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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현 Jul 18. 2019

8.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지난 주에는 모 회사의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결과발표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미리 글을 쓰는 편이라, 발행 시점에는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겠네요. 서울시에서 하는 프로젝트에도 지원했는데, 면접 날짜가 잡혔습니다. 어쨌거나 두 달 가까이 서류광탈에 멘탈이 갈리다가, 전에 일했던 회사 분들을 더러 만났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인간이 가장 센치하다는 새벽 세 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는 프리랜서 방송안무가인데, 좋은 사람과 좋은 기분으로 기분 좋게 술을 마셨더군요. 삼십 분 정도 통화를 나눴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나는 네 글을 읽으며 힘을 얻는다.


저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학생 때의 친구를 만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힘들다는 말을 아끼게 됩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됩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겠지, 연락이 없다면 잘 살고 있는 거겠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집니다. 결혼을 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도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SNS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친구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락도 더 뜸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손 닿는 거리에 휴대전화가 있고, 근황은 언제나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연락처나 SNS 계정을 알고 있다면 참 쉽죠. 해서 연락을 않게 됩니다. 어쩐지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내래 조선으 괴기맛을 보여주갓어! 한식을 먹고 싶다는 까를로의 투정에 밥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만들어 달라는 인간들이 늘어납니다. 10인분 불고기 파스타를 만듭니다. 이게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밥을 해달랍니다. 귀찮아 죽겠지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나는 돈을 내지 않습니다. 식객이 늘어나면 인건비도 생깁니다. 창조경제 만세! 팜플로냐를 떠나 순례길이 끝났을 때 10kg가 빠졌습니다.


저는 SNS를 일기장처럼 사용합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도 제 근황을 알고 있습니다. 업데이트의 시간이 줄어듭니다. 장단점이 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쓸 수는 없습니다. 탈락 근황 따위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읽는다면 피곤한 이야기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인생의 근황은 늘 업데이트 되고 있어서, 스페인을 갔을 때도 "먹고 살기 좋나보다"하는 말보다, "그동안 고생했는데 건강히 잘 다녀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몇 년 전에는 지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당신이 결혼할 때 갚을 테니 여행경비를 제공하라"고 삥을 뜯어서, 몇 달 아시아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죠. 다행히 대부분 결혼하지 않아서 무이자 대출의 신세계를 체험 중입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동료가 생깁니다. 혼자 꿋꿋하게 가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날짜에 출발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그룹을 형성합니다. 순례길이 아름다운 건 잠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풍경, 그늘 하나 없는 밭과 밭의 연속이 됩니다. 평지를 20km 정도 걸으면 미치겠다고들 합니다. 별 생각이 없어집니다. 배고프다, 목 마르다, 다음 마을은 어디지, 화장실 가고 싶다, 힘들다, 발 아프다, 쉬고 싶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건 친구입니다.


낙서 중에는 이런 낙서가 있습니다. "혼자 걸으면 빨리 걷지만, 함께 걸으면 멀리 걷는다." 물론 위의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유명한 말이라 기억에 남기고 사진으로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해서 사진을 찾아보려니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말이라 괜찮습니다. 앞서 길을 걸었던 누군가의 응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들 힘을 얻습니다.


우리 그룹은 20명 정도였습니다. 어쩌다 생장에서 함께 출발한 한국인이 여덟 명 정도였습니다. 네다섯 명의 스페인 사람도 있었죠. 홍콩, 대만, 미국, 캐나다, 영국,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파라과이에서 온 친구가 있었죠. 미국인도 서넛 있었습니다. 가는 방향이 같고, 갈림길이 거의 없으니 보는 친구를 늘 다시 봅니다. 오늘은 어디서 잘 거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 보통 비슷한 마을에서 함께 지냅니다. 24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냅니다. 아침과 저녁을 함께 요리해 먹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길은 길고, 고통을 잊는데 대화보다 좋은 건 없습니다.


큰 도시였는데 어디인지 모르겠네요. 5층 정도 되는 건물에 거대한 할아버지의 얼굴과, 그의 몸에 가득한 세요(도장)가 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풍경과, 기부제 알베르게 앞의 그래피티는 기억이 나는데 동네 이름은 기억나지 않네요. 무튼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림에서 많은 걸 느끼게 됩니다.


1) 할아버지입니다.

2) 건강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요? 체형은 퉁퉁한 편입니다.

3) 각 지역의 도장이 있습니다. 마치 타투처럼. 그런데, 할아버지입니다.

4) 5층 정도 되는 건물에 그려진 거대한 그래피티입니다. 그런데,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저런 그래피티가 있다면 어땠을까요? 제주도 순례길에 그림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후에 생길 일은 상상에 맡깁니다.


가장 늙은 순례자는 76살 스페인 할아버지 루디였습니다. 도인처럼 하루에 50~60km를 걷는 할아버지였죠. 가장 많은 순례를 한 사람은 23번 순례길을 완주했다는 알베르게 주인아저씨였습니다. 나이는 기억나지 않네요. 83년인가 첫 순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첫 순례를 개와 함께 했는데, 그 과정에서 크게 다리를 다쳤고, 지금도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첫 순례를 실패했고, 이후 스무 번 가량을 더 걸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프랑스길에 알베르게가 몇 개 되지 않아서, 대부분 성당에서 자거나 노숙을 했답니다. 그러다 마을에 정착해 다른 순례자들에게 싼 값에 방을 내어주고 있었죠. 왜 그렇게 많이 걸었냐 물으니, 큰 이유는 없답니다. 자기와의 싸움이라거나, 신의 부름을 받았다거나, 뭐 그런 거창한 이유는 없었죠. 그냥 걸었고, 언젠가 다시 걷겠지만, 아마도 그 숙소에서 일하다 죽지 않을까 싶답니다.


자다 말고 껌을 씹는데 맛있네요.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껌이 맛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화가 납니다. 아, 사소한 일에 화내지 않기로 합니다. 세상에는 화낼 일이 많습니다.


첫 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론세스바예스 성당 알베르게에 도착합니다. 산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신부님은 스페인 사람입니다. 이제 동양인을 보면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을 이해합니다. 성당 투어를 해주십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카틀라가 스페인어-영어 통역을 해줍니다. 어쩌다보니 영어-한국어 통역을 맡았는데, 덕분에 그룹 사람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에서부터 헐만, 앨런, 루디, 아름, 은영, 카틀라, 크리스, 지은, 브리짓, 건우, 리즈입니다. 이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질리도록 질문을 받습니다.


"한국에 전쟁났어?"


한국은 몰라도 북한은 다 아는 나라입니다. 가끔 노쓰-코리아에서 왔다고 농담합니다. 덕분에 한동안 킹 오브 더 노쓰 준 스노우가 됐습니다. 본명이 준(Jun)이라서 그렇습니다. 종종 크리스가 농담을 던지면 저는 코리안 아미가 어떻게 휴먼을 킬 하는지 설명해줍니다. 야레야레, 와타시는 이십삼 개월 동안 살인 기술을 연마했다구. 와라바시로 닝겐을 킬 하는 방법을 알고 싶니? 스메끼리로 모가지를 야금야금 깎아줄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1000% 국문학 전공자입니다.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현대문학으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조선어 보급에 힘쓰고 있습니다. 글쓰기에는 성역이 없어야 합니다.


무튼 왜 이렇게 순례길에 한국인이 많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체감상 20~30% 정도의 사람이 한국인입니다. 경기도 가평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일본인처럼 생겼습니다. 심지어 일본을 가도 일본인이 길을 물어보고 명동에 가도 일본어로 호갱 당합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중국인 취급을 받습니다. 어쨌거나 동양인의 90%는 한국인입니다. 중국인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본, 대만, 아, 헐만은 홍콩에서 왔네요. 홍콩이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종종 잊어버리게 됩니다. 헐만 역시 명예 코리안이라 그렇습니다. 김헐만이라고 불렀거든요. 위 아더 월드 러브 앤드 피스라고 합시다.


빼앰! 와썹맨이 와썹! 정확히는 와따가썹! 저작권은 쭈니형에게 있으나 쿨한 쭈니형은 이 정도 사진 도용을 용서하리라 생각합니다. 꼬맹쓰는 쭈니형의 유-투브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쭈니형과 함께 걷는 순례길은 늘 즐거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사진으로 보니 저 아재들도 1000% 순례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지가 따로 없그든요...


코리아에 베리 유명한 티비-쑈가 있어. 유명한 뽀이-그룹이 얼마 전에 다녀갔거든. 그래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몇 년 전에는 독일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지. 한스 케르켈링이었나? <나의 산티아고>라는 영화였어. 한국의 남쪽에는 제주도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 400km가 넘는 트레킹 코스가 있지. 아마 그런 게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거짓말 좀 더해서, 만나는 모든 외국인에게 해줬습니다. 저는 올레길에서 순례길을 알게 됐습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일하시는 분들 중 심심치 않게 전직 순례자를 만날 수 있었거든요. 걷는 건 일종의 중독입니다. 지구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앞서 적었듯 생각을 자꾸 까먹거든요. 힘드니까요. 나한테 던지는 질문? 것도 하루이틀입니다. 일주일 넘어가면 현자타임이 옵니다.


두 유 노우 세이지 모드? 어? 현자타임? 어? 현자타임은 한국 사람들만 아는 단어인 모양입니다. 크리스와 까를로, 앨런과 이보 등등 친구들에게 현자타임을 설명합니다. 세이지 모드 고것이 무어냐 함은, 자기위로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급격하게 깨달음을 얻는 거야. 크리스가 묻습니다. 형 그럼 대-마법사? 그렇지. 나는 13써클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사용할 수 있단다. 인마 형이 어? 드래곤이랑 어? 밥도 먹고! 어! 사우나도 가고!


현자타임을 극복하는 방법은 친구와의 대화입니다. 온갖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문화에서 시작해 가정사, 앞으로의 목표, 심지어 세계 평화까지 갑니다. 루카스는 아헨 공대에 다닙니다. 공대에 다니고 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화학 쪽으로 진로를 바꿔야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루카스는 숙소에 오면 웃통을 벗습니다. 반바지만 입고 돌아 다닙니다. 동독 남자들에게는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여자 독일 사람은 기겁합니다. 극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루카스를 하프-네이키드-절먼 이라고 불렀습니다. 반 쯤 벗은 젊은이라는 겁니다. 좋은 라임입니다.


까를로는 모든 순례자에게 말합니다.


까미노(길)가 널 놀라게 할 거야.


예, 여러모로 놀라게 했죠. 가도 가도 끝이 없거든요. 진짜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눈 뜨면 씻지도 않고 밥 먹고 걷습니다. 걷다보면 땀이 날 테니까 씻을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순례자는 거지에 가깝습니다. 제대로 빨지 않은 옷을 입고, 배낭 하나 걸치고, 소금 범벅으로 길을 걷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가방에 챙깁니다. 헌데 늘 입는 옷만 입습니다. 그러면 가진 물건들이 사치입니다. 배낭에 물이 보통 1kg, 걷기 시작하고 한 주가 지나기도 전에 몇 그램이라도 줄여보겠다고 필요한 것 외에는 다 버립니다. 그러니 보통 가지고 다니는 물건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겨울에 시작했기에 평균 7~9kg의 배낭을 들고 다닙니다. 강제로 어깨가 넓어집니다. 다행이라면 몸무게가 줄어들어서 내가 나를 옮기는데 수월하다는 정도입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데 아직 눈이 녹지 않았습니다. 첫 날 30km를 걷다보면 배낭을 집어 던지고 싶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오르막을 가는지. 평소 달리기와 트레킹이 취미인데, 마지막 5km에는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쉬면 더럽게 춥습니다. 걸으면 땀이 비오듯 쏟아져 덥습니다. 그러면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쥐가 나면 삐뽀삐뽀 엠불란스 타야 합니다. 그런데 도로로 빠지는 길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동료가 있으니 악으로 깡으로 걷습니다. 아름다운 순례길? 그딴 거 없습니다. 예쁜 풍경도 잠시, 뒤지게 춥습니다. 쉬고 있으면 저체온증으로 얼어죽기 좋은 날씨입니다. 밤에는 - 5~10도 영하권으로 기온이 떨어집니다.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성당처럼 생겨서 물이라도 얻으려고 가보니 문화유산인지 잠겨 있습니다. 조난각입니다. 눈이라도 퍼먹고 싶습니다. 헌데 걷기 시작한 첫 날인데 장염이라도 생기면 말짱 꽝입니다. 아프면 큰일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한 시간 정도 걸었더니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합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대낮부터 성당 근처에 앉아 까를로와 함께 맥주를 마십니다.


그런데 대체 왜 걷냐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같은 생각입니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길을 몇 달 몇 년에 걸쳐 나눠서 걷기도 합니다. 사나흘 정도 휴가를 만들어 걷습니다. 하지만 열 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 사람에게는 큰 맘 먹고 모아둔 돈 털어서 오는 길입니다.


예쁘고 즐겁고 신나는 길은 없죠. 관광지가 아니니까요. 길의 70% 이상이 산, 밭, 들입니다. 대도시는 몇 개 없습니다. 가장 큰 도시도 부산이나 대전보다 작게 느껴집니다. 물집은 수도 없이 생깁니다. 발에 피가 철철 나는데도 걷습니다.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저작권은 오다 에이치로에게 있습니다. 국가적인 대무역전쟁 시기이지만 짤방은 검열하지 않기로 합니다. 우리에게는 가리비 껍데기가 동료의 증표입니다. 배낭에 달린 가리비는 순례자의 증명입니다. 이 드럽고 지겨운 길에, 나처럼 걷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계속 걷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도착까지 300km 정도 남았을 때, 까를로가 묻습니다. 준, 뭔가 놀라운 일이 생겼어? 아니 그런 거 없어. 길은 그냥 길이니까. 까를로가 말합니다. 준, 네게는 아직 열흘 정도가 있어,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리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100km 정도 남았을 때, 나는 까를로에게 말합니다.


까미노가 날 놀라게 만들 거라고 했지? 네 말이 맞았어. 나는 너처럼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거든.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기 전 평소와 다르게 자주 휴식을 갖습니다. 우리는 이 길이 끝나면 이제 평생을 살며 다시 만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이상을 매일 만나던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한다는 건 이상한 기분입니다. 모든 길이 끝나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잊고 살았던 커피 한 잔 값의 비트코인이 만우절에 대박이 터져 밀라노행 왕복 티켓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날 친구들은 참 많이 울었습니다.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뭐라 정의하기 힘든 관계의 사람들입니다. 세 번이나 프랑스길을 완주한 까를로는, 늘 사람을 만나기 위해 까미노를 걷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사람들에게, 순례자(Pilgrim)는 전혀 새로운 인간 관계라고 합니다. 전우애와 가까운 느낌인데, 군대가 강제로 하기 싫은 사람을 모아둔 집단이라면, 여기는 모두 자기가 원해서 고생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방에서 상경해 가족과 따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한 해에 두세 번 가족을 만납니다. 고향에 가면 친구도 만나야 하기에, 실제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한 해 길어야 사나흘도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24시간 대부분 한 달 정도 매일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가족처럼 보내게 되는 셈입니다. 먹고, 마시고, 잠들고, 걷고. 빨래와 요리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가족에게도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동료애가 생깁니다. 그리고 거의 모두, 긍정적인 경험들입니다.


적어도 이 길에서는, 동등하게 가진 물건들과 함께, 비슷한 속도로 걷고, 비슷한 것을 먹고 마시고,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서 잠들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을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해관계도 특별히 없죠.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는 거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내게 왜 이렇게 한국 사람이 많냐고 사람들이 질문했던 것처럼, 까를로에게도 거의 모든 사람이 물었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길을 걷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죠. 까를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아. 같은 길이지. 그렇지만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났어. 준, 너처럼 좋은 사람이 많았지. 나는 사람들의 인생을 들었어. 길은 같지만, 사람이 달랐지. 같은 길이지만 다른 색을 갖고 있지. 다른 바람과, 다른 비가 내리곤 했어. 다른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어. 첫 까미노로부터 7년이 흘렀군. 나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리고 더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 걷다보면 옛 까미노, 옛 기억과 사람들이 떠올라. 그러면 나는 과거를 걷는 기분이 들어. 순례자들은 뒤로 걷지 않고,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 하지만 과거를 걷는 기분이 들어. 중독되는 거야. 우리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거든. 나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지. 준, 분명히 너도 그렇게 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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