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게요
법적 이혼 과정은 이미 1년 전에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결혼과 이혼의 중간 어디쯤에 서서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지냈다. 재결합도, 완전한 이혼도 결정하지 못한 채 1년을 서성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이 아팠고, 나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가을 냄새가 코 끝을 스치며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가을이다. 벌써 이혼한 지 1년이 지났구나.'
이혼을 하고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그간 다양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조난당하기도 여러 번. 고작 1년이란 시간 동안 이렇게나 다이내믹하게 아팠나 싶기도 하다. 유난히도 복잡다단했던 감정의 길을 거닌 1년. 이 길을 돌이켜보니, 어쩌면 그 길 위의 서성임은 필요한 순간이었던 걸지도.
우리는 때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조급함을 느껴, 쫓기듯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반대로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단 마음에 차마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어, 그 상태에 머무를 때도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문제 같다.
우리의 인생에선, 빠른 결단이 필요한 순간도 있고, 머무름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니까.
그저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를 하기보다는, 이렇게 선택하거나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자꾸만 흔들리는 내가 답답했고, 흔들리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마치 시간을 허투루 쓰고 버리는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인생에서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는 법.
겉으로 보기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고 무엇도 이루지 못했던 지난 1년이기에 그저 고민하고 흔들리며 흘려버린 시간으로 비칠 수 있지만, 나는 안다. 망설이고 머무르며 고민했던 지난 1년은, 온전한 헤어짐을 위한 시간이었음을.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해도 헤어짐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거늘 하물며 결혼을 하고 그 숱한 나날을 걸어왔는데 어찌 이별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시간의 개인차는 존재하겠지만, 다친 마음을 추스르고 과거를 과거로 인정하고 놓아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건 이혼의 과정뿐 아니라, 연애 후 겪는 이별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더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오래간 머무르거나 서성인다 해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별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니까. 오래간 머무르고 서성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속 상처엔 딱정이가 생기고 새살이 돋아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던 감정들을 뒤로하고 두 발짝 세 발짝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 걸음에 맞는 속도란 없다. 그저 나의 속도대로, 하나씩 나아가면 되는 것.
나는 1년의 방황 끝에 헤어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바람에 떠나보낼 것들은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고, 마음에 남길 것들은 고이 접어 묻어둘 수 있게 되었으니까. 1년의 머무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급하기도 했고, 나를 다그치기도 했고,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머무름이 이혼이라는 상처의 연고가 되어주었다.
방황의 시간은 천천히 머무르며 지난 결혼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부부상담을 통해 남편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결혼생활의 잘못을 남편에게 돌리며 비난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이 조금 넉넉해졌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의 텃밭이 조금 더 넓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이 머무름의 시간 동안, 잊고 지냈던 '예전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결혼 전의 나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힘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도서관에 가서 좋아하는 시집과 에세이를 잔뜩 빌려 필사 노트에 필사를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과 단어들로 가득 찬 노트를 보면, 그저 배가 불렀다. 언젠가 나도 이런 문장과 단어를 담아낼 수 있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면서.
얼마 전에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이야기했다.
"너는 항상 볼 때마다 웃고 있어서 신기했어. 어쩜 저렇게 웃을 일이 많을까 하고. 너는 참 싱그러운 여름 같았어. 너는 언제나 내게 그런 존재야."
나는 까맣게 잊어버린 내 모습. 친구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정말 내 모습이 맞나 낯설 정도로, 나는 결혼 생활을 지나오며 웃음을 많이 잃었다. 언제 소리를 내어 웃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최근에 웃을 일이 없었나 보다. 사실 그보단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거겠지.
지난날을 돌아보며, 내가 웃음을 잃은 이유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쓸쓸히 길 위에 남겨져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비바람을 다 맞은 탓에, 몰골이 엉망이었다. 그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있는 힘껏 꼭 안아주었다.
"이젠 네가 혼자 아프지 않게 할게. 참으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응원할게. 나는 네가 좋고, 내가 너라서 감사해. 앞으론 너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을게. 우리 같이 집으로 가자."
결혼 생활을 하며 내 밑바닥을 보는 상황도 여러 번 있었고, 어머님의 평가와 비난의 말씀에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기도 했으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되려 나를 미워하는 마음만을 키웠단 사실을, 1년의 서성임 속에서 알게 되었다. 조그만 몸으로 오도카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의 뒷모습을 봤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챙기기만 했지, 내가 나를 이렇게나 방치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챙기듯, 가끔이라도 나에게 안부를 전하고 따스한 말을 건네야겠다고.
[이젠 솔직하게 살래]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제 머무름의 단계에서 벗어나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며 찍는 수많은 마침표를 통해 내 마음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기적처럼, 마침표는 내게 남아있던 숱한 미련들을 내 어깨너머로 데려갔다. 오랜 시간 내 어깨를 짓누르던 미련들이 사라지니, 어깨의 통증이 조금 사그라들었고 굽은 내 등이 약간은 펴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솔직하게 살래]에 담긴 14편의 글 위에 흩뿌려진 수많은 마침표들은, 내게 밤하늘의 별빛과도 같다.
이제는 온전히 나로 자립하고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따르지만 이 두려움 뒤에는 분명 내가 살아갈 길이 있음을 믿는다. 무력감을 이겨낸다면, 그다음 또 성장의 기회가 있음을.
나처럼 늦게나마 자립하려는 누군가에게, 내 글이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부디 당신처럼 인생에서 많이 아프고 방황했던 누군가가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혼자 아프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