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 시작하면 확실히 먹는 수준이 달라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기 때문에 부모님 집에서 먹던 것만큼은 챙겨먹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취를 선택하면서 다짐한 것은 '혼자 있을수록 잘 챙겨먹자'라는 거였다. 왜, 그런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You are what you Eat.
인스턴트를 많이 먹으면 피부에 뾰루지가 나고 소화장애가 일어나고, 건강한 야채를 먹으면 피부가 뽀얘지고 소화도 잘되는 것처럼. 혼자 있을 수록 잘 먹어야 혼자 있을 때의 찾아오는 외로움과 때때로의 고독함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씩씩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 앞의 마트에서 작년 12월에 산 토마토 한 팩.
토마토 6개가 들어 있었는데 그 중 세 녀석이 남은 지도 꽤 됐다. 반찬을 꺼내먹으려고 냉장고를 열 때면 맨 아래 있는 야채칸에 어렴풋이 보이는 토마토 세 개. 야채칸을 두고 토마토가 마치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반질반질한 엉덩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야채칸을 열어서 종종 확인했다. 탱탱했던 토마토가 아직도 탱탱한지, 아니면 흐물흐물해졌는지.
아직 탱탱했지만 좀 더 있으면 상하겠다 싶어서 '오늘은 기필코 먹겠노라' 다짐을 하고 세 녀석을 꺼내보니 한 명은 멀쩡하고 두 명은 표면에 검은 눈코입이 생기고 있었다. 아주 멀쩡한 한 개는 칼집을 내서 삶아 먹고 나머지 두 개는 잘게 잘라서 스튜처럼 후라이팬에 볶아먹었다.
낫또와 현미밥과 함께 먹으면서 든 생각,
'나는 담백한 맛이 좋다'
누군가는 싱겁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심심한 맛이었는데 소금 간도 없이 먹는 토마토 고유의 풍미가 입안 가득 풍겼다. 한 달에 토마토를 100개씩 드시는 아빠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순간 밥을 먹으면서 깨달았다.
'나 담백한 거 좋아하는구나. 단정한 삶을 살고 싶어하고. 어라, 나 '단'이 들어간 걸 좋아하나? 그러고보니 단호한 것도 좋아하네. 단백질도 좋아한다'
토마토가 준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하루를 신선한 야채와 함께하니 오늘 하루가 향긋할 것 같다. 한 끼 먹는 식사에서 야채가 준 깨달음이라니. 건강한 한 끼 식사가 주는 행복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이 행복을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