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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은 Mar 23. 2023

비건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왠지 모르게 '저 비건이에요'라고 말하기가 꺼려질 때가 있다. 이것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 하에 행하는 실천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슬라보예 지젝에는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어서 실제로 그가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비건이라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지젝이 비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죠. 비건은 degeneration(퇴화, 퇴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비난하거나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 이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비건에 대해 알지 못해서 여기에 대한 자기 의견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반복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건 지젝의 생각이고, 나는 비건이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비건은 퇴보라는 말이 나에게 어떤 신념의 변화를 초래하지는 못했다. 


비건이라는 말에 세상을 피곤하게 산다거나 예민하다는 반응이 올 때도 있다. 더러는 함께 비건을 하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님에도 자신의 육식할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느끼는지 공격적으로 내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에는 그냥 '당신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제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저 또한 당신의 생각을 바꿀 의도가 없으니 여기서 그만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함께 비건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을 해봤자 비건에 대한 그 사람의 반감만 높아질 뿐이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비건에 우호적인 사람과 대화를 해서 그 사람이 좀 더 실천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게 생산적이고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길일 테니까.


그러나 비건임을 밝혔을 때 항상 부정적인 반응이 왔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과 마주할 때가 더 많았고,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만나본 건 처음이라는 듯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는지, 우유도 안 마시는지 등등을 묻기도 하고 순전한 궁금증에서 '왜' 하는지를 묻기도 한다. 또는 비건에 관심은 있는데 쉽지 않아서 못 하고 있다는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예전에는 비건을 했지만 힘들어서 지금은 포기했다는 사람과 만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드물게는 서로 말하지 않고 있었던 채식인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비건임을 감출 생각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전보다 더 자주 사람들에게 내가 비건임을 알린다. 물론 나와 함께 비건을 하자고 권하기 위해서 내가 비건임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식사를 할 때 비건 식당으로 가자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식당에 가서 고기나 계란을 빼달라고 할 수도 있고 정 방법이 없으면 먹는 척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밥을 살 때는 비건 식당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본인이 먹기 바빠서 남이 먹는지 안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에 관심이 없다.) 


또 다른 누군가는, 채식을 지향하지만 가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을 때는 먹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쉽게 비난을 하고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실천이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완벽하고자 했음에도 실패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그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실패했다면 다시 하면 된다.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지금 보잘것없(어 보이)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은 실천을 할 수도 없다. 완결성을 추구하기 위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 완벽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타인에게 비건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배려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꾸준히 외부에 내가 채식을 한다고 알린다(당신도 채식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비건이라고 밝힐수록, 채식을 지향한다고 이야기할수록, 주변에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선언해야만 생각보다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된다. 변화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을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나중의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이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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