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경계 너머로 자아를 확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모든 실체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가족이다.
1945년 시점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가족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구미권 사회 전역에서 사람들은 자기 가족에 대한 의무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다가 미국에서는 1980년경에, 영국에서는 그보다 조금 뒤에 최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고학력자들과 저학력자들로 갈라지는 새로운 분단이 여러모로 확대되면서 두 집단에서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오래도록 탄탄했던 윤리적 가족이라는 신념 체계는 이런저런 충격에 흔들리며 위태로워졌다. 윤리적 가족이 시들해지자 그로 인해서 사회적 괴리도 더욱 심해졌다. 그러한 괴리 확대가 몇 가지 추악한 결과를 초래했다.
상류층에 가해진 충격들
윤리적 가족의 규범을 타격한 첫 번째 충격은 테크놀로지였다. 산아제한을 위한 피임약 덕분에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지적인 충격은 당연히 대학교의 교정에서 시작되었고, 따라서 교육 수준이 높은 새로운 계층에 주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새로운 윤리의식은 가족 대신에 자아를 내세웠고, 의무 이행으로 얻는 존중 대신에 자아실현으로 얻는 존중을 내세웠다. 여성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자이실현의 변형은 페미니즘이었고, 남성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변형은 돈 많은 한량, 플레이보이였다.
새로운 계층의 많은 가정에서 부부의 어느 한쪽은 그들의 자아를 실현하려면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녀가 이 새로운 규범에 적응해가는 사이, 엘리트끼리 짝짓는 결혼의 성격이 변했다. (...) 대학이 팽창하니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과 여성의 숫자가 균등해졌고, 이것이 배우자를 고르는 짝짓기를 대폭 향상시키는 또 하나의 파고를 일으켰다. 고학력층 남녀는 서로 잘 맞는 동반자를 발견하는 방법을 배웠다(이런 짝짓기 향상은 나중에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데이트 짝짓기로 계속 이어졌다.)
동거와 동류 교배(또는 동질혼) 덕분에 고학력자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부부로 자리를 잡아갔고, 그 덕분에 그들의 이혼율은 낮아졌다. 성취도가 높은 부모들은 자신의 성공을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예전의 양성 간 교육 불균등을 반영했던 성별 위계질서는 사라지고, 고학력층 부모 양쪽이 합세하여 자식의 조기 영재 교육에 달려드는 조류가 나타났다.
고학력 계층의 자식 양육은 시간을 더 소모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들 가정은 그에 맞추려고 출산을 억제하여 아이들의 수를 줄였고, 따라서 가정의 크기도 줄었다.
고학력층 부부의 부모는 자식과 함께 사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그뿐 아니라, 예전에는 자식들로부터 얼마간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반대로 부모가 중간 세대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것은 한편으로 은퇴기에 들어선 고학력 고령자들의 생활이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부모와 부모가 세 번째 세대의 양육에 성공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세대 간 협력을 하는 새로운 현상이 부추긴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 성취를 통한 자아실현의 새로운 윤리가 다소 좋지 않은 점들을 동반하기는 했어도 이 정도는 저학력 계급을 타격한 충격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하류층을 타격한 충격들
자료를 보면 피임약과 낙태에 동반하여 10대 소녀들 가운데 (고학력층 절반을 뺀) 하위권 절반의 저학력층에서 성행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10대 소녀 집단에서 16세 이전에 성행위를 경험한 소녀들은 1960년대에 5퍼센트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23퍼센트에 달했다. 반면에 대졸 여성들의 경우 미성년 시절에 성행위를 경험한 비율은 2000년에도 11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래서 빚어진 결과는 오래 사귈 의향이 전혀 없는 성행위로 인해서 10대 저학력자들의 임신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류층을 타격한 결정적인 충격은 경제적인 것이었다. 제조업의 쇠퇴와 더불어 중년 남성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가장의 권위는 생계비를 벌어오는 역할에서 나왔다. 이러한 역할 규정에는 끔찍한 함축이 내포되어 있었는데, 일터에서 불필요한 사람이 되면 집에서도 불필요한 사람이 됨을 뜻했다.
당연히 이러한 상황은 이혼을 부르는 화근이 되었다.
저학력자들의 이혼은 처음에는 고학력자들과 마찬가지로 급증했지만, 고학력자들과 달리 계속해서 늘어났다. 2010년에 이들의 이혼 빈도는 결혼 3건당 1건으로 고학력자들의 두 배에 달했다.
“어린이의 권리”를 위한 국가의 의무는 아이가 학대받고 있다고 볼 근거가 있으면 오히려 아이를 친부모로부터 격리하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아이들을 친부모로부터 격리하는 사례가 아주 많이 일어난 반면에 새 부모에게 입양되는 경우는 저조했다. 그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결과는 격리는 되었지만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상태(limbo)”의 아이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확실한 상태”란 아이들을 일정 기간 양육할 잠정적인 수양부모에게 국가가 돈을 지불한다는 것을 뜻했는데, 아이들을 이 수양부모로부터 저 수양부모에게로 내돌리는 일이 많았다.
그처럼 아이와 맺어지는 관계는 상거래와 유사한 반면, 아이들에게는 분명한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한 관계는 일시적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데에 반해, 아이들에게는 영구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더욱이 그러한 관계는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지 못한다.
사회적 괴리의 영향
이처럼 특정 집단에서 선별적으로 가족의 의무가 해체됨에 따라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것은 아이들이다. 그러한 영향이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미국이고, 앞으로 유럽의 문화도 그 길을 따라갈지 모른다. 오늘날 미국의 전체 어린이 가운데 18세에 이를 때까지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랄 것으로 추산되는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 앞에서 분석한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이 현상은 계급에 따라서 차이가 아주 크다.
미국의 전체 가구 중에서 교육 수준이 상위 절반에 속하는 고학력 계급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가족의 의무가 대체로 복원되었을 뿐 아니라 향상되었다. 반면에 나머지 절반인 저학력 가정에서는 한 부모 슬하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이 집단의 전체 어린이 가운데 3분의 2에 달한다. (박카스 曰 : 상류층 아이들은 부모 모두가 붙어서 더 열심히 도와주고 챙겨주는 반면, 하류층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망이 사라진 경우가 많아져서, 같은 나라 안에서도 아이들이 출발선에서 크게 갈라지고 있다.)
학력 수준이 낮은 절반의 인구층에서는 많은 가정이 빈 껍데기로 해체되고 있는 반면, 학력 수준이 높은 절반의 인구층에서는 왕조 가족이 번창하고 있다.
학교 교육을 중도에 이탈한 부모들은 아이들의 복종을 독립심보다 거의 4대 1의 비율로 더 중요시한다. 대학원 교육을 받은 부모들은 이 비율이 정반대로 뒤집혀 있다.
전문직 부모의 아이들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단어보다 북돋는 단어를 8배 더 많이 듣는다. 반면에 복지 급여로 생활하는 부모의 아이들이 듣는 단어 가운데 사기를 북돋는 단어는 사기를 떨어뜨리는 단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 소득충의 가정 교육비 지출은 두 배로 늘어서 가구당 연간 6,600달러로 증가한 반면, 하위 10퍼센트 소득층에서는 가구당 750달러로 오히려 감소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결정적인 시기인 취학 전의 교육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퍼트넘은 인지 능력이 미국에서 최하위 집단에 속하는 고학력 계급 아이들의 대학 입학 승산이 인지 능력이 미국에서 최상위 집단에 속하는 저학력 계급 아이들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카스 曰 : 지능이 낮더라도 고학력 부모의 아이가 대학 진학 확률이 높고, 지능이 높더라도 저학력 부모의 아이가 대학 진학 확률이 낮다. 즉, 아이의 능력보다 부모 배경이 아이의 미래를 더 많이 결정한다.)
윤리적 가족의 복원
윤리적 가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권리를 획득한 개인이 차지한 결과는 승리보다는 비극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가족 형태의 윤리적 가족은 모두 사라졌고, 이제는 핵가족 형태의 왕조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가족의 테두리가 너무 비좁아진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다행히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훌륭한 결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수명이 늘었다는 점이다. 수평적인 방계 가족은 축소되었지만, 수직적인 직계 가족은 확대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3대를 넘어 4대로 이루어진 가족이 많다. 그러한 가족에서 최고령 세대는 꽤 널따란 범위를 관장하는 어른이다. 각 세대가 두 아이를 둔다고 치면(마지막 세대는 미성년), 최고령 생존자는 자기 슬하의 3대에 걸쳐서 핵가족 네 가정과 구성원 20명을 아우른다.
그러한 직계 가족의 최고 어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무런 목적 없이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 있을 필요는 없다. 확장된 윤리적 가족의 의무를 감시하며 존중의 힘을 되살리는 역할을 그들에게 부여하자. (박카스 曰 : 가족이 해체되면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개인의 권리만 강조할 게 아니라 세대 간 연대와 책임을 복원해야 한다.)
5장 윤리적 가족 요약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윤리적 규범은 기술 발전과 개인의 자아실현 강조로 약화되었다. 피임약과 낙태의 확산, 이혼율 증가 등으로 가족의 전통적 역할이 흔들리면서 사회적 불평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고학력층은 대학 교육 확대로 서로 잘 맞는 배우자를 찾고, 동질혼과 조기 교육을 통해 자녀 양육에 집중하며 이혼율을 낮추고 자녀의 기회를 확대했다. 반면 저학력층은 경제적 불안과 조기 성행위 증가 등으로 가족이 불안정해지고, 한 부모 가정과 임시 양육 상태의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출발선에서부터 격차가 심화되었다.
하지만 수명 연장과 핵가족 중심의 ‘왕조 가족’을 통해 세대 간 연대와 책임을 강화하면, 최고령 세대가 가족 내 의무와 존중을 감독하며 윤리적 가족의 기능을 일부 회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족 해체로 발생한 사회적 문제를 완화하고 아이들의 안정과 출발선 격차를 줄일 가능성이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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