천을 해 보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트레킹은 눈 뜨면 일어나 걷는 게 일이다. 다음 날, 따또빠니에서 게샤까지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깔로빠니를 향해 출발했다. 몇 십분 간격으로 지프차가 먼지를 흩날리며 지나갔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지프차가 다니는 길을 걷는 건 굉장히 짜증스러운 일이다. 내가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던 2002년도에는 지프차가 다니는 길이 적었다. 차는 트레킹 코스를 시작하는 마을 입구까지만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트레커들이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다. 짐은 주로 당나귀들이 날랐다. 차 먼지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요즘은 지프차를 타고 베니부터 묵티나티까지 곧장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한다. 깔로빠니의 한 식당 주인아주머니한테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흙먼지 때문에 짜증이 난 우리는 물줄기가 끊어진 강을 건너가기로 했다. 반대편 길에는 찻길이 없고, 강을 따라 걷기만 하면 다음 목적지인 마르파까지 쉽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르고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 우리는 웅장한 다울라기리 산을 마주 보면서 칼리간다키 강을 따라 올라갔다.
강 건너편은 고즈넉했고 걷기에도 좋았다. 강변의 버드나무와 설산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짜증스럽던 마음도 금방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런! 갑자기 길이 점점 좁아지는가 싶더니, 당나귀 똥이 보이질 않는다. 당나귀 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인적이 드문 길이라는 얘긴데... 아니나 다를까. 길에 풀이 점점 더 많아지는가 싶더니,
얼마 뒤에는 길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다시 마른 강바닥을 건너 지프차가 다니는 찻길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흙먼지를 마시며 걸었다. 그렇게 마르파 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 셋은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포터나 가이드 없이 트레킹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마르파에서는 마을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마르파는 당도 높은 사과 생산지로 유명한 마을로, 안나푸르나 서쪽 지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힌다. 우리는 행여 방해가 될까 봐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계단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쉬고 있었다.
치타가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아, 물론 진짜 치타는 아니고, 이곳에 사는 검은 개인데 하도 나를 따라다녀서 내가 치타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때 우리는 돌계단에 앉아 비스킷을 먹고 있었고, 치타는 내 앞에 앉아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그래?" "이거 먹고 싶어?"내가 말을 걸자, 치타는 대답 대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는 비스킷 몇 개를 꺼내서 치타 앞에 내려놓았다. "자 먹어." 치타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스킷을 삼켰다.
그러고는 또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기분 탓일까? 눈이 그렁그렁 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이다. 아무래도 엄청 배가 고팠던 것 같다. 그 사이 마을 행사가 끝이 나서 우리는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시켜 먹었다. 길을 잃고 헤매 다녀서일까. 평소보다 훨씬 배가 고팠다.
치타는 식당 입구까지 따라와 앉아 있었다. 큰 개 치고는 체구가 작고 말라 보였는데, 고개를 뚝 떨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어쩔까.... 잠시 고민하다 치킨 볶음밥을 하나 더 주문했다. "아주머니, 개가 먹을 거니까 그냥 막 접시에다 담아 주세요."
치타는 내가 내민 밥을 숨 한 번 쉬지 않고 먹어 치웠다. 주인이 없는 걸까? 왜 이렇게 배가 곯았을까. 치타는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식당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충견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는 식당 2층에 있는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문 앞까지 따라온 치타에게 인사를 건넸다. "치타야, 이제 얼른 집에 가 봐.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러고는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방문을 열다 나도 모르게 '어!'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치타가 문 앞에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이 추운 날씨에 콘크리트 바닥에서 잔 걸까? "치타야, 왜 여기 누워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치타는 크고 둥근 눈망울로 나를 또 한참 동안 올라다 봤다. '이런, 또 배가 고픈가 보구나.'
나는 얼른 1층 식당으로 내려가 어제 먹은 치킨 볶음밥을 두 개 주문했다. 신기하게도 치타는 절대 식당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내가 밥을 들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치킨 볶음밥을 들고나가 치타에게 내밀었다. "자, 아침이야. 이제 이거 먹고 집에 가렴." 치타는 보는 사람마저 목이 메어 올 정도로 게걸스럽게 밥을 삼켰다.
치타는 마르파를 떠나는 우리 뒤를 계속 졸졸 따라왔다.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다, 우리가 걸음을 멈추면 자기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하, 이거 정말 어쩐담?' 쫓아 버릴 수도 없고, 쫓는다고 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그러다 좀솜으로 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치타를 보고 동네 개들이 몰려든 것이다. 네 마리였는데, 모두 덩치가 크고 사나워 보였다. 네 마리의 개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치타를 위협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치타를 공격할 기세였다. 치타는 꼬리를 내린 채 낑낑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괜히 나섰다가 물리는 거 아닐까? 여기서 개한테 물리면 큰일인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본 체 지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밥도 사주고 치타라는 이름까지 지어 줘으니, 어쨌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셋은 스틱을 크게 휘두르며 위기에 처한 치타를 향해 달려갔다. '개들은 막대기를 무서워한다고 하는데, 히말라야에 사는 개들도 그럴까?' 제발 그러길 바란다.
우리가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들자 개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에서 기르는 개들이라서 사람을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여새를 몰아 스틱으로 두어 번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녀석들은 어디론가 후다닥 달아나 버렸다. 정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행여 저 녀석들이 덤벼들기라도 했다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얼른 치타를 데리고 그 마을을 벗어났다. 성난 개들의 울음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치타도 차츰 안정을 되찾아갔다. 나는 대탈출 기념으로 녀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치타야, 우리 사진 한 장 찍자. 저쪽 카메라 좀 봐.'라고 몇 번이나 구슬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녀석은 끝내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좀솜은 비행장과 군부대가 있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을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삭막해 보였다. 점심 식사를 하며 주인에게 물으니, 여기서 묵티나트까지는 20km 정도 되는데 고지대라 지금 출발해서는 절대 묵티나트까지는 올라갈 수 없단다.
다분히 숙소 사장님의 생각이 반영된 의견이겠지만,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지금 묵티나트로 출발하는 건 좀 무리일 것 같아 좀솜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치타는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따라 올라와 베란다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나는 1층 식당에서 저녁거리를 싸가지고 와서 치타에게 먹였다. 치타는 언제나처럼 숨도 쉬지 않고 밥을 먹었다. 다 먹는 데 채 1분도 안 걸리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찌감치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어? 그런데 치타가 안 보인다.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숙소 앞 돌계단에 앉아 녀석을 기다렸다. 잠깐 볼일을 보러 간 건지도 모른다. 한 20여분 그 자리에서 치타를 기다렸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밤새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린 걸까? 어쩌면 다른 여행자를 따라나선 건지도 모르겠다.
마냥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도 없어서 길을 나섰지만,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녀석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좀솜에서 묵티나트로 올라가는 길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묵티나트로 올라가기 전에 까끄베니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말 대여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흙먼지로 가득한 트레킹 코스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말을 타고 묵티나트로 올라가기로 하고, 말 세 마리를 빌렸다. 마부 한 명이 따라붙었지만, 자기가 탄 말은 각자 자기가 책임지고 몰아야 했다.
말이 다니는 길은 좁은 산길이었다. 그 좁은 산길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올라갈 만한 길을 말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길 왼쪽 면은 낭떠러지다. 말에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다. 말이 갑자기 엉덩이를 들썩거려서 떨어질 수도 있고, 내가 고삐를 놓치는 바람에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말이 혹시라도 딴생각을 하다 발을 헛디디면 어떻게 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 말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인 묵티나트까지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다. 조람키 곰파에서는 '꺼지지 않는 불'을 구경했고, 조람키 곰파 옆에 있는 힌두교 사원 '묵티 나라 연'에서는 108개의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물의 벽을 구경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다만 조람키 곰파 앞 벤치에서 보는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강렬한 태양과 황폐한 다갈색의 민둥산들, 그리고 그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설산, 건조한 공기를 가르며 날고 있는 무리의 독수리 떼. 삭막하지만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말을 타고 다시 좀솜으로 내려온 뒤, 좀솜에서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향했다. 20명 정도가 겨우 탈만한 아주 작은 비행기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조금 시간이 남아서 치타를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러고 보니 좀솜 거리에는 개들이 안 보인다. 너무 고지대라서 개들도 살기 어려운 걸까? 그래서 치타도 저지대로 내려간 걸까? 이상하게도 치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에 오르자 승무원이 솜과 사탕을 나눠줬다. 솜은 귀를 틀어막는데 쓰라는 것이고, 사탕은 불안감을 줄여주는 데 도움이 된단다. 소형 비행기는 절벽을 향해 다이빙을 하듯 달려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활주로가 너무 짧아 보인다. 나는 다급하게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보통 비행기는 이륙할 때 15도 정도 각도로 천천히 위로 올라가게 마련인데, 그 비행기는 이륙하는 순간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보는 히말라야 설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구름보다 높이 솟아 올라 있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곳 어딘가에서 치타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를 쫓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코끝이 시리다. 치타는 나와 헤어진 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다른 트레커들을 만나 밥을 얻어먹으며 잘 살았을까?
지금도 나는 때로 히말라야 설산 사진을 보며 치타를 생각한다. 히말라야 설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사나운 동네 개들에게 위협을 받으면서도, 한 줌의 밥을 얻기 위해 나를 따라오던 치타를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밥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먹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들의 숙명과, 밥을 얻기 위해 견뎌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