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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Mar 08. 2019

05 대망의 비트라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바젤 여행기


# 드디어 비트라


5개월 전 잡지에서 만난 그곳, 오늘 우리는 비트라에 간다.

독일 바젤역 Basel Badischer Bahnhof (스위스, 프랑스, 독일의 국경지역인 바젤에는 3개국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기차역이 따로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 철도는 Basel SBB 역사를 공유한다.)에서 탄 55번 버스는 2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국경을 넘어 독일 바일 암 라인 Weil am Rhein에 있는 비트라에 도착했다.


드디어!


좋은 것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대체로 1. 오래 들여다보거나, 2. 사진을 왕창 찍거나, 3. 결제를 한다. 정도의 행동 패턴을 보여왔다.

이 패턴은 비트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는 비트라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경의의 표하는 의미로 우리 여행 기간 중 이틀을 비트라에 할애키로 했는데,

첫째 날은 건축투어와 쇼룸 구경 후 '간단히' 샵을 둘러보고

둘째 날은 빅터 파파넥 victor papanek의 전시와 디자인 체어가 전시된 비트라 샤우디포 vitra schaudepot를 본 후 '진지하게' 샵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 첫째 날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ybridKIM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존 러스킨(영국의 예술비평가이자 사회비평가)의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해 얘기하며 이러한 우리의 행동 패턴(기념품을 산다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을 소유에 대한 욕망의 '저급한' 표현들로 등극시켰다.

하지만 비트라와 바젤의 디자인샵들을 기대하며 여행 일정과 상관없는 크기의 가방을 준비하고 그 절반을 비우고 떠난 우리를 비롯해 이러한 주장을 조용히 비웃고 계신 또 한 분이 있었으니, 바로 이곳 비트라의 전 회장 롤프 펠바움 Rolf Fehlbaum이다.


 바로 이분! 롤프 펠바움 Rolf Fehlbaum 출처 http://www.designdb.com/

펠바움은  7,000점의 가구와 1,000점의 조명을 포함 약 20,000점의 디자인 컬렉션 소유하고 있음은 물론, 비트라 캠퍼스라 불리는 스타 건축가들의 건축물 컬렉션까지 보유하고 있는 디자인계의 진정한 덕후 중 하나다.



#비트라 캠퍼스

출처 https://www.vitra.com

비트라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 Keyword 중 하나는 콜라주 Collage라 할 수 있다.

1934년 바젤의 작은 상점에서 시작된 비트라는 스위스 브랜드의 가구회사로 제조회사라기보다는 유통회사에 가까운데, 내부에 디자인 팀을 따로 두지 않고 디자이너 개인과 계약을 통해 프로젝트를 실제 제작은 아웃소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비트라가 유통하는 가구들의 명칭에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강조되어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비트라 캠퍼스는 롤프 펠바움이 건축가 프랭크 게리 Frank Gehry의 콜라주 Collage 개념을 채택하면서부터가 그 시작이다.

1981년 화재 이후 공장을 재건하면서 최초의 마스터플랜을 제안한 니콜라스 그림쇼 Nicholas Grimshaw는 단지 전체의 건물이 통일감 있는 형태로 채워진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는데, 이는 롤프 펠바움이 프랭크 게리를 만나면서 변경된다.

프랭크 게리는 비트라의 아이덴티티 Identity라고 할 수 있는 콜라주 개념이 가구 생산 방식뿐 아니라 단지 배치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각각의 건축물이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 비트라 캠퍼스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1981년 니콜라스 그림쇼를 시작으로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안도 타다오, 알바로 시자, 헤르조그 & 드 뫼롱, SANAA, 렌조 피아노 등이 비트라 캠퍼스를 채워 왔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프리츠커상 수상 직전 비트라 캠퍼스의 건축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들을 임명한 펠바움의 안목을 입증하게 된다.


게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앞에서 시작된 11시 30분 건축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나와 E 둘 뿐이었는데, 자신의 원래 직업이 작가라는 가이드는 우리에게 디자인계통 종사자인지를 물으며 '냄새가 난다'는 표현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가이드의 친절하고 열정적인 설명이 2시간을 밀도 있게 채울 만큼 비트라 캠퍼스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시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건축투어를 통해 자하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와 안도 타다오의 콘퍼런스 파빌리온의 내부 공간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비트라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 Vitrahaus


건축투어를 통해 펠바움의 건축물 컬렉션을 감상한 우리는 그의 디자인 가구 컬렉션을 보기 위해  Vitrahaus로 향했다.

비트라 슬라이드 타워에서 바라 본 Vitrahaus©hybridKIM

비트라의 플래그쉽 스토어 Flagship Store격인 이 건물 안에는 비트라의 클래식과 최신 디자인을 아우르는 컬렉션이 전시된 쇼룸 Showroom과 샵 Shop, 카페 Cafe가 있다.


박공 형태의 매스 mass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모습이 흥미로운 이 건물은 바젤의 자랑, 헤르조그 & 드 뫼롱 Herzog & de Meuron의 2010년 작이다.
'집의 원형' ur-type과 '쌓기 방식'stacking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적용되어 있는 '집의 원형'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자주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로 홈 컬렉션 Home Collection을 전시하는 이 건물의 용도에 부합다.
맥락 없이 쌓여있는 듯 보이는 12개의 매스 Mass는 조망을 고려하여 놓여 있으며, 교차하는 각각의 개별 매스와 건물의 각 층을 연결하는 유기적인 형태의 계단이 흥미로운 내부 공간을 만들고 있다.

 비트라의 디자인 컬렉션이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Vitrahaus의 내부 공간 ©hybridKIM
교차하는 개별 매스와 건물의 각 레벨을 관통하는 유기적인 형태의 계단이 만들어 내는 Vitrahaus의 내부 공간 ©hybridKIM
비트라의 디자인 컬렉션이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Vitrahaus의 내부 공간 ©hybridKIM

우리의 일상에 영감을 제공하는 디자인 컬렉션을 한 자리에서 본다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다.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로맨틱 가이 펠바움의 덕질과 소유욕이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의 비트라가 존재했겠는가.


그러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결제 행하는 일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의 '저급한' 표현이라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펠바움의 명성에 묻어가려는 이 얄팍함)


그렇게 믿으며, 우리는 모든 감상의 마지막을 샵 shop에서 마무리했다.

해가 지자 Vitrahaus에 불이 들어온 모습. 샵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비트라는 문을 닫고, 돌아가는 버스는 막차 밖에 남지 않았다.© hybridKIM



출처 https://www.vitra.com


1, 2 공장 Factory Building (Nicholas Grimshaw, 1981/1983)

출처 https://www.vitra.com


3 공장 Factory Building (Frank Gehry, 1989)

"예술적인 표현은 우리의 영혼에 활기를 준다" 유럽에서 진행한 프랭크 게리의 첫 번째 작품. 198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https://www.vitra.com


4 콘퍼런스 파빌리온 Conference Pavilion (Tadao Ando, 1993)

© hybridKIM

1995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 최초의 해외작. 그의 시그니처인 노출 콘크리트가 주요 재료로 사용되었고,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한 주제로 다루는 그 답게  비트라 캠퍼스의 기존 벚나무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건물 배치의 주요한 이슈였다. 독일의 웬 시골마을에 서양 건축가의 작품들 속에 있어서인지 동양적 감수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5 소방서 Fire Station (Zaha Hadid, 1993)

"건축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경계 너머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hybridKIM


어지러움을 경험할 수 있는 비트라 소방서의 내부 공간 ©hybridKIM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DDP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자하 하디드의 첫 번째 준공작. 1981년 화재 이후 소방서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건축되었으나 현재는 행사 및 전시회 등에 활용되고 있다. 건물 어디에도 직각은 없으며 내부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지러움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건물 중 하나이고(가이드는 반복적으로 크레이지 빌딩 Crazy building이란 표현을 썼다.) 대범한 선형에서 느껴지는 힘도 대단하다. 하디드는 여성 건축가 최초로 200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6 공장 Factory Building & Alvaro-Siza-Promenade (Alvaro Siza, 1994/2014)

"건축가는 아무것도 새롭게 창조하지 않는다. 맞닥뜨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단지 무엇인가를 변형시킬 뿐"

출처 https://www.vitra.com

조형적인 화려함을 강조하기보다는 건축물과 주변의 조화를 중시하는 알바로 시자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그 특성 그대로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 건물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계획되었다.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7 돔 Dome (Richard Buckminster Fuller, 2000)

출처 https://www.vitra.com

8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Vitra Design Museum Gallery (Frank Gehry, 2003)


9 비트라 하우스 VitraHaus (Herzog & de Meron, 2010)


10 공장 Factory Building (SANAA, 2012)

"우리는 위계가 없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은 곧 자유로운 순환이 일어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모든 곳에 골고루 빛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사람들이 우리의 건물을 white라고 느끼는 것은 그 노력들의 결과이다."

출처 https://www.vitra.com

축구장 2개의 크기를 합친 크기의 물류공장. 원형은 공장 건물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이 형태를 통해 차량 흐름을 간소화해 물류동선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점이 특징이다. SANAA는 이 공장의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펠바움의 안목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공장 내부 출처 https://inspiration.detail.de 이 건물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었다.


11 디오게네 Diogene (Renzo Piano, 2013)

©hybridKIM

거주를 위한 모든 기능 요소들을 통합하여 개발한 6㎡의 주거 Unit. 오두막을 현대적 형태로 해석한 이것은 세속적인 사치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 통 안에서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1998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렌조 피아노의 작품이다.


12 비트라 슬라이드 타워 (Carsten Holler, 2014)  

독일의 아티스트 Carsten Holler의 작품. 17m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꽤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비트라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므로 기회가 된다면 꼭 타볼 것을 권한다.

©hybridKIM


13 비트라 샤우디포 Vitra Schaudepot (Herzog & de Meron, 2016)

랄프 펠바움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가구 컬렉션(무려 7,000 점!)을 지하 창개방을 통해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수장고의 개념에 대해 재정의하기를 원했다. 창이 없는 단순한 박공지붕형태와 현장에서 가공된 거친 질감의 벽돌 마감이 특징이다. 이 단순한 형태는 옆에 서 있는 비트라 소방서의 역동적인 형태와 대비되어 시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단순한 박공 형태의 Vitraschaudepot ©hybridKIM
현장에서 가공한 거친 질감의 벽돌 마감 ©hybri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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