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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6. 2023

미래 준비병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아 살지 않겠노라고





결혼은 연애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끝맺음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서류상 모든 과정을 끝내고 마침표를 찍었음에도 심적으론 제대로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최근 몇 달간 부부상담을 받고 재결합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 속에서 결혼 생활 중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더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상대와 나를 어떠한 평가 없이, 객관적으로 우리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바라보았다.


우리의 이혼어떻게  사람의 잘못만으로 결론   있겠는가,  사람의 다름으로 어긋나 버린 것을. 상담을 받으며 우리의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끝나버린 것은, 좁힐  없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서로 맞춰보려고 노력해도 대화법을 바꿔봐도, 좁혀질  있는 한계가 보였다. 누구를 탓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온전히 '다름'으로 이혼이란 결과에 봉착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있게 되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건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을 내려놓아서 찾아온 마음의 평안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에 대한 원망과 질책에서 벗어날  있음이었다.


나는 이혼을 하고 한동안은 마음이 홀가분하고 되려 편안했다. 더 이상 다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하지만 이내 결혼의 실패가 나 때문인 것만 같아서 아쉬움이 밀려와 그에 따른 질책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이런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데, 내가 다른 사람과 같기를 바라거나 말도 안 되는 가정들을 하며, 숱하게 많은 밤을 지새웠다.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내게 가장 많은 아쉬움을 남긴 부분은, 상대가 해주지 않았던 부분이 아니라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였다.


고등학교 시절,  하루아침에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우리 가족은 10년 간 지냈던 집에서 나와 새 집을 구해야 했다. 부모님께서 새로 구한 집은 예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작았고, 허름했다. 새로 이사하는 집에 적응할 시간은 없었다. 며칠 만에 모든 것은 변화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에 누구보다 엄마가 제일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엄마의 어깨에 내 투정마저 얹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대학을 결정할 때, 엄마의 뜻을 꺾고 서울행을 결정했을 때, 큰 불효를 한다는 생각으로 난생처음 막무가내로 떼를 썼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음을 알면서도, 학창 시절 내내 꿈꿨던 서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비록 내 선택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난생처음으로 내 선택을 밀고 나갔다.  현실이 힘들더라도 직접 가서 부딪혀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았고, 돈이 없으면 방조차 선택할 수 없음을 스무 살의 나이에 알아버렸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열심히 재테크를 해서 재산을 불리려 노력을 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미래를 준비하는지 모를 정도로,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더 집중했다. 나에게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즐기며 남편과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그 점이 나에겐, 이혼하고 제일 아쉬움으로 남았던 점이다.


내가 조금 더 현재에 집중했더라면, 남편이 나와 있는 시간을 더 편안해하고 바깥으로 돌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더 많은 추억이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진 않았을까. 나도 그저 다른 부부처럼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기를 바랐을 뿐인데, 이제 내게는 허락되지 않을 노부부의 모습이 덩그러니 가슴속에 남아버렸다.


'나는 왜 이토록 '미래 준비'에 혈안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지 못한 것일까.'

이혼을 하고 한동안 나를 따라다닌 질문이었다. 그런데 상담을 통해, 나의 이런 미래를 준비하는 병은, 고등학교 시절 집이 어려워지며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또 어려움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라나 생긴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겪었던 가난의 감정, 돈이 없어서 선택을 포기해야 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나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내가 꿈꾸던 미래를 아이에게 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내게 불안 요소가 되었고, 자꾸만 현실에 타협하게 만들었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어쩌면, 남편과 나의 문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다시 재결합을 할까 고민했던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 같다. 더 안정적인 생활이 보이는 미래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 중에서, 안정을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더 이상은,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아가며 살지 않겠노라고.

지난 10년은 미래를 위해 살았다면, 앞으로의 10년은 현재를 위해 살아가겠다고.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겠다고.

오늘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임을 잊지 않고, 나를 더 아끼고 응원해 주겠다고.


나와의 약속을 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불안에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지금처럼 나 자신과 약속을 하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 단단히 발 붙이고 살아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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