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자본주의의 핵심에 있다. 자본주의를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썩었다고 경멸하는 대중 정서의 주된 원인은 자꾸 나빠지는 기업의 행동에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금융학 교수 콜린 메이어와 같은 대학교 경영 대학원의 전 원장이 지휘하는 이 프로그램은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기업의 목적은 자신이 고객과 노동력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정했다. 이익률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지속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제약 조건이지, 목적이 아니다. 기업은 왜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까? 공공정책은 그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윤리적 기업인가, 아니면 흡혈 오징어인가?
기업은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최고 경영자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서 모두가 같은 목적을 공유한다는 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고위 경영진의 핵심적인 책임이자 능력이다.
토요타는 수십 년 전에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새로운 형식을 개척했다. (...) 토요타의 경영진이 도입한 가장 극적인 조치는 조립 라인 전체를 쭉 따라서 그 위에 매달아두는 안돈(Andon) 줄을 설치한 것이다. 이들은 어떤 노동자로도 조립 라인에서 불량을 포착하면 가장 가까운 줄을 잡아당기도록 했다.
그러면 즉시 조립 라인이 전부 멈춘다. 조립 라인식 생산은 그 속성상 고도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라인이 멈추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토요타 공장에서 그 비용은 분당 1만 달러였다. (...) 그러므로 이 정책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적대시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서 일할 것이라고 경영진이 정말로 신뢰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서, 그 정책은 회사의 목적의식과 잘 들어맞는 노동자들의 목적의식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GM의 경영진과 미국 자동차 노조 간의 반목을 상호 신뢰로 바꾸어야 했다. 이어서 “그들에게 로봇이 있다면, 우리도 로봇을 확보할 것이다”가 “그들에게 안돈 줄이 있다면, 우리도 안돈 줄을 설치할 것이다”로 바뀌었다. 최고 경영자의 지시로 GM의 조립 라인 전체에 안돈 줄이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최고 경영자가 문화 변혁을 선포할 수는 있었지만, 조립 라인의 하찮은 현장 관리자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태도를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이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쌓여온 반감이 하루아침에 녹아 없어질 수는 없었다. 회사에 재앙적인 피해를 초래할 기회가 주어지자 몇몇 노동자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잘못된 이유로 안돈 줄을 잡아당기는 경우가 생겼고 생산성이 엉망으로 추락하자, 조립 라인의 관리자들에게 책임이 추궁되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현장 관리자들은 안돈 줄을 손이 닿지 않는 천장에다 매달았다. 문화를 바꾸려고 한 최고 경영자의 시도는 경영진이 노동자들을 신뢰하지 않음을 아주 선명히 드러낸 채 실패로 끝났다. 적대적 정체성은 더욱 심해졌다.
누가 기업을 통제하는가?
그 답은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엉뚱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는데에 있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내놓은 사람들에게 기업의 소유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의 원리는 위험을 떠안은 사람들이 기업을 통제할 필요를 가장 절실히 느낄 뿐만 아니라 경영자들을 꼼꼼히 따져볼 동기도 가장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리는 점차 현실과 멀어졌고, 갈수록 더 심하게 괴리되었다.
이 문제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침울하고 장황한 문제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실제적인 해법을 살펴볼 때이다. 다행히 이 문제들은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특징이 아니라 공공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그리고 그 잘못은 바로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 공공정책이 잘못된 이유는 낡은 이데올로기들끼리 요란하게 치고받는 와중에 정책이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파 이데올로기는 “시장”에 대한 신뢰를 주창하면서 모든 정책 개입을 경멸한다. 그들의 해법은 “정부는 기업에서 손을 떼라. 규제를 완화하라!”이다.
좌파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를 경멸하면서 기업과 펀드의 관리자들을 탐욕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의 해법은 기업에 대한 국가 통제, 그리고 경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거점들을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다.
이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은 둘 다 근거가 빈약한 데다가, 공적인 토론의 준거가 그것들에 장악된 탓에 생산적인 사고가 가로막혔다.
기업 내 권력의 변경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는 이제 ICI가 아니라, 존 루이스 파트너십이다. 오래 존속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 회사의 권력구조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 회사를 소유하는 주체는 회사 노동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경영되는 신탁 기금이다. 이러한 소유 방식을 반영하여, 이 회사는 이익의 큰 몫을 노동자들에게 연례 상여금으로 지급한다. 더구나 최고 경영자든 상점 보조원이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 이익을 분배하는 상여금의 지급률은 최고 경영자나 상점의 노동자나 똑같다.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서 모든 노동자가 발언권을 가진다.
그런데 노동자를 이사회에 대표하더라고 그들이 회사 소유주와 공모하여 대표되지 않은 이해관계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러한 불이익을 당할 만한 가장 분명한 당사자는 사용자, 즉 고객을 것이다. (박카스 曰 : 회사의 경영방식에서 노동자만 중심이 되다 보면 고객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공정하려면 이런 위험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규칙이 효력을 발휘하는가?
일종의 공익 서비스처럼 커져버린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에 관한 규제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그러한 서비스를 규제하려면 보통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규제할 능력은 압도적으로 국가 차원에 머물러 있다. 다수의 국가가 협력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이유는 그러한 인터넷 회사들이 압도적으로 미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자국 기업들이 이익을 누리는 사업을 다른 나라들이 규제하자고 하면, 미국 정부는 기껏해야 이중적인 모호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렇게 규제에 내재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요즘 시류를 타는 대안은 공적 소유이다.
공적 소유
지금 영국에서는 정부가 규제하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공익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아주 커서 사람들 대다수가 철도, 수도, 전력 회사와 같은 공익 서비스 회사들을 공적 소유하에 두는 국유화를 선호한다.
이는 참 얄궂은 일인데, 왜냐하면 이 공익 서비스 회사들이 원래는 모두 공적 소유하의 독점 회사였을 뿐만 아니라, 그 회사들의 성과를 못마땅해하는 대중의 불만이 그것들을 사적인 영리 회사로 바꾼 계기였기 때문이다.
공적 소유하에 있을 때에 공익 서비스 회사들은 피고용자들에게 포획당하는 문제에 시달렸고, 대단히 빈번한 파업으로도 그 문제가 표출되었다. 또한 정부가 관리하는 회사이다 보니 정치에 휘둘려서 서비스 가격이 너무 낮아졌고, 그로 인해서 충분한 투자가 따르지 못했다.
현실적으로는 민간 기업이 경영할 때에 좀 더 효과를 보는 산업이 있는가 하면, 효과가 나빠지는 산업도 있다.
철도는 민간 기업하에서 운영 효과가 좋아지는 반면에 수도는 나빠진다. 철도가 민간이 경영할 때에 잘 돌아간다는 증거는 소비자 이용률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얼마나 심하게 투덜대든 간에 사람들은 그들의 의사를 철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행동으로 표시했다.
철도 이용률은 1998년의 사유화 이전 공적 소유하에 있던 수십 년간 매년 떨어지다가 사유화 이후로 매년 빠르게 상승했다. 민간이 경영할 때에 수도의 운영 효과가 나빠진다는 증거는 무엇보다 아주 높은 이익률이 배당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는 그만큼 기업과 규제 당국 간의 정보 비대칭이 심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통할까?
과세
최대의 규모가 최고의 생산성을 뜻하는 상태에 도달한 산업들에서는 법인세율을 기업의 규모에 따라서 차등화하자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 과세의 목적은 규모의 경제를 방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로 생기는 이득 가운데 일부를 사회를 위하여 세금으로 거두자는 것이다.
규모에 따라서 차등화되는 새로운 세율을 소소한 수준에서 도입하고 나서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들 가운데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들 중의 하나는 대기업들의 반대 로비가 굉장히 강력하리라는 점이다.
공익을 기업 이사회에 대표하기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사회에 장기적으로 이로운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그러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은 기업 자신의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에 기업 이사회의 결정에서 기업 이득을 위해서 아주 분명하고도 중요한 공공의 이해관계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공익을 대표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공익을 기업 이사회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익에 대한 충분하고도 마땅한 고려를 모든 기업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의무화하도록 법률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공공의 작은 이득을 위해서 커다란 손실을 부담해서는 안 되겠지만 기업의 작은 이득을 위해서 공공의 이해에 커다란 손실을 유발한다는 합당한 추정이 가능한 사안일 경우 법적 소송이 가능하도록 명시하면 될 것이다.
공익을 감시하기
일단 어느 사회에 기업의 올바른 목적을 이해하고 그것을 규범으로 수용하는 시민들이 충분한 수에 도달하면, 시민들 스스로가 기업의 양질의 행동으로 유도하는 닻이 된다.
이것은 호혜적 의무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지탱하는 시스템이자, 성공적인 모든 사회의 특징이다.
참여자들이 어떤 임계 수준의 규모를 넘어서면, 기업의 부당한 행동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커져서 그럴 생각을 품기 어려워진다.
당신의 회사가 훌륭한 목적의식을 가지도록 고무하면 이는 그 행동 자체로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다. 반면 그런 목적이 없는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자신의 영혼을 파괴한다. 다음 장에서 보듯이, 행복은 금전적인 성공에서 나오지 않는다. 당신이 사회적 목적이 없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그것을 바꿀 현실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할 때 – 당신의 일자리를 바꾸라.
이런 새로운 정체성, 규범,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을 더 보람차게 만들어줄 것이다.
윤리적 시민들은 기업의 목적을 이해하고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러한 목적이 함축하는 규범을 인정하면서 존중과 불신의 두 가지 압력을 통해서 기업이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고무한다. (박카스 曰 : 윤리적 시민이 많아질수록 기업은 좋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시민 자신도 그 윤리적 감시자 중 하나여야 한다.)
4장 윤리적 기업 요약
기업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며, 최근 대중의 불신은 기업이 이익만을 추구하며 사회적 책임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었다. 본래 기업의 목적은 고객과 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고, 이익은 이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 권력은 자본 제공자가 아니라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와 경영자에게 집중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목적이 희생되었다.
토요타처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경영은 윤리적 기업의 모델이 될 수 있지만, GM 사례에서 보듯 신뢰가 부재한 환경에서는 실패로 끝난다. 따라서 기업을 윤리적으로 만들려면 공공정책의 개입이 필요하다. 우파의 규제 완화론이나 좌파의 국유화론은 모두 극단적이며, 실제로는 기업 지배구조와 공적 규칙을 현명하게 설계하는 것이 해법이다.
대안으로는 노동자 지분 참여 모델(존 루이스 파트너십), 공공의 이해를 기업 이사회에 반영하는 제도, 대기업에 대한 차등적 과세, 공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민간·공적 운영 방식을 구분하는 정책이 제시된다. 또한, 시민들이 윤리적 기준을 공유하고 기업 행동을 감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윤리적 기업은 제도적 장치와 시민의 윤리적 감시가 결합될 때 가능하며, 이는 자본주의가 단순한 이익 기계가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을 지탱하는 제도로 기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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