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혼나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고부갈등을 드라마에 밥 먹듯이 등장하는, 흔해빠진 드라마 소재쯤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가혹한 시어머니께 당하는 며느리들을 보며 고구마 100개쯤 집어먹는 답답함을 느끼며 나라면 저렇게 안 참지, 생각했던 그때. 그때는 내게 고부갈등이 현실이 될 줄은, 고구마 먹는 기분을 느꼈던 며느리의 모습이 내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할 때부터 형님이 결혼할 때 얼마를 해왔다더라, 형님네 집안은 어떻다더라 비교를 당했었다. 처음엔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 어머님께서 못마땅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더 잘하려고 노력하면, 분명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신혼 초엔 1주일에 한 번씩 요일을 정해 어머님께 전화로 안부 연락을 드렸었다. 평소 전화 통화가 편치 않았던 나는, 친정 엄마에게도 1주일에 한 번씩 안부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어머님께 전화를 하는 것은, 내 나름의 잘 보이고 싶은 노력이었다. 하지만 어머님께는 내 노력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어김없이 내게 칭찬이 아닌 형님과의 비교를 하셨으니까.
"일 하는 큰 애는 이삼일에 한 번씩 전화하는데, 너는 집에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 연락을 하니."
힘이 쭉 빠지는 어머님의 말씀에, 어머님께 연락을 드리기가 점점 두려워졌다. 내가 잘하려고 무언가 할 때마다 어머님의 비교와 평가가 가득한 말씀을 듣다 보니 차라리 노력하지 않고 혼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많이 혼나본 경험이 없던 나는, 이런 기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지도.
입덧으로 한창 고생 중일 때, 갑자기 어머님께서 신혼집에 들르신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입덧으로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가 39킬로까지 빠졌었다. 그만큼 냄새에 예민했고 부엌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날, 어머님은 식당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마스크를 쓴 채 갈치조림을 하고 몇 가지 밑반찬으로 식사를 대접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리가 서툴기도 했고, 입덧으로 음식냄새를 맡는 게 너무도 힘들 던 내게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칭찬과 격려의 말씀보다는, 형님네 집은 이런 게 좋다 형님네 부엌은 어떻다 등등을 말씀하시기에 바빴다.
내 노력은 어머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절망감을 느꼈지만, 어머님께 어떤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출산 한 달 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머님께 반발 아닌 반발을 하게 되었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의 외할머니 생신에 참석하기 위해 3시간을 넘게 차를 타고 시댁에 갔다. 무거운 몸으로 내려와 준 나의 행동은 그저 당연한 것일 뿐이었다. 그간 형님과의 비교도 모자라, 이젠 이모님네 며느리와의 비교까지 더해졌다. 왜 내가 하는 것은 이리도 못마땅하고, 매번 다른 며느리들과 비교당해야 하는 걸까.
나는 나의 섭섭함을 남편이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남편이 그저 공감해 주고 내 마음을 토닥여준다면 마음이 조금 위로받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이런 내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어머님 편을 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차 안에서 다투게 되었다. 남편은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차라리 속시원히 말씀드리라고 얘기했다. 나는 홧김 반 용기 반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고, 어제오늘 서운했던 것들을 말씀드렸다.
"어머님 제게 형님과 비교하는 말씀 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언제 그랬니?"
"어머님 저 볼 때마다 형님이랑 비교하시거나, 다른 집 며느리들이랑 저랑 비교하세요. 솔직히 듣고 있기 너무 힘들어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 생사람을 잡니. 그리고 큰 애는 이런 얘기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걔는 국그릇이고 네가 간장종지 같은 애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지."
"간장종지요?"
어머님과의 전화통화는 아무런 수확 없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1시간쯤 흘렀을까.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시어머니와 무슨 일이 있냐며 내게 물었다.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나한테 전화해서 네가 이렇게 시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 사돈이 위로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화했더라. 지금 너 몸은 괜찮아?"
"엄마한테 전화해서 뭐라셨어? 엄마가 사과한 건 아니지?"
"별말 안 했어. 그냥 임신한 애니까 잘 봐달라고 했지. 스트레스받지 마. 애기한테 안 좋아."
엄마랑 전화를 끊고 속상한 마음에 한참을 울었고, 배에 경련이 오는 것을 느꼈다. 문득 뱃속 아이가 걱정이 되었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어머님이셨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내 어머님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님은 남편을 붙잡고 한참 동안 본인이 속상하다고 토로하셨다. 그리고 우리 엄마 말씀에 기분이 상하셨다고도. 어머님과 통화를 끝낸 남편은 내게, 짜증 섞인 원망을 했다
"장모님은 왜 그런 말을 해서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하게 하는 거야?"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가 참지 않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했고, 그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출산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조금은 달라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머님 생신 식사가 아이가 70일 남짓 지났을 때였다. 나는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어머님의 생신 선물을 사러 집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운동복을 생신 선물로 준비하면서, 어머님이 내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조금 설렜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내 선물을 제대로 펼쳐 보시지조차 않았다.
어머님은 형님이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 집안을 걸어 다니시며,
"이거 너무 편하고 사이즈도 딱이다. 색상도 예쁘고. 너무 마음에 든다 얘."
내가 선물한 운동복은 덩그러니 상자에 담겨 놓여있었다. 천덕꾸러기같이 앉아있는 선물의 신세와 내가 같아 보였다. 서운한 감정을 감추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계속 입꼬리가 땅으로 고꾸라지곤 했다.
그날 식사에서, 나는 계속 우는 아이를 챙기느라 어머님이 차려주신 식사를 먹지도 못했고,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도 못했다. 카시트에 타지 않으려는 아이와 씨름하며 어머님 아버님께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내 잘못도 분명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상황을 다 보셨음에도, 우리가 돌아가고 나서 남편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나를 꾸짖으셨어야 했던 걸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실 순 없던 걸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지 않아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늘 시댁에 가면 내가 혼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자꾸만 혼나다 보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말로 사람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부정적인 비난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내가 마치 그러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며 내가 내 모습을 헷갈리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무력감을 느끼고 있고,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매일 애를 쓰고 있다.
나를 함부로 정의 내리지 않겠다고.
나를 믿어주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