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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25. 2024

손을 내미는 용기

살아가는 이야기


아침.

애들 깨우기 전에 부지런히 도시락을 만들고 애들이 먹을 간단한 식사준비를 한다.

아, 그런데  우유가 없다. 적당히 얼굴을 닦고 편의점에 갔다. 오늘은 항상 그 시간에 나오는 아줌마가 아니라 처음 보는 점원이었다. 늘 만나는 아줌마에게는 가끔 인사도 하고 지내는데 처음 보는 분이라 좀 어색했다. 편의점에 가는 김에  수도요금을 내려고 들고 간  용지를  내밀며

나도 모르게 그만 한마디가 나왔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 오지 않네요”

점원은 순간 눈이 동그래지더니 금방 상황을 판단하고, “그러게요”라고 응수를 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아직 오지 않나 봐요. 비가 오면 좋을 텐데..."

그리고, 내 이름이 적힌 용지를 보고는 가타카나로 쓰여 있는 이름을 가리키며

"츄고쿠진데스카(중국인입니까?)" 

라고 물었고 나는,

"캉코쿠진데스(한국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소우데스카. 혼토우니 와카리마셍네. 니혼진니 미에룬데스케도네(그래요? 정말 모르겠네요. 일본인으로 보이는데요)”

나는 속으로 (방금 중국인이냐고 물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미소를 지었다.


수도요금을 내고 나서 우유를 계산하려고 들고 갔다. 그 점원이 한마디 했다.

점원 : “저기... 포인트 카드를 사용하면 30엔 싸게 살 수 있는데요”

나 : “아, 그래요? 그럼 포인트를 사용해도 까요?”

그랬더니, 포인트는 포인트 카드로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 안에 포인트 교환기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번호를 누르고 쓰고자 하는 만큼 교환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 그런 게 있었구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

최근에는 가는 곳마다 포인트 카드를 만들라고 한다.  나는 포인트 카드를 만들기는 했지만 어떻게 사용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포인트를 받기만 했다. 그날, 편의점에서 그렇게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포인트 사용에 대해 알려준 점원이 고마웠다.

일본 엄마들은 계란을 10엔 싸게 사기 위해서 옆 마을로 자전거를 달린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다. 계란이 싼 곳은 여기, 화장지가 싼 곳은 저기, 반찬이 싼 곳은 마트, 이런 식으로 보다 싼 곳을 찾아간다. 생활비를 아끼고 쪼개며 살아가는 일본 아줌마들에게 나도 뒤지고 싶지 않아서 아끼고 절약하며 지낸다. 그날, 그 아침에, 어찌 보면 겨우 30엔이지만, 30엔 싸게 우유를 사고 나오며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점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물론이었다. 


그날 이후로 편의점 점원과는 인사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표정 없이, 물건을 사고 말없이 가게를 나가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웃음을 나누고 하는 이런 것들이 훨씬 인간적인 것 같아서 나는  좋다.

 

얼굴은 알고 있으면서도 인사를 잘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요즘 세상이다. 친절을 베풀려고 해도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 하고, 혹은 도와주고서도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의 끈을 스스로 단절하고 포기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용기를 내어 한마디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상대방과의 대화의 문이 열린다면, 또한 그로 인해  말없는 묵묵한 분위기에서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로 내 주위가 바뀔 수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며칠 안 되어서 나는 슈퍼 앞을 지나고 있었다. 내 앞에는 두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가 양손에 목발을 짚고 힘을 다해 걸어가고 있었다.

가끔, 슈퍼에 갈 때에 눈에 띄는 아저씨였다. 양쪽다리에 힘이 없어서 목발로 겨우 한 걸음씩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어깨에 가방을 메고 슈퍼에서 산 물건을 들고서,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힘들게 보여서 좀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걷고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아저씨도 몇 걸음 가다가 벽에 기대어 서서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그러고 나서 다시 몇 걸음, 아마도 집에 도착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며칠 전의 일이 떠오르면서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저씨 옆으로 가서,

“죄송하지만, 괜찮으시면 제가 짐을 좀 들어드릴까요?”

한마디를 했다.

아저씨는 나를 바라볼 틈도 없이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면서 장을 본 슈퍼의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자. 다음에는 그분의 아파트까지 같이 걸어야 할까?) 또 고민하다가

“댁까지 같이 갈까요? 제가 좀 부축을 해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몇 동 몇 호인지 말해주며 거기까지만 부탁을 한다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움직였다. 그리고 일러준 대로 현관 손잡이에 슈퍼봉투를 걸어 놓고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그 아저씨는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같은 장소에서 그 아저씨를 또 만났다. 내가 다시 짐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한마디 했다. 나는 전혀 괜찮으니까, 만약에 움직이기 힘든 날이 있다면 연락을 주라고, 그러면 내가 장을 대신 봐드리겠다는 것을 간단하지만 신중하게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괜찮다고 했다.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걷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라고 했다. 누군가의 친절로 자신이 집에 그냥 있게 되면, 그나마 이렇게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짐을 그 집의 현관 손잡이에 걸어두고 나왔다. 그러면서 필사적으로 매일 걷고자 하는 그 아저씨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일찍 걷는 것을 포기하지 읺았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또한, 나의 시간도, 마음도, 물론 필요로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군가의 의사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을 베풀고 싶다는 마음에 상대방의 마음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분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한 기분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고, 그가 해야 할, 예를 들면 가장 최소한의 걸을 수 있는 것, 그 일에 방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주면 고마워하겠지,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하는 것들은 나의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마음도 함께 필요한 것이리라. 나의 만족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도움이 필요한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다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혹시 실수를 한다면 또 어떠랴. 그럴 때는 사과하고 용서를 빌면 될 것이다. 또한, 실수를 통하여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울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돌아보아 주는 그런 정겨운 사회의 모습을 꿈꾸어 본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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