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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Oct 21.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어린이 규칙 제정

우리 마을 어린이 규칙

 규칙이 처음 등장한 건 5월이었다. 돌담을 밟고 올라가 뛰어다니는 일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돌담의 돌을 들어 올려 마당으로 던지기도 했는데 어른의 눈에는 너무 아슬아슬해 보여서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담에 올라가지 마!"

"돌 던지지 마!"

 윗채 친구와 나는 각자의 창문에 기대서서 끊임없이 경고를 보냈다. 친구와 나의 근심에는 싹을 틔우지 않는 나무 한 그루도 포함이었다. 벚꽃나무는 화려하게 피었다가 상큼한 초록잎을 내놓으며 계절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그 옆에 선 나무 한그루는 계속해서 비쩍 말라붙어있었다. 아이들이 돌담을 밟고 올라가 나무에 점프하며 매달리기 일수라 나무가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 아찔해졌다. 다행히 그 나무는 뒤늦게 다홍색 백일홍을 피워냈지만 나무에 대해 전무하던 우리는 겁을 먹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시골 육아는 그즈음부터 지쳐가기 시작했던 거 같다.


  엄마가 미리 입을 맞춰 대충 규칙을 정하고 아이들을 모았다. 아이들에게는 돌담이나 나무가 훼손되면 이장님께 혼나니까 너희들끼리 규칙을 정해  지켜보라고 권했다. 초등 1~2학년쯤 되니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고 있어서 누구랄 것도 없이 '담에 올라가면 위험하다.', '나무에 매달리면 나무가 아프다.' 하며 옳은  대잔치를 했다. 엄마들이 곁에서  듣고 있다가 "어머!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게 좋겠다!" 하며 추임새를 넣어줬더니 우리가 미리 정한 규칙 그대로 아이들이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우린 재빨리 규칙을  지키면 1주일에 한번 스티커를 주고  스티커가 10개가 모이면 원하는 선물을 사주겠다고 아이들을 독려했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돌담에 올라가지 않는다.

2. 나무에 올라가지 않는다.

3. 나무 보호하기.

4. 지키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잘 지키기.

5. 일주일 동안 잘 지키면 스티커 받기.

6. 스티커 10개 모으면 상 받기.


 각자 원하던 선물이 분명했기에 규칙은 매우 잘 지켜졌다. 규칙 덕분에 돌담과 나무는 지킬 수 있었지만 그밖에 나는 더 의논할 거리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침 8시 무렵 만나 학교와 집에서 계속 붙어 있다가 저녁 7시쯤 헤어졌다. 매일 11시간 정도를 같이 보냈고 대부분의 주말도 함께했다. 나는 '실컷 놀아라.'가 시골생활의 모토였으므로 되도록 시간적 제한 없이 아이들을 놀렸다. 그런데 학습을 너무 못 쫓아가는 모습을 보자 내적 갈등이 심해졌다.

 "영어는 몰라도 한글은 알고, 방정식 함수는 몰라도 덧셈 뺄셈은 알아야 하지 않아?"

 나의 고민에 남편은 밤에 문제집을 풀려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수학 문제집 2권을 샀다. 아이는 거의 발작증세를 보이며 공부하기를 거부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이란... 나중에야 생각해보니 아이의 발작은 너무 당연했다. 하루 11시간을 놀다 보면 놀이와는 별개로 휴식이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며 휴식을 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내 아이는 부모와의 살부빔과 어리광부리기가 휴식인 아이이다. 그런 아이를 붙잡고 문제집을 내밀었으니 아이의 거부는 당연했다.

 학습에 대한 고민은 시골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돌담과 나무에 올라가지 않는 게 전부가 아니라 놀이의 시간과 방법에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 주장을 앞세우지 못했다. 놀이시간을 줄이라고 하기엔 아이들의 놀이가 너무 건전하고 흥미롭고 기발했다.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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