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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Feb 03.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계약, 전입 한큐에

4편 | 곧 기러기 부부


 드디어 집을 계약하기로 한 날이 왔다. 시골로 출발하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공사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들었기에 얼른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오래전 가을걷이를 마친 빈 논마다 내 설렘을 툭툭 떨어뜨리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ic를 지나 읍내 외각 길을 돌아 국도로 들어서는데 최대속도 80km가 원망스러울 만큼 한달음에 가 닿고 싶었다. 과연 집이 얼마큼 고쳐졌을까?


 집 구경을 마치고 계약서를 쓰러 가는 길. 건물 앞에 주차된 차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흰색 카니발. 좁은 골짜기 길도 우거진 수풀 사이도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는 슈퍼카가 분명하다. 차주는 열쇠고리가 지갑보다 두둑하고 인상은 사납지만 인정은 많은 사람일 것으로 예측된다.

 과연 내 예상은 맞을까?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뜻밖에도 이장님 외에 2분이 더 와 계셨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계약서를 썼다. 도장을 차에 두고 와서 사인으로 대신했는데 "도장을 안 가져왔으니 계약서는 다음에 다시 쓰면 안 될까요?"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토록 원하던 계약의 순간인데 시골 생활에 자신이 없다며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계약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갈등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을 귀촌한 친구 집에 맡기고 공사 중인 집을 구경했는데 실망을 감추기 어려웠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그토록 설레어 달려왔는가?”

 10월부터 시작한다는 공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져서 다음 해 1월인 당시도 현장이 엉망이었다. 원래 바닥 난방이 전기패널이었던 탓에 기름보일러 시공을 했는데 시멘트 양생 중이라 다른 공사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공사가 얼추 끝났을 것이라 기대했던 터라 실망감이 컸다. 게다가 천장 단열 작업을 하느라 한옥 특유의 멋스러운 서까래가 사라졌고 기존의 창문틀 위에 샷시 시공을 하느라 마감이 엉망이었다. 그중 최고는 샷시 틈이 벌어져 밖에서 빛이 세어 들어올 정도로 부실시공되어 있다는 점이다.

 "업자가 날림 공사를 하고 있음이 분명해"

  내 돈으로 공사하는 것도 아닌데 열딱지가 났다. 무엇보다 이런 집에 앞으로 애들이랑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완공과 관계없이 분양부터 받고 보는 것이 우리나라 부동산이라지만 공사 상태를 보고 나니 계약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계약하기로 한 집은 마을에서 지어 관리하는 마을 소유의 건물 두 동이다. 귀촌한 친구가 자기 집 주변으로 땅과 빈집을 찾아 헤매다 최종적으로 인연 맺을 수 있게 도움을 준 건물이다. 한옥의 겉모습을 가지고 있고 10평 윗채와 7평 아랫채 앞으로 길게 마당을 끼고 있다. 윗채는 이번에 같이 시골살이를 하기로 한 친구가 아들 2명과 함께 쓰고 아랫채는 나와 아이들이 쓰기로 했다. 윗채를 쓸 친구와 귀촌한 친구 그리고 나는 부산에서 생협 활동을 하면서부터 알게 되어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우리는 기어이 시골살이를 하게 된 게 기쁘고 기뻐 여러 계획을 세우며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흥분에 찬물을 끼얹은 공사 상태에 우린 망연자실했다.


 그 집을 얻게 된 데는 많은 행운이 따랐다. 행운이라는 게 결국은 다 사람이 만드는 것. 열 손가락으로 꼽기에 부족할 만큼 많은 분들이 애써주신 결과다. 게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조건'으로 군청에서 헌 집 수리비를 지원해주셨기에 우리는 주거비에 대한 부담이 확 줄어들었다.

 마을에서는 펜션을 군청에서는 수리비를 내주셨고 그 중간에서 많은 분이 역할을 해주신 덕에 우리는 꿈에도 바라던 계약의 날을 맞이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 고생해준 분들과 그렇게 맺어진 인연에 감사 또 감사하며 빚을 갚는 마음으로 시골생활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 중인 집 상태를 보고 나니 온갖 번뇌 망상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애써주시는 분들은 많은데 책임 있게 공사를 총괄하시는 분이 없기 때문에 공사가 날림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잘 될 거야.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곧 될 거야”

  두루뭉술한 말을 믿으며 설레었던 시간들이 무너져 내렸다. 애써주시는 수많은 분들 중에 ‘언제 집이 다 고쳐지는지, 어디를 얼마큼 고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절망 그 자체였다.


 그때서야 그 집이 가지는 특수성과 지정학적 위치가 단점으로 다가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집은 마을 입구에서 멀지 않게 위치해있다. 마을 외곽이라 할 수도 있지만 주변으로 이웃집들이 즐비하고 집 뒷마당에 마을 공동 창고가 있어서 사실상 마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그 마을은 이 씨 집성촌! 마을 주민 모두가 형님, 동생, 아제, 삼촌....

 도시인들이 전원생활을 꿈꿀 때에는 마을 원주민과의 소통, 그 사이에서 넘치는 정을 기대하기보다는 고즈넉하고 잔잔하게 지내다가 가끔 주말에 도시에서 친구들이 오면 밤이 늦도록 마당에서 시끄럽게 노는 생활을 꿈꿀 것이다. 나 같은 도시인이 집성촌 마을에 세 들어 사는 게 가능할까? 만약 나와 마을분들 간에 불화가 생기면 이후에 마을에서는 외지인을 경계하게 되실 테지! 애써주신 분들 면을 봐서라도 조용히 잘 살아야 할 텐데.. 공사 상태 무엇?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사무실로 발길을 돌리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장님을 뵈면 공사 상태를 말씀드리고 이후에는 꼼꼼하게 마감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해야지!

 그런데 사무실 앞 흰색 카니발을 보는 순간 ‘이건 지는 싸움이겠구나’ 싶었다. 도로에서 차 뒤꽁무니만 봐도 “초보구나” 하는 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차가 풍기는 포스! 차주를 영락없게 닮은 차가 거기 서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이장님 외 두 분은 50대지만 마을에서는 한창 일할 나이로 꼽히는 젊은 층이셨다. 계약서를 작성하며 이런저런 주의사항과 마을 특징을 말씀해주셨는데 나는 다만 귀 기울여 들을 뿐 집수리 상태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못했다.

 집성촌인 만큼 마을 어른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예” 하고 어디서 뵙든 인사를 깍듯이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또 마을 사람 대다수가 농사에 종사하시니 밤늦게 떠들면 안 되고 새벽에 농약 치는 소리에 강제 기상할 수도 있으니 알고 있으라 하셨다.


 처음 시골살이를 꿈꿀 때는 전혀 염두하지 않았던 주의사항들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마을 안에 살기 때문에, 도시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와 살기 때문에 쏟아질 관심이 아이들에게 따스한 사랑으로 와 닿을 것 같았다. 도시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투박하고 비릿한 정’. 허름하고 남루함이 주는 편안함을 나는 알고 있다.

 어릴 때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바닥은 뜨겁고 코는 시린 웃풍에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갔을 때 만나게 되는 콤콤한 메주 향. 그때는 질색하게 싫었지만 지금은 냄새로 기억되는 할머니와의 추억이라 소중하기만 한 것처럼 다소 불편한 집과 쏟아지는 간섭이 오랜 시간 뒤에는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을 알고 있다.


 “도장이 없어서 그러는데 계약서는 다음에 쓰면 안 될까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계약을 미뤄볼까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사인을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 가지를 내 마음대로 그린 장밋빛 미래와 바꿔버렸다.

 이장님 비서가 아님에도 그 역할을 맡고 계신 분께 따로 공사에 대한 불만을 전해드렸으니 이젠 기다리는 수밖에.

 다 내 마음 같을 수 없고 내 요구대로 될 수 없을 때에도  그 속에서 평온하고 묵묵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리라. 나는 수행하는 삶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화끈하신 이장님은 집세도 좀 깎아주셨고 원래 공짜로 절대 지어주지 않는다는 ‘택호’도 지어주셨다. 마을로 시집온 여자들의 고향을 따서 ‘서울댁, 부산댁’등으로 부르는 것인데 나에게는 ‘상주댁’ , 윗채 친구에서는 ‘창원댁’이라는 택호가 생겼다. 마을에서 “환영합니다”하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 몹시 기뻤다.

 그 길로 이장님을 따라 면사무소에 가서 전입 신고도 했다. 전입을 하려면 마을 이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군수보다 이장 끗발이 더 세다더니 역시 이장님의 위상이 대단하였다.


 면 사무소에서 나와 이장님과 작별하고 차에 올랐다.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을 봬야 하는 일정이 하나 더 남아 있었지만 온 몸에 진이 빠져나간 듯 긴장이 탁 풀렸다. 남편은 서류 정리가 됐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하면서도 몇 시간 사이 얼굴이 핼쑥해진 것 같았다.

 계약서를 쓰고 전입까지 마쳤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집이 공사 중이니 우리 부부 역시도 “잘 될 거야.”하고 짐작의 말로 서로를 위로할 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왜 자꾸 한 숨을 쉬지? 아마도 곧 닥칠 추가 지원금의 폭탄을 예상한 걸까?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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