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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Feb 27. 2020

코로나 시대의 사랑

‘우리’는 누구고 ‘그들’은 누구인가.

코로나 때문에 모두들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라 복지회관도 성당도 문을 닫고 집에 갇혀 계실 팔순이 넘은 엄빠 걱정에 이런 거 저런 거 한국쇼핑 사이트에서 찾아 배달시키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었다.

20여면 전 미국에 와서 학위 받기 일 년 전쯤, 신랑이 캐나다의 학회에 참석하려고 300불쯤을 들여 호텔을 예약했다가 SARS 사태가 터져서 학회가 취소되었고, 호텔 예약 취소가 안되어 그 돈을 다 날려 망연자실했던 일이 있었다.

사실 지금은 돈 삼십만 원 별것도 아니지만 (많이 컸다) 그때는 우리 살던 낡은 학생 아파트 월세 반도 넘는 돈이었고, 부모님에게 전혀 손을 벌리지 않고 신랑 장학금으로만 셋이 사느라고 아이 발이 자라는 것도 겁이 나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병에 대한 두려움은 차치하고 그 잃은 돈 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던.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신랑 박사학위 받을 때쯤 한국 경제사정이 아직도 안 좋아 돌아가지는 못하고, 기댈 곳도 없고, 그래서 일단 미국에서 잡을 찾기로 하면서 우리 매일매일 막막하고 힘들 때, 언니 동생이랑은 예쁜 옷을 싸 보내주고, 엄빠는 라면 박스 보내시고, 남동생은 짬짬이 손편지와 이메일로 열심히 소식을 보내주곤 했었다,


미국에 ㅅ라면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예쁜 옷을 입고 갈 곳도 없어도 그때 가족들의 마음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었는지. 최근에 고인이 된, 배낭여행 초기 전도사 이규형 감독이 라면을 꼭 싸라고 하면서, ‘라면은 비상식량으로 싸라는 기 아닙니다. 맛있어서 싸라는 겁니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미국에서 파는 라면보다 한국에서 운 라면은 면발도 다르긴 했지만.


지금은 잘 풀려서 다행이지만 그때는 모두들 도울 수도 없는 일에 얼마나 애만 타셨을까.

엄마의 편지에, ‘용기를 내라’는 말을 가까이 두고 한 번씩 꺼내보며, 내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고 그야말로 다시 다시 용기라는 것을 깨닫던.

그래서 다시, 또 다시 용기를 내 보던.

사실 나는 조금 멀뚱한 사람이었지만, 친구들도, 훗날 트친들도,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가면 아무것도 되바라진 않고 좋은 곳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것을 맛 보여 주려 애쓰는 모습에, 나도 다정하기를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서로 선물과 편지를 주고받게 될 때마다, 받는 것은 되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준 마음은 금방 탁구처럼 틱 톡 틱 톡 받아쳐지는 게 아니라 하키 퍽처럼 피잉 돌고 돌아 누구에게 올지 모르게 온다는 것을 생각한다.


엄마는 어제 물건을 받고 기뻐하시며 늘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쩌냐고 하셨지만, 그렇게 모두들 써 준 마음이 이만치 지나도 내게 그대로 남아있는 걸요. 아직도 많이 많이 나눌 것이 있는 걸.


1665년 런던 흑사병이 일어났을 때를 기록한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대니얼 디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저서, <흑사병의 해의 일지>  앞부분에는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자세히 기록하는 이유는 후세에게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되돌아본 기록이 아니라 불안한 당시에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아는 마음이 오롯이 보인다.

헛소문과 그러 인한 패닉, 다시 이를 이용한 돌팔이 사기와 나라 간 무역갈등, 장소 폐쇄와 의심환자 강금, 그로 인한 탈출과 은폐로 인한 확산 등, 21세기와 어느 하나 다를 바가 없는 가운데, ‘자체’ 격리자들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남았다는 보고다. 처음 에이즈라는 질병이 알려졌을 때도 그랬듯이, 흑사병도 가족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고 겁먹어 지레 쓰러져 죽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참으로 정신’력’이 ‘정신’력이다.


불안한 마음은 본래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들곤 하지만, 나라로, 지지당으로, 종교로, 지역으로 끝도 없이 ‘그들’과 ‘우리’로 기다렸다는 듯 나뉘는 건 속상하다. 모두 안전하게 살아남자는 건데 ‘그들’은 병균이고 ‘우리’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병은 지나가도 ‘우리’는 남을 텐데 말이다.
사람을 병균 취급하면 살아남은 사람의 모습도 많이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와 많이 다르지 않고,


힘들 때일수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견뎌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사랑은 참 신기하지.

준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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