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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Mar 23.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다정하지 못한 순간들 1편

어머님 당신은...


 뿌연 안갯속 같기도 하고 검고 깊은 바닷속 같기도 했다. 앞날이 설계되지 않는 상황이 나는 점점 답답해졌다. 이번에 시골살이를 준비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커다란 화두를 만나게 되었다. 내일의 생활이 준비되지 않을 때 나는 몹시 불안하여 오늘을 망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내 안에 '불안'요소가 들어오면 나의 회로는 얼어붙고 만다. 나만큼 불안에 약한 사람이 또 한 명 있는데 바로 시어머니시다.


 시어머니는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다가 우리의 시골행을 알게 되셨다. 그전부터 몇 차례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을 내비친적이 있지만 그분은 귀기우려 듣지는 않으셨던 것 같았다.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화들짝 놀라시며 시골살이가 웬 말이냐고 소리치셨다.

 "누구 마음대로?"

 당연히 우리 부부 마음대로. 시어머니는 정답을 몰라 물으셨을까? 

 시어머니는 황당해하며 화를 내셨고 우리 부부와 덩달아 아이들까지 당혹스러움을 어쩌지 못해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진땀을 뺐다. 시어머니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먼저 전화를 끊으셨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넥플릭스를 틀어주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남편은 어차피 결정한 일이고 부모님 때문에 접을 것도 아니지 않냐며 나에게도 마음 쓰지 말라고 못을 박아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남편 말대로 부모님 때문에 시골행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나 어른을 '무시'하는 태도는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밤새 생각해봐도 시골살이는 옳지 않다시며 접으라 하셨다. 우리 부부가 많이 고민해보고 결정한 일이라 말씀드렸으나 어머니의 역정을 더욱 자아낼 뿐이었다.

 "시골서 도시로 못 와서 난리다. 거기 가서 뭘 어쩌려고? 니 남편 밥은 어쩌고?"

 밥?... 나는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난밤 나는 여러 감정을 경험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시골집은 우리의 앞날의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한숨이 미래가 아닌 현재임을 나에게 각성시켰다. 만약 단열공사가 잘 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추위에 떤다면 내가 없어서 밥을 굶고 있을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건가... 긍정적인 기대는 하나도 없고 내가 떠안아야 할 징벌들만 나를 기다리는 미래라니. 가뜩이나 불안한데 시어머니가 노골적으로 불안의 폭죽을 터트리시니 내 불안은 분노가 되어 점점 어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식 걱정하시는 마음, 곁에 두고 자주 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식은 마흔을 바라보는 성인.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 취급을 하시니 나는 답답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순진한 내 아들을 나쁘게 물들인다'하시는 본심을 아낌없이 드러내시기에 억울하고 속상했다. 

 남편은 어머니와의 첫 번째 통화 후 나한테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는지 자꾸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말고 짐이나 싸"하며 갈등관계에서 나를 제외시키려고만 했다. 그러나 어머니 설득을 남편에게 맡기면 결국 모자간의 싸움이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도록 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연락 없이 잠잠한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시어머니는 친정분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셨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가 주말부부를 하기로 했고 며느리가 손주들을 데리고 시골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친적분들에게 알리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친정분들, 특히 남편의 이모님들은 어머니와 비슷하게 걱정이 많은 분들이셔서 하나같이 입 모아 우리 부부를 말려야 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모임 후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기세 등등하게 말씀하셨다.

 "이모들도 다 말린다. 그만둬라."

 이어 전화를 받으신 아버님은 나에게

 "네가 별나서 그렇지 아범이 왜 주말부부를 하고 싶겠냐?"

 하시며 처음으로 나에게 고함을 치셨다.

 당황한 남편이 내 손에서 전화기를 뺏아가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솔직히 나는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며느리를 아들 밥해주는 사람으로만 보셨을 때도 이만큼 황당하지는 않았다. 세대차이는 잘못이 아니다. 그냥 차이일 뿐. 그러나 '우리 아들은 착한데 며느리는 별나다'라는 전제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나빴다. 과정에서의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결정이 난 일은 부부 공동의 몫이라는 생각을 못하시는 건 새대의 문제를 넘어 의식과 수준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불쾌함을 사과받고 싶을 정도로 나는 화가 났다. 

 전화기를 들고 쭈뼛쭈뼛 다가오는 남편에게 말했다.

 "앉아봐"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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