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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14. 2024

고양이 1

살아가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 이사를 온 다음 날이었다.

근 후 유치원에 들러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에 몸집이 좋은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앉아 있어서 잠시 멈추어 섰다.

(누군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은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생각 하지  못했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어릴 때 읽었던 추리소설

 자주 등장하는 무서운 고양이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가능하면 고양이를 피했다. 내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을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아이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무지막지하게 고양이를 쫓아내지 못하고 조용히 타일렀다.

고양이, 우리가 올라가야 하니 비켜 줘!"

녀석은 완전 무시. 그래도 우리가 움직이면 고양이

당연히 다른 곳으로 갈 줄 알았다. 우리가 들어

가려고 움직이자 고양이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니, 저 녀석이 왜 계단을 오르는 걸까?)

설마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녀석은 5층까지  올라갔다.

우리 집은 5층이었다. 녀석은 우리 집 앞 계단에 멈추어 섰다.

(아니, 녀석이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게다가 우리 집 앞에 멈출 것은 또 뭐야?)

고양이는 공격적인 자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난감해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고양이의 눈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사실은 고양이 눈을 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지고 싶지 않아서 내 눈에 힘을 주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우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야 하고,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고.

아마도 고양이는 우리가 자기를 따라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야 하니 이제 내려가"

한마디 하고 양보 없이 고양이를 보았다.

갑자기 녀석이 움직였다. 녀석은 녀석대로 위기를 느꼈는지 계단 난간으로 뛰어오르더니 곧바로 4층으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고양이를 바라본 적도, 고양이의 움직임을 본 적도 없었던 나는 매우 놀랐다. 녀석은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녀석은 며칠 동안 늘 계단 밑에 앉아 있었다. 어느 집 고양이인지 궁금했지만 무시했다.

그런데 그즈음 이상한 일이 있었다. 딸아이 운동화를 빨아서 베란다에 세워두었는데 아주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다시 빨아도 냄새가 없어지지 않아서 버린 적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지인에게 했더니 혹시 고양이 오줌이 아니냐고 했다. 아마도 옆집에서 베란다의 난간을 타서 베란다를 오고 가며 오줌을 싸기도 하니 빨간 통고추를 베란다에 툭툭 던져두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긴가 민가 하는 마음에 나는 빨간 통고추를 베란다 여기저기에 놓아두었다. 정말로 그 후로는 운동화에 그런 일이 없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어느 주말, 이른 새벽에 초인총을 누르는 소리에 놀라서 일어났다. 이런 이른 시간에 누굴까 하며 나가보니 옆집에 사는 할머니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할머니는 인사도 하지 않고 후다닥 작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베란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우치노 네코가 안따노 베란다니 하잇테 데나이카라 촛또 츠레테이쿠네. (우리 집 고양이가 당신네 집 베란다로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내가 좀 데려갈게)."

무슨 말인가 아직 이해가 안 될 때 할머니가 베란다에서 고양이를 안고 나왔다.

아... 고양이는 바로 그 녀석이었다. 아마도, 며칠 사이 비바람에 빨간 통고추가 다 날아가버렸는지  베란다 밑으로 녀석이 다시 넘어온 것 같았다.


내 주위에, 바로 옆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아파트는 개, 고양이 사육을 금지한다고 입구에 쓰여 있었다. 물론 아파트 계약을 할 때도 계약서 조항에 그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사 후 인사하러 갔던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는 엄청나게 큰 개(골든 레트리버로 기억) 인사받으러 나왔었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옆집 고양이 사건이 생겨서 혼란스러웠다.


일본사람들은 금지된 것은 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때까지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에 보니 사람들이 당당하게 개를 데리고 산보를 하고 있었던 것은 모두 이 아파트 주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옆집에서 개를 키운다, 고양이를 키운다고 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고양이는 늘 아파트 입구에 당당히 앉아 있었고

나는 베란다에 다시는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빨간 통고추며 팻트병에 물을 담아서 고양이가 넘어올 만한 곳에 세워두는 일을 부지런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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