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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호용 Sep 25. 2020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명성산 약사령 길

한 때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그윽함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 매력에 빠진 나는 그녀에게 성금 다가갔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마력 같은 고혹함에 사랑의 열기는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나는 머나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으며 오랫동안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그녀와 만나는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엔트로피 수치는 그녀보다 내가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뜻하지 않는 신상의 변화로 인해 그녀에게 갈 수 없게 되었다. 간혹 그녀를 먼발치에서 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그윽한 미소와 녹색 풀 향기 그리고 달콤한 속삭임을 더 이상 접할 수 없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나의 의지로 그 단절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를 만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체취의 일부라도 느끼기 위해 나는 무언가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녀의 숨결도 맡을 수 없지만, 일말의 그녀의 향기라도 느끼기 위해 나는 마치 스토커처럼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 행위는 삶의 의미였는지 모른다. 그녀는 내 인생의 보석 같은 존재이며, 그것을 찾아가는 길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어떤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포천 이동에서 약사령으로 들어가는 군내 소형버스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쇄되었다. 약사령 주변에 농가 몇 채도 있고, 버스 이동 시간도 이동 읍내에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운행을 중단했다. 시골버스의 특징은 공적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있는 곳이면 따지지 않고 들어간다는 게 철칙인데, 머 내가 따진다고 다시 운행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아쉬운 만 토로하고 가겠다.      


하여 이동 읍내에서 택시를 잡아 약사령으로 들어갔다. 백운계곡 가는 삼거리에서 와수리 쪽으로 조금 가다 좌회전하여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약사령 들머리에 도착한다. 초입에 오토캠핑장이 있어서 여름에만 잠시 차량을 볼 수 있을 뿐 그 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는 외진 곳이다. 약사령 입구에 있던 버스 종점은 이젠 덩그러니 공간만 남아 산객을 무심히 마중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약사령 길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항상 그렇듯 초행이 아닌데도 처음엔  낯설고 설렌다. 낙엽도 진 늦가을이다. 메마른 잡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겨울을 예고라도 하듯 나무 가지들은 바싹 말라가고 그 텅 빈 길은 거칠고 차디찬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특유의 전방 냄새인지 모른다.          


사실 이곳은 군사지역이나 다름없다. 직선거리로 휴전선과 불과 20여 킬로 미터밖에 안 되고, 곳곳에 군부대와 시설들이 즐비하고, 약사골 왼쪽 능선 너머엔 대규모 육군 훈련장이 있어 평일에는 연신 포 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그리고 그 훈련이 있을 시에는 이 고개를 군에서 통제를 하곤 한다. 따라서 이 길은 숲길이나 임도가 아니라 군사도로의 일종이며 길은 척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거친 흙길을 가만두지 않고 악명 높은 오프로더들이 시시때때로 애용을 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이 고개 또한 오래전 민초들이 봇짐이나 지게를 메고 다니던 길이었다. 철원 지역에서 일동 이동 지역, 더 멀게는 화천으로 이동하는 소통의 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군 이동의 중요한 도로였다고 한다.      


고갯마루에 이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한 시간 남짓 걸리지만 위에서 얘기했듯이 강열한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숲의 향기와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그렇다고 화악산 애기 고개 같은 깊은 산의 기운이 배어있지도 않은, 그저 군용 지프차나 4륜 구동 차량들이나 좋아할 비포장도로라고 하면 정확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루하지 않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 또한 빠질 수 없다.     

2017년 11월 /약사령

그렇게 오르다 보면 약사령 마루금에 당도한다. 포 사격이 있는 날이면 고개를 통제하는 군용 지프차가 주차해 있던 공터에는 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각흘산과 명성산을 잇는 고개이며 각.명 종주의 중심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비록 보잘것없는 고개에 불과하지만 산악인들의 애환이 짙게 배어있는 곳이다.     


언제던가, 자등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누군가가 보인다. 그는 옛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공장 입구에서 능선을 치고 오른다. 이정표도 없고 명확하지 않은 등산로를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 오른다. 때론 잠시 바위를 릿지를 하기도 하고 급경사를 오르기도 하고 때론 좁은 산등성이를 비집고 가다 보면 울창한 잣나무 숲과 만난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흐른 날씨인데 키 큰 잣나무는 그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더욱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마 화창한 날씨였어도 그 숲은 결코 밝음을 쉽게 내줄 수 없을지 모른다. 언젠가 산행 도반과 함께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때 그는 무언가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잣나무 숲을 지나 된비알을 좀 하면 드디어 탁 트인 능선이 나타난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이 탄성과 함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온다. 이제부터 능선 산행의 진수를 맛볼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각흘산 능선의 특징은 속살을 들어낸 불모지화 된 황갈색 산등성이와 곳곳에 박혀 있는 박리화 된 기괴한 바위들의 조화 그리고 그 황량함이 주는 이질감이다. 대한민국 여타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이다. 소백산이나 신불산 같은 평전도 아니고 해남 달마산의 오밀조밀한 암릉에서 본  장쾌한 바다 풍광도 아니고 그렇다고 숲으로 형성된 모양도 아닌 한 마디로 성격 까칠한 산등성이다. 아마도 예전에 군사적 목적으로 능선을 깎아 놓은 것이, 얼마나 깊이 깎았으면 아직까지 제대로 된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능선은 광야처럼 삭막했다.     


각흘 능선의 늦가을은 황량하다. 더욱이 전방이라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인지 그런 느낌은 더욱 강열하다. 비슷한 위도 상에 있는 명성산 억새 능선은 그래도 포 사격장이 지척인데도 산악지역의 낭만성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각흘 능선은 전혀 그런 풍광과는 거리가 멀다. 겨울엔 눈이라도 쌓여 그 황갈색 땅을 덮어주면 그나마 삭막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지만, 늦가을은 을씨년스럽다.     

2016년 10월 / 각흘산 능선

그는 그렇게 시루떡 바위와 석이 바위를 거쳐 각흘산 정상에 오른다. 장쾌한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철원 평야와 휴전선 너머 북한 산야가 흐린 날씨에도 시야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두 시간 후 그가 걸어갈 약사령 능선과 억새밭에서 삼각봉을 거쳐 명성산 정상으로 이르는 능선 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가을 명성은 산악에 어떤 낭만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 풍광은 산이란 진정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산이란 무엇일까. 그 산에 몰입하게 하는 힘은 또 무엇일까.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능선보다 더 험하고 황량하다. 몇 년 전 산행 도반과 이 능선으로 내려갈 때 비를 동반한 천둥번개가 천지개벽을 하듯 세상을 뒤덮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던 우리는 바위 아래 몸을 간신히 숨기고 하늘의 노여움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은폐물이 없는 이런 능선에서 천둥번개를 만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그는 불모지 능선을 지나 드디어 숲길로 들어서서 약사령을 향해 빠르게 하산했다.       

2016년 10월 / 각흘산 정상에서 본 명성산
2016년 11월 / 각흘산 능선

그리고 그는 약사령 마루금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시 가파른 경사면을 오른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체력을 보충한 그는 종아리가 터지도록 된비알을 치고 올라 드디어 명성산 약사령 능선에 당도한다. 다리의 뻐근함도, 요동 치던 심장도, 거친 숨소리도, 광활한 평전 앞에서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소백산의 철쭉 평전도 있고, 영남 알프스와 천관산의 억새 평전도 등산객들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이곳 명성산 억새 평전도 그에 모자람이 없다. 삼각봉 아래 정상 안부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약사령 능선의 억새 평전과 그 뒤에 펼쳐진 각흘산 능선 전경은 조망의 측면에서 볼 때 그야말로 장관이다. 특히 겨울, 하얀 눈 위에서 점점이 느리게 움직이는 어느 산객의 무리를 명성 안부에서 보고 있노라면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공간이동을 경험한다. 사실 각.명 종주에 빠져 든 게 그 풍경에 매료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7년 11월 / 약사령 능선의 억새 평전

이제 탁 트인 완만한 평전을 음미하여 여유롭게 걸으면 된다. 터질 것 같았던 종아리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거칠었던 호흡도 순간 잦아든다. 세상은 천상의 길로 변해 있었다. 비록 몸은 지쳐가지만 짙은 억새 냄새를 만끽하며 오르다 잠시 쉬면서 뒤를 돌아다보면,  땀에 젖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들이 길게 늘어선 것이 보인다. 고도를 조금 더 높이면 그 발자국 선 길이는 더 길어지고, 그렇게 오르다 보면 명성산 주능선 안부와 만난다. 그 분기점 안부에서 뒤를 돌아다보면 자신이 걸어온 산등성이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몇 시간 전에 이곳을 바라보았던 황량한 각흘산 정상이 멀리 보인다. 산악 국가답게 한반도에 수많은 산들이 있지만 아마도 이런 멋들어진 풍광을 경험할 수 있는 산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이 아이맥스 장면을 시야에 담기 위해서 지독스러운 욕체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고, 그런 신념이 바로 알피니즘의 기본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지만 오늘의 등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늘길처럼 장쾌한 조망과 아기자기 한 암릉과 그리고 억새 평전과 마지막으로 기암 지역인 책바위 능선을 가로질러서 2시간 이상 더 가면 종착점인 산정호수가 나온다. 오늘 등정은 2개의 큰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노고를 필요로 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풍경들이 연속되어 그 노고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등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 속에서 그려지던 긴 여정이 사라져 간다. 이젠, 조립식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불어 터진 김밥을 집어 먹고 있는 나로 돌아온다. 바로 앞에 있는 명성산 들머리 이정표를 지나 경사면을 오르는 나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이내 매정하게 여운도 없이 사라진다. 기억은 이제 아주 멀리 가버리고 편린조차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제 저 길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 그 산길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하고 상상을 해보지만 그것이 갈애와 같다는 것을 알기에 열망하지 않는다.     


나는 화려한 등정로에서 빠져나와 다시 걷는다. 다시  수 없을 것 같은 먼 기억을 뒤로하고 나는 낙석 지대를 지나 고개 넘어 내리막길로 발길을 옮겼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조금 더 걸으면 가벼워질 것이다. 이제 이런 하찮은 길을 왜 걷느냐고 나에게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이다. 길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겨울이 문턱에 있지만 마지막 남은 홍엽이 마치 흑백의 화폭에 붉은 점 하나를 찍듯 을씨년스러운 흙길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군사도로의 황막함 속에서도 산은 잘 버텨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 흙길을 걸어가다 보면 멀리 용화저수지가 나온다. 오늘의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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