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손편지 쓰기 좋은 때
Tove Jansson토베 얀손이 성인 독자 대상으로 쓴 책은 총 11권이며 그중 영어로 번역된 것은 4권뿐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으로는 두 권이 번역된 모양이고, 그중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책, <Fair Play>를 읽었다.
바다 보기 좋게 네 벽 모두 창이 나 있는 집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쳐 놓았다가 고양이 먹이를 걷어 돌아오면 고양이가 해안가에서 기다리는, 섬에 사는, 두 여자 예술가의 삶을 그린 자전적인 소설.
사람들이 사는 섬은 계절마다 해 지는 위치가 다르고, 멀리 누군가 오는 모습이 바다를 가르며 보이는 곳.
편지도 늦게 도착하고, 모든 것이 느리고, 그러나 그런 그대로 그득하고 풍족한 곳.
책 가득히 바닷소리, 폭풍 소리가 들어있고, 까칠한 듯 하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따로의 시간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두 여자의 툭툭한 이야기가 담백했다.
등장인물 중 작가 본인으로 보이는 마리(작가/일러스트레이터)의 허풍쟁이 아버지는 언제나 얘기를 늘어놓다 막히면 ‘그리고 비가 와서 다들 집에 갔지’로 이야기를 끝내곤 했단다.
아아, 모든 골치 아픈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에 오랜만에 제주의 반가운 사람이 안부를 전해왔었다.
새들을 볼 때마다 내 편지에 들어있던 깃털 생각이 나서, 봄을 맞아 새 비누를 만들고 차를 덖어 소포를 보내려고 우체국에 갔었는데, 우체국 직원이 지금은 소포 보내기엔 안 좋은 시기라고 말려서 언제 보낼지 모른다며 일단 쓴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었다.
엄빠에게 내가 정기적으로 쓰는 편지는 열흘만에 꼬박꼬박 들어가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택배가 많아 바빠져서 그랬을까?
알고 보니 그에게도 힘든 일이 그동안 많았고, 나도 아직은 걸려있는 일들 있어서 결정되면 한다한다 하면서 오래 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밀린 안부를 주고받으니, 뭔가 걱정은 있는데 아우 어떡해, 하하하하하, 같이 웃어버리는, 그러다 눈물이 슬몃 나 고개를 돌리는 그런 마음이 되었다.
잘 지내고 있어요, 라 당부했다.
잘 지내라, 는 말은 접는 느낌이지만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은 뭔가 약속이 되는 것 같아서.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책 한 권을 읽으리라 마음먹었던 날이고, 마침 그런 날 섬의 사람에게 연락이 와 그렇게 말했고, 그래서, 그래도 자꾸 책상이 기웃거려지는 마음을 다잡아 앉혀 무릎담요를 덮고 책을 열었던 날이다.
그렇게 또 섬 얘기를 만났다. 이런 우연 참 좋다.
우표를 사러 나간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에 답장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밀린 편지를 좀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