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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Nov 22.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남편 혹은 119

공휴일에는 병원도 쉰다. 


 119와 두 번째 통화는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공휴일과 주말이 딱 만나서 월요일이 대체휴무였던지라 남편은 화요일까지 연차를 내고 시골집에 왔다. 추석 이후 아빠를 처음 만나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시골 생활을 하며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아빠를 매일 못 본다는 것이다. 시골행을 결심할 때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뭐 그렇게까지 상관이 있을까?' 하며 간과하기도 했었다. 워낙에 유대가 좋았으므로 가끔 만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8살 첫째의 경우 우리 부부의 예상대로 아빠를 많이 보고 싶어 하고 헤어질 때 꼭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한다. 문제는 5살 둘째였다. 아빠를 만나면 반가워하지만 씻을 때도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엄마만 찾는다. 첫째와는 비교가 안되게 아빠와 유대가 약하다. 그래서 남편은 되도록 둘째와 살을 부비며 놀아주고 애착이 형성되도록 노력을 한다. 


 오랜만에 시골에 온 남편은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아이들과 바깥나들이를 많이 해야 한다며 나들이 장소를 찾았다. 일전에 교장 선생님께서 함양 상림공원을 추천해주신 적이 있어서 우린 함양으로 가보려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 부부가 방에 엎드려 상림공원과 모노레일을 검색하는 동안 아이들은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보는데 한껏 신이 난 둘째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혼자 깔깔 웃어댔다. 아늑한 집안에 든든한 남편, 깔깔거리는 아이소리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것도 잠시 만화 소리가 안 들린다고 좀 조용히 하라는 첫째의 짜증과 아랑곳 않고 뛰어다니는 둘째의 투닥거림이 들리다가 '앙!'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싸우면 만화 끈다!"

 정말 하루도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만화까지 켜줬는데 싸우다니.. 나는 내가 그려둔 화목함을 깨트리는 싸움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엄마 얘 눈에서 피나!"

 첫째의 말에 남편이 벌떡 일어나 거실로 달려갔다. 화목이 깨지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 둘째가 다쳤다.


 우린 즉시 차에 올라 읍으로 향했다. 읍에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같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이름도 메디컬센터고 건물도 크다. 12시를 좀 넘은 시간이라 혹시나 점심시간일까 봐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역시 점심시간인가? 몇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둘째는 달려가다 자신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 문틀에 눈썹을 찧었다. 피가 흘러서 얼핏 눈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상처 부위는 왼쪽 눈썹 위가 찢어진 것이다. 손수건으로 지혈을 하고 병원으로 가는 길, 도착지인 병원은 전화를 받지 않고 울다 지쳐 졸려하는 아이의 무거운 눈꺼풀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편은 한글날이라 병원이 쉬는 것 같다며 119에 전화해 병원 문의를 해보라고 했다. 

 '119라니... 119라니...'

 나는 앞으로의 평생에 다시는 119에 전화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119 버튼을 눌렀다. 

 "아이가 좀 다쳐서 꿰매야 할 것 같은데 병원 문 연 곳을 알 수 있을까요?"

 "다친 부위가 얼굴이면 성형외과로 가셔야 합니다. 한글날이라 일반 병원은 다 쉬어요.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응급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부산, 대구, 진주에 있는 응급실을 안내받았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메디컬센터 가는 길에도 애가 터지는데 우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다행인지 아이들은 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우린 함양과 반대방향인 대구로 방향을 잡았다. 


 도착한 곳은 칠곡 경북대학교 병원 응급실. 접수 후 30분 정도 대기하다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찰흙을 손톱으로 찍은 듯이 아이의 상처는 중간이 깊게 찧여서 녹는 실로 안쪽 근육을 꿰매고 다시 일반 실로 겉을 꿰맸다. 부디 흉터 없이 아물어주었으면.. 아이의 몸에 남는 흉터는 엄마에게 가슴 찢어지는 상처가 된다. 다치기 전에 내가 잘 돌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의 부주의로 저 어린것의 몸에 흉터를 남겼다는 죄책감이 남는다. 그날도 응급실에서 두 시간여를 보내며 어깨 가득히 죄책감을 이고 지고 마음이 괴로웠다.

 응급실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가 없어서 남편과 첫째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나와 둘째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두 시간여 응급실에서 죄책감에 시달릴 때 남편은 차가운 주차장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의사한테 낚여(?) 흉터연고를 15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남편은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15만원이 대수인가? 우린 아이에게 작은 흉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오래 기다린 첫째와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치료를 받은 둘째를 칭찬하는 의미로 뷔페에 가서 저녁을 먹고 수성못 산책도 했다. 대구 사람은 수성못에 다 와있는 게 아닐까 싶게 사람이 많았다. 주차를 위해 커피숍에 가서 아보카도와 바나나를 섞은 '아빠주스'도 사 먹었다. 고층 아파트와 넓은 호수, 어둠을 도저히 가만히 두지 않는 화려한 조명이 너무 익숙했다. 내가 돌아갈 자리와는 너무 다른 풍경이 조금도 생경하지 않았다. 나는 왜 시골에 사는 걸까? 남편은 아이들의 그림자마저도 아까워하는데 길면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야 하는 생활을 왜 하고 있을까? 나는 시골이 좋다. 시골은 계절마다 색깔과 소리가 다르고 낮에는 밝게 밤에는 어둡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까 사고 전만큼 아늑하고 화목한 분위기와 내 무릎 위에 놓인 두툼한 약봉지가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 가족 4명이 한 마음이기는 한데 한 공간에 머물 수는 없다는 게 괴롭게 느껴졌다. 엄마 아빠에게 공평했던 둘째가 헤어져 사는 몇 달 만에 엄마만 찾는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편은 마음이 더 힘들 것이다. 


 다음날 우린 함양 나들이를 갔다. 산삼 항노화 엑스포가 진행 중이라 상림공원에는 가지 않고 근처 공원에서 잠시 놀았다. 남편은 노력하고 아이들은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찌릿했다. 시골이 뭐가 좋아서.. 난 스스로에게 자꾸만 물어봤다. 시골이 뭐가 좋아서..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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