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회 먹고 싶어"
외출했다 돌아와 정신없이 밥을 먹는 남편에게 말했다.
더워진 날씨 탓인지 며칠 전부터 뭔가 상큼하고 시원한 게 먹고 싶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횟집에서 싱싱한 회 한 점을 상추에 싸서 먹을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기회를 보고 있던 주말 저녁, 남편이 볼일 보고 6시경 귀가한다기에 저녁으로 회를 먹으면 되겠다 싶어 마음의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의사를 밝힐 새도 없이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슥슥 말아먹는다. 예전과는 달리 당이 떨어지면 기력이 훅 가고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남편의 모습을 봤던지라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평소처럼 최소한 "저녁에 뭐 먹을까?"라고 묻지도 않은 채 자신의 밥과 찌개만 달랑 챙겨 와 먹는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순간, 이미 물 건너간 회 한 점을 그리워하며 나 또한 내가 먹을 밥 한 그릇을 식탁에 놓는 모드로 작동될 뻔했다. '그럼 그렇지, 내 마음을 이리도 몰라 준다니까. 아이고 내 팔자야~'하며 뾰로통한 얼굴로 밥을 먹고, 표현하지도 않은 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며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을 것이다. 그나마 어찌어찌해서 알아주면 기분이 풀어졌고 끝까지 알아주지 못하면 섭섭함을 품은 채 다음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용케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원하지?'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상대의 행동보다 내가 원하는 바에 집중하자고 정신을 가다듬으니 ‘회가 먹고 싶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혼자여도 좋다!'라는 용기가 생기자 남편에게 쿨하게 말했다.
"나, 며칠 전부터 회가 먹고 싶었어. 요 앞 가게에 가서 회 한 접시 포장해 와서 혼자라도 먹을까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혼자 먹는 모습이 아니라 함께 먹는 모습을 그렸다. 그것도 시원한 맥주와 즐거운 대화를 안주 삼아.
그렇게 그 구도는 깨진 줄 알았다. 예전처럼 자신은 밥을 먹었으니 혼자 먹으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은 "이거 얼른 먹고 나가서 같이 먹어."라고 했다. 참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걸 분명히 얘기하고 나니 마음도 편안해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서로 감정이 살짝 상할 수 있었던 순간이라 생각했는데 별일 없이 넘어가고 우린 '어마어마한 바다 회집'에서 맛있는 회와 매운탕에 맥주를 곁들이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평소 사람들에게 자기주장이 강하고, 소신 있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치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읽어 내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바에 집중하기보다 타인의 반응에 민감한 경우가 많았다. 상대를 배려하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며 내 인내를 시험하기도 했다.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 않고,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상대에 대한 섭섭함과 껄끄러움을 드러내지 않는데 쓰니 나는 나대로 병들었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원하는 걸 분명히 바라보고, 그걸 전달하는 일에 충실히 하려고 한다. 근데 막상 하려니 길이 나지 않아 서툴고 어렵다. 예전처럼 원하는 것 위에 덧씌워진 감정에 휘둘리려 한다. 상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판단하고 통제하려는 데서 벗어나 중심을 '나에게'로 옮겨 보려 애쓰고 있다. 첫발을 내디딘 어린아이처럼 뒤뚱뒤뚱 차근차근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