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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된 피터팬 Dec 29. 2023

다양성 담론(6)_시스템은 어떻게 다양성을 희생시켰나

풍족한 사회와 작아진 개인

지난 1세기 동안, 산업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삶의 많은 것들이 획일화되었다. 테일러 경영의 과학적 관리법에 의해 과업은 잘게 분해되고, 작업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되도록 표준화되었으며 일정한 지침으로 교육되어 왔다. 균일화, 표준화된 것은 업무뿐이 아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생활 패턴을 갖게 되었다. 또한 소품종 대량생산 시장에서 개인의 취향보다는 기업이 공급하는 상품이 대중화되었고, 산업이 만들어 내는 트렌드에 의해 대중문화가 교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 작동하는 산업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본가는 속도와 효율성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성은 희생됐다. 개인의 개성과 취향, 다름은 표준화된 시스템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분명하게는, 상품 시장에서 소비자 개인이 본인의 개성을 추구하기 어려웠고, 모호하게는, 노동 시장에서 개인의 선천적인 성향과 기질은 그대로 발현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성향의 사람은 게으른 사람, 성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되었으며, 선천적으로 우호성이 낮은 사람은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지 않기 위해 본성을 억제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렇게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가치관과 성향, 취향 등의 비가시적인 영역에서까지 다양성과 개성을 희생시켰다. 사회는 풍족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은 소외되고 작아졌다.

 

그렇다고 기업의 잘못은 아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 조직이다. 근 100년 간 소품종 대량생산 전략이 소위 대중 시장에서 먹혔기 때문에 효율 추구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효율 시스템에서 다양성의 희생과 몰개성은 불가피하기에 기업에서 다양성은 오랫동안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학교라는 공간을 생각해 본다. 학교의 우선순위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의 학교는 오랫동안 획일적인 교과목과 식단, 정답 이외는 오답이라는 시험 양식, 상식과 규범이라 여겨지는 상벌의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결국 정해진 틀과 하나의 기준으로 우등생과 열등생이 나뉘고 학생들은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간다. 즉, 우리는 시스템을 내재화하는 것을 사회화라고 여기며 균일화되었다. 과연 학교의 목적성을 고려할 때, 효율이 최우선 가치일까?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절대적 수준의 풍요를 인정하게 되면서 양보다 질을 주목하게 되었고, 효율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성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고 학교에서도 더디지만 학생들을 개개의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움직임으로 ‘선택사항’이라는 장치를 늘려가고 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사기업에서의 다양성 추구다. 하나의 덩어리로 여겨졌던 대중시장이 개인화, 세분화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과 커스터마이징이 우세전략이 되고 있다. 소수 마니아층의 커뮤니티 형성, 가치소비 트렌드 등 소비자가 시장과 시스템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공공영역에서의 다양성 역시 시민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나답게, 내 취향과 기질을 존중받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시민의식을 갖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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