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판단이 옳아.
시골살이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들의 노랫소리가 잠을 깨웠다. 시골은 닭이 홰를 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우리 마을은 새들의 지저귐이 압도적으로 커서 새들의 해님 마중에 우리 가족도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3월에 막 접어든 시골은 아직 메마른 나뭇가지와 차가운 바람이 가득해서 조금은 서글펐는데 입학식이 있었던 날 새벽엔 비까지 내려서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날씨와 상관없이 입학식 분위기에 딱 맞는 옷을 아이들에게 입히고 겉옷은 겨울 옷을 단단히 입혔다. 덜컹 소리가 크게 나는 미닫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마당과 담벼락에 앉아있던 새들이 푸드드득 자리를 박차고 날아갔다. 학교까지는 도보 15분 정도지만 추운 날씨와 젖은 땅을 핑계로 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1학년으로 입학하는 학생은 모두 9명.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부모가 참석하는 입학식을 할 수 없어서 아이만 교실로 들여보냈다. 대신 유치원에 입학하는 둘째는 입학생이 3명뿐이라 입학식에 부모의 참석이 가능했다.
작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학교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래도 체육관과 급식실이 증축되어 있고 본교 건물도 내부 리모델링이 되어있었다. 교실을 개조한 병설 유치원은 3명의 아이가 생활하기에 무척 넓어 보였다. 게다가 담임 선생님 한 분 외에 방과 후 선생님이 또 한 분 계셔서 점심시간부터는 두 분의 선생님이 아이 세명을 돌봐주시는 시스템이라 몹시 든든했다.
간단한 입학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아이들은 교실에 남고 부모들은 복도로 나왔다. 혹시나 낯선 환경이라 아이가 안 떨어지려 하면 어쩌나 하는 기우는 정말 나만의 착각. 둘째 아이는 풍부한 장난감과 친절한 선생님에 푹 빠져서 남편과 나의 아쉬운 발걸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유치원 교실 옆반인 1학년 교실을 힐끗 보았더니 첫째는 꼿꼿하게 앉아 교실에서 진행되는 입학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책걸상에 앉아있다니!’
나는 몹시 감동이 밀려와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복도 창문을 붙잡고 서서 아이를 계속 관찰하고 싶었지만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역병은 외부인인 부모를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다.
‘시끌벅적한 입학식 후에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 먹는 추억이 우리 가족에게 생기지 않는구나. 그럼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해”하고 뻔한 잔소리를 하는 시간은 언제 가지지?’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 중앙현관으로 향하는 길이 몹시 춥고 씁쓸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울적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무려 입학이라는 감동이 춥고 스산하고 허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과자를 하나 뜯었다. 아이들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엎드리게 되었고 발끝이 시려 이불도 꺼내 덮었다. 입학식을 이유로 연차를 낸 남편과 한 이불을 덮고 과자를 먹다 보니 어디선가 행복이 뿌직 비집고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입꼬리가 자꾸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향해서 입술 사이로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작년에 길고 긴 가정보육과 시골행 준비로 예민함이 최고조이던 나는 여유와 행복을 마주하기 쑥스러워서 벌떡 일어나 집을 치우고 이사비용을 계산해보며 수선을 떨었다. 한참 동안 혼자 바쁘다가 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때가 되지 않았다. 16시 30분에 하교하는 아이들이 집에 오려면 4시간이 넘게 남은 것이다. 너무 좋았다. 내일부터는 꼬박 8시간이 자유다!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나는 그제야 입꼬리와 광대의 승천을 허락하고 솔직하게 웃었다.
“그렇게 좋아?”
남편에 물음에 겸연쩍어진 나는 웃음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옳았다는 게 좋아서 그래! 아까 봤잖아. 학교 분위기”
실은 입학식이 허전했던 것과 별개로 학교에서 마주한 풍경이 놀랍도록 정겨웠다. 새로운 학년으로 진학한 학생들의 들뜬 얼굴과 외부인을 보고 먼저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은 내가 여태껏 본적 없는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학년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께 달려가 팔짱을 끼고 선생님 키와 제 키를 비교해보며 깔깔 웃는 모습은 청소년 드라마 엔딩의 미장센이 아닌가?
교장실 한쪽 벽면이 전교생의 사진과 이름 장래희망으로 메워져 있는 것은 어떻고? 교사당 학생 수가 적으니 교사의 업무량이 적고 그만큼 교사의 관심이 학생에게 향하게 되는 시골학교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어코 나는 아이 둘을 입학시켰고 나에게는 하루 8시간의 자유가 주어진다!
날씨가 춥다고, 입학식이 단출하다고 울적했던 것은 사치였다. 내 기준 최고의 학군. 나는 역병의 시기임에도 가장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상의 내용을 남편에게 구구절절이 설명하며 우리 부부는 현명하다고 자화자찬했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확신보다는 기대감이 더 클 때 타인에게 말을 하면서 나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내 마음을 정리하고 토닥이는 시간들.
다음날, 08시 20분에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남편은 부산 집으로 내려갔다. 나 혼자 있는 집은 무척 고요해서 마당의 새들이 짹짹거리며 주인행세를 하면 나는 방 안에서 앉았다가 누었다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금강산 구룡연 정상에서 느꼈던 감동도 혼자 있는 방안 풍경만 못하고 청량감 지존이라는 샤이니 노래 ‘뷰’도 혼자 있는 상쾌한 기분을 이기지 못한다. 16시 30분 아이들의 하교까지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그런데 신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들떠 있었고 결국 그것은 나를 폭발시켰다.
다음편도 꼭 봐주세요:)
#시골살이 #시골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