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지 않아 시커먼 거짓말이라도 무례보다는 나을 때가 있다.
우리 엄마가 거짓말 하지 말랬는데, 하얀 거짓말, 이런 말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솔직을 빙자한 무례는 백미터 밖 생선장수처럼 알아챌 수가 있다.
보통 솔직이라고 하면 candid, frank라 하겠다. 그 정의는, truthful and straightforward; frank.
한 마디로 말해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telling the truth다.
그런데, ‘내가 솔직히 말해서’, frankly speaking, I am going to tell you the truth, 로 시작하
는 말 치고 별로 좋은 얘기가 없다는 것에 주목하자.
'솔직'이 진실을 말하는 거라면, 솔직한 게 왜 문제가 되느냐 하는 것은 세가지 맥락이다.
일단 첫째는, 말 머리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밖의 말은 솔직한 얘기가 아니라는 말이고,
둘째는,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을 빌미로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제부터 내가 니가 기분 나쁠 소리를 좀 하겠어,이런 뜻이니까. "내가 오늘 진짜 솔직히 말하겠는데, 너는 너무 일을 잘해!" 이런 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셋째는, 사람은,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정보를 다 내 놓지 않음으로서 결과적으로 거짓을 말한 셈이 되는, lying by omission이라는 말도 있긴 한데, 외모평가라든가, 비난이라든가, 굳이 글로나 말로나 하지 않아도 되는 불쾌한 소리를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으로도 안 하면 좋겠지만,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서 지난번보다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고 해서 그걸 말할 필요도, 키가 남들보다 좀 작게 느껴진다고 해도 그걸 말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그저 첫 인사가 ‘너는 어떻게 더 시커매진거 같애’ ‘왜 이렇게 말랐어’ 등등, 어쩌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분안에 고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고 했거늘.
그러면 칭찬만 하라는 말이냐고 삐딱선 기적소리를 내실지 모르지만, 마음에도 없는 덕담, ‘어머 더 예뻐졌다 얘’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걸 바라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라면 미안하지만 무엇보다 불쾌할 말을 '안 하기'만 해도 세계는 지금보다 분명 두배 평화스러워진다는 의견이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면 되는' 건데도 왜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잘은 모르,는 얘기는 하지 말지, '잘은 모르지만', 하고 말을 꺼내지 말며, 니 생각을 물어보지 않았는데, '제 생각에는', 하고 거들지 말자.
이 얘기를 해도 될지 안 될지 잘 구분이 안 가시면, 생각해봐서 상대방이 '그래서 어쩌라고'로 받을 것 같은 말은 안 하면 된다.
이런 경우의 솔직의 유의어는 무례 rude이다.
kind와 nice의 차이는, kind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착함, 선함, 선행이고, nice는 사실 그저 행동으로만 나이스 나이스 한 것이다. Be nice! 라는 슬로건이나 혹 핀잔으로 하는 말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라는 말이다.
없는 마음을 무슨 재탕 삼탕 사골마냥 우려 내라는 것보다 실질적이다. kind하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안되면 nice라도 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 저렇게 안하면 누가 자기를 좋아할까봐 걱정이 되나, 기분 나쁘게 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례하다. 노력을 해보아야 어차피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내가 내 멋대로 굴어서 그래,라고 자신을 속여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는데, '내 말을 믿어봐요. 괜히 추근거리는 것 아니고, 괜히 까칠하게 구는 거 아니고, 그저 기본 예의로 대하기만 해도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상대방도 분명 그걸 느낍니다', 라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사람 많다.
솔직의 유의어가 open (up), trust일 때가 솔직의 진가를 발휘할 때다.
솔직은 말이 아니라 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나의 본 모습을 열어 보여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말이다. 나의 단점도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것. 특별히 의심이 많은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아마도 이런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은 다들 동의하실 것이다. 그래서 더구나 솔직한 태도도, 그럴 수 있는 대상도 소중하기도 하다.
참고로, 뭔가 비밀이나 소중한 것이나 사람을 남에게 맡기는 것을 entrust라고 한다.
솔직한 얘기의 유의어는 역으로 비밀secret이기 쉽다.
러시아 속담 중에 '오늘 털어놓은 비밀은 내일 주정꾼의 말이 되어 나온다'는 것이 있으니, 비밀이면 아예 말하지를 말고, 말하기로 했으면 세상엔 비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편이 좋겠다.
입이 무겁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남의 비밀을 들으면 그걸 말한다는 선택의 여지option가 없다고 생각해서 잘 지키다보니 역으로 이런 저런 남의 비밀을 듣게 되곤 하는데, 사실 별로 달갑지가 않다. 입이 근질거려서가 아니라 혹시 이야기에 관련된 다른 인물들을 보아도 불편하고, 이건 진짜 비밀,이라면서 자기가 다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누가 또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서다. 소위 ‘비밀’이 남의 얘기라면 내 얘기도 하고 다닐 사람이어서라는 염려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남의 얘기라면 주로 듣지 않겠다고 초장에 자르거나, 가까운 사람에 대한 얘기라면 그냥 듣고 있지 않고 방어를 해 주는 편이다.
인생이 얼마나 짧고 예술이 얼마나 긴 지는 모르지만 갑분싸는 짧고 가십은 길다는 것은 알기에.
남의 비밀을 간직하는 것은 분명 짐인데 왜 믿는다는 빌미로 남에게 짐을 지우는가.
그렇게 이른바 '솔직한 이야기'의 유의어가, 역으로 남들이 솔직할 수 없게 만드는 confess고백이 되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관심이라 쓰고 호기심이라 읽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