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자마자 퇴사한 신입, 전 그 이유를 압니다입사하자마자 퇴사한 신입, 전 그 이유를 압니다
"동기님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회사를 떠납니다. 회사 밖에서 계속 만나요."
지난주 동기가 퇴사를 했다. 직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차례 팀 이동을 요청했다고 한다. 결국은 아예 산업군을 바꿔 이직을 했다. 그렇게 아홉 번째 동기를 잃었다.
그리고 오늘은 홈쇼핑에서 일한 지 5년 차인 친구가 퇴사 짤(이미지)을 SNS에 올렸다. '세상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난다'는 문구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이번 달에만 이직한 친구가 셋(대기업 2명, 외국계 1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들은 대개 4~6년 차에 접어들었고, 주변을 보면 이 시기에 많이들 퇴사와 이직을 경험하는 듯하다.
많은 직장인들이 햇수 3, 5, 7을 주기로 슬럼프 혹은 퇴사 욕구가 커진다고 한다. 나 역시 욕심은 많은지 남들이 겪는다는 것은 다 겪었다. 직장 생활 3년 차는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여기서 어떤 배움을 하고 있는지, 방향에 맞게 가고 있는지 등 이런저런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질문한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나는 이 회사에 왜 남아있는가?' 스스로를 설득할 만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내가 떠날 이유가 무엇인가?' 반드시 떠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떠날 용기를 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리고 주변을 보면, 이 물음에 답을 찾은 MZ세대 직장인들은 이미 퇴사를 결행하고 있다.
대퇴사의 시대, 일의 의미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모든 직장인은 각자의 '일의 의미'를 품고 살아간다. 의미라는 게 본질, 핵심과 유사하다면, 일의 의미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왜 귀찮음을 뒤로하고 매일 출근해 많은 것들을 감당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래서 중요하다. 일의 의미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지금의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일의 애환은 있겠지만 각자가 가지는 일의 의미는 다 다르다. 내가 일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는 팀장님의 그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하루 눈 떠 있는 시간 중 50% 이상의 시간을 쏟고 있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우리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입사 4년 차인 나에게 일의 의미는 '배움과 성장'이다. 그 말인 즉, 일이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직무를 배우고 사회 스킬을 익히고 대인관계에 대해 알아가는 수단으로 의미가 더 크다는 뜻이다. 아직 저연차로 연봉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 회사가 아니라도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그렇기에 현재 일의 의미는 경제적인 것보다 '커리어 개발'과 '더 성숙한 사회인'이 되는 것에 있다.
MZ세대 직장인들의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 비율이 30%를 웃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이 들었다. 작년 11월, 잡코리아가 20대, 30대 직장인 34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2%가 입사 후 3년 미만에 퇴사했다고 답했다. 과연 대퇴사의 시대(The Great Resignation)다.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채용과 훈련 비용으로 들인 인풋과 조직 재구성 거래비용을 고려했을 때 저연차 퇴사자가 괘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만 놓고 보면, 본인의 기대치와 CDP(Career Development Path, 경력개발계획)에 적합하지 않아 퇴사를 결정하는 행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마치 소개팅과 같은 것이다. 소개팅도 사전 정보만으로는 상대를 파악할 수 없다. 만나봐야 상대가 나와 가치관이나 연애 스타일이 맞는지 알 수 있듯이 회사도 다녀봐야 판단이 선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MZ세대는 연애에 있어서도, 구직에 있어서도 과감히 만나보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나 역시도 대기업 공채로 합격한 회사에서 부서 실습 기간에, 생각했던 일과는 다른 업무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배치 이전에 퇴사를 했던 전적이 있다. 둘러보면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는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가 회사와의 핏(fit, 일의 의미 충족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성이 커진 배경이기도 하다. 사실 말이 쉽지 서로의 '핏(fit)'을 사전에 알기란 매우 어렵다.
2030 구직자의 시류
이상형을 물을 때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못생겨도 내 스타일대로 못생기면 괜찮다고. 각자의 이상형은 다르다. 이 세상이 그나마 평화로운 이유는 각자의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다양한 수요).
마찬가지로 구직자가 회사를 고를 때 우선시하는 가치도 사람마다 다르다. 연봉이 낮아도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는 사람이 있고, 업무 강도가 높아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괜찮다는 사람이 있다.
미시적으론 다 다르지만 거시적으로 시류라는 것이 존재하긴 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요즘 구직자들은 상대적으로 직무와 성장(미래 가치)에 보다 큰 가치를 부여한다.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동기부여 요인, 퇴사 요인 리서치들을 살펴보면 그 시류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2030 구직자의 시류 ①] 직장보다 직업
나와 동기들은 애초에 평생직장을 상정하지 않는다. 같이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이직 준비를 하는 동기들이 꽤 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며,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직도 방법이란 것에 공감하기에 서로를 응원할 뿐이다. 이처럼 직장보다 직업을 중시하게 된 배경에는 평생직장 가정(hypothesis)이 무너졌다는 변화가 있다.
한편, 회사의 윗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근속연수가 회사에 대한 로열티에 큰 영향을 준다고 느낀다. 본인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 것에 비례해 직장과 자아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저연차 젊은 사원들은 평생직장을 가정하지 않기에 기대하는 근속연수가 길지 않다. 자연스럽게 회사와 동질성을 느끼기보다는 일 자체에 더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그래서 2030 직장인은 좀 억울하다. 젊은 MZ세대 사원들에 대해 갖는 흔한 오해 중 하나가, 그들이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없어 선배 사원들과 달리 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퇴준생(퇴사와 취업준비생을 조합한 신조어)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직장 안정성이 낮아 언제 어디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저연차 직장인들은 오해와 달리 열심히 직무 역량을 개발하고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한다.
[2030 구직자의 시류 ②] 재미와 성장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직장인의 동기부여 요인 4위가 '재미'로, 8위인 '성과에 따른 보상'보다도 높았다. 나도 그렇지만 동료, 후배님들과 일의 의미를 논할 때마다 재미가 정말 중요한 요소임을 실감한다.
'일에서 재미를 추구한다는 건 어린애 같은 발상'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회사가 재미있으면 돈을 내고 다녀야지 월급을 받아선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2030이 정의하는 재미는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적 요소가 아니다. 그 재미는 일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성취할 수 있는 자극들이 있는지의 여부에 가깝다.
내 주변의 20~30대 직장인 10명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들이 재미를 느끼는 지점에 공통적으로 '성장' 요인이 있음을 확인했다. 새로운 직무 스킬이나 지식을 습득했을 때, 본인의 능력이 업그레이드되고 결과로 보여질 때의 성취감 등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단순 반복 업무에 지루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따라서 2030이 추구하는 재미는 성장과 연결된 자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회사라는 게 돈을 받고 일하는 곳이다 보니 원하는 직무에 발령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회사의 필요에 의해 배치된 곳에서 그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그것을 감내하는 역치가 앞선 세대에 비해 낮아진 것 같다고 나 역시 느끼고 있다.
개인의 삶이고 개인의 선택이라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순 없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관리의 부담이 가중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젊은 사원들이 일의 가치로 재미와 성장을 보다 더 갈망한다는 건 담당 업무와 본인의 니즈가 일치했을 때 더 몰입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외적 보상(연봉, 성과급, 복지) 못지않게 내적 동기(재미, 성장)가 강한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인사 운영을 해야 하는 이유다.
로열티 없어도 일은 잘하고 싶어
요즘 2030 직장인들은 '드로우앤드류'나 '퇴사한이형' 같은 자기 계발 유튜버와 함께 직장 생활을 하며, 회사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히 채찍을 찾아 맞는다. 여러 SNS 채널을 통해 남들은 어떻게 살고, 무엇을 계발하고 있는지 곁눈질한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태생부터 느꼈던 경쟁사회 생존자들이다. 회사 로열티는 낮을지 몰라도 일과 성장에 대한 열망은 크다.
각자가 처한 시대적, 개인적 조건이 다르다 보니 한 조직 내에서도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성장 욕구와 인정 욕구는 내 상사도 느끼는 부분이고, 상사가 느끼는 성과 압박과 소속 욕구는 나 또한 공감하는 부분이다. 결국 이해 못 할 것은 없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 직장인이라는 사실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 모두는 만난다.
※해당 기사는 2/24에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