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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7. 2023

결혼생활의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다

고부갈등의 서막





"안 갈래."

"엄마아빠가 와서 솔직하게 얘기해 보래. 네가 뭐가 그렇게 힘든지. 얘기 들어주신댔으니까 부담 갖지 마."

"그냥 얘기 안 하고 싶어."


남편의 설득으로, 시부모님께 1년 동안의 힘듦을 말씀을 드리러 갔다. 시부모님께서는 내가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들어보고 싶다고, 시댁으로 와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고 하셨다. 나는 불편한 마음과 두려움을 가까스로 누른 채 2시간가량 차를 타고 시댁에 도착했다.


그간 서운했던 어머님의 말들을 차분히 하나씩 말씀드리니, 어머님이 언성을 높이셨다.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얘가 사람 잡네."

"어머님께서 매번 비교하시고, 제가 뭘 해도 잘못했다고 하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결혼하면 남편은 저희 가장이고 우리 셋이 가족인데, 어머님아버님께선 그렇게 생각 안 하시고, 제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남편에게 제 욕을 하셔요. 그럼 남편은 그걸 제게 전달하고요. 작은 실수를 해도 매번 혼나게 되니 어머님아버님이 전화하시면 두려움이 앞서는 게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걸 막아주기보단 부모님 말씀을 다 전달하는 남편도 제 가족처럼 느낄 수 없고요."

"나는 그런 적 없다. 내가 너 집안일을 시켰니 뭐 했니?"


자꾸만 그런 적 없다고 우기시는 어머님 말씀에 남편이 끼어들었고, 아버님은 남편에게 불같이 소리 지르시며 끼어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님은 이내 '내가 죽어야지, 이 꼴 보려고 고생해서 이렇게 키웠냐'라고 하셨다. 어머님의 그 말씀에 마음 약해지지 않을 자식이 몇이나 있을까. 실제로 어머님께서 갖은 고생으로 남편과 아주버님을 키운 사실은 남편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OOO! 너 당장 나가! 그리고 우린 아들 없다고 생각할 테니, 다시는 오지 마라."

아버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셔서,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갔는지, 지금이라도 내가 어머님의 말씀을 오해했다고 사과를 드려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때 남편도 화가 났는지, 내게 얼른 나가자고 했다. 우물쭈물 남편을 따라 시댁을 나왔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남편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지하 주차장에서 남편은 어머님께서 보낸 문자를 읽었다.

"내가 죽어야지.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그 고생을 했나 후회가 막심해서 살기가 싫어."


남편은 속상한 마음에 내게 화를 냈다. 물론 엄마가 본인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하면 속상하지 않을 자식이 있을까, 그 마음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나는 결과가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분명 시댁에 가서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그런데도 얘기를 꼭 들어야겠다고 오라고 하신 건, 시부모님이셨다. 그런데 내가 하는 얘기는 단 하나도 용납하고 받아들여주시지 않았다. 되려 나에게 화를 내며 시댁에서 쫓아내셨다. 그런데 왜 내게 화를 내는 걸까. 지금 화를 내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인데.


남편도 마찬가지다. 가기 싫다는 사람몇 날 며칠 설득해서 데려가놓고, 이제 와서 내게 화를 내는  대체 무슨 심리인 걸까. 내가 시댁에 가서 넙죽 엎드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기를 바랐던 거였을까.


이때가 아이 100일 무렵이다. 100 남짓한 아이를 데리고 이혼할까 진지하게 생각도 해봤지만, 아직 엄마아빠 개념도 없는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는 짓을  수는 었다. 그렇게 이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 당시엔 아이를 케어하며 잠이 부족했던 때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제대로 잠을   없을 만큼 불면증에 시달렸고, 손가락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는 한포진에 걸려  오래간 고생을 했었다. 몇 년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간지러움이, 아직도 손가락에 생경하게 남아있다.


남편과 나의 문제라면 둘이 대화로 해결책을 찾아볼  있겠지만, 이건 우리 둘의 대화로 해결할  없는 문제였다. 남편은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 비위를 맞추지 한 채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아  사달을 만든 내게 화가 다. 나는 어머님의 죽겠단 말씀에 되려 내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남편에게 실망을 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불화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결혼생활의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다. 물론 종종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을 테지. 하지만 남편과 내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은 채, 온전하게 사랑했던 시기는 벚꽃이 지듯 순식간에 저물어버렸다.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채,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 그 시간 속에 나만 고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 또한 나와의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고생했으니까.


다만 우리의 힘으로 변하지 않는 주변 상황들을 무시할 수 없었고,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상처들을 마음에 묻은 채 버텼을 뿐이다. 하지만 치유되지 않고 버틴다 한들, 정말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벌었던 것일 뿐.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덮고 지나가는 것은 결국, 문제가 되어 드러났다.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혹은 치유 없이 시간을 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내 안으로 상처가 더 곪아갈 뿐이었다.


상처를 외면하지 말자. 대화를 포기하지 말자.

나처럼 아파하고 혼자 견뎌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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