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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Dec 31.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뭐가 좋냐면…!


 한해의 마지막 날. 잠시 후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그러나 그것은 관용적인 숫자에 불과할 뿐 몇 시간 사이 나를 확 늙게 만들지는 못한다. 노화란 가랑비에 옷 젓듯이 살포시 스미는 것이니.

 열정과 포부로 터질듯한 욕망을 안고 시작한 시골살이는 이제 끝에 다다랐다. 시골로 이사한 순간부터 시간은 흘러  모든 한순간 한순간이 추억으로 나에게 스미었다. 하루도 평범하거나 순탄하지 않았다. 가족이 흩어져 산다는 특수성과 눈에 띄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연약하고 위태로워서 끝 간 데 없이 불안하고 서글플 때는 할 수만 있다면 소리 내 울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 고독 속에서 시골생활의 첫 번째 장점을 찾았다. 아이들은 아침 8시면 등교해서 오후 5시가 가까워야 집에 왔다. 나에게는 하루 8시간 이상의 자유가 주어졌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장보기, 때로는 텃밭 농사까지 나는 부러 손이 가고 번거로운 일들을 즐겨했다. 그러다 바쁜 손길을 멈추고 나면 울적해지는 마음에 집중하고 집요하게 집착할 수 있었다. 언제고 문득문득 찾아오던 불안을 자꾸만 파해쳐 뒤져 보아도 그것의 출발이 어디인지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동반자로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면 ‘이번 생은 이대로 살련다’ 배짱이 생기기도 했다. 7평 시골집에 살지 않았다면, 기생해서 쓰는 와이파이가 자꾸 끊기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는 시간이었다.


 시골의 두 번째 장점이자 결정적인 장점은 아이들 학교에 있다. 나는 지구촌 모든 학부형에게 우주 최고의 학교로 아이들 학교를 천거하고 싶다. 아이들 학교는 50여 명의 전교생이 호형호제하고 살뜰히 챙기는 게 일상화되어있다. 학생이 담임교사에게 달려가 안기는 수준을 넘어 교장선생님이든 서무실 선생님이든 학생들과 거리가 가깝다. 교사라는 직책을 빼고라도 어른들의 관심 어린 시선을 쉼 없이 받는 아이들은 양지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기운 세고 푸르르게 자라났다.

 또한 친환경 non gmo급식, 방과 후 피아노, 태권도 수업, 서핑, 승마 등 체험비용에 있어 학생 부담이 전혀 없고 너무 자주 소소한 선물을 받아와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도시에서는 (그 상황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나) 노 키즈존 식당도 있다는데 시골에는 사람 하나하나가 귀하고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귀한 존재로 예쁨 받으니 부모로서 기쁘고 안심되는 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장점도 글로 쓰자면 그 양이 팔만대장경은 될 듯이 방대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장점을 열거하지 않으려 한다. 남편과 오랜 상의 끝에 나는 시골생활을 접고 도시로 돌아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정 후 달력을 넘길 때면 마지막 잎새를 떨구는 느낌이라 가슴에 찬바람이 불어 다시금 깊은 고독에 빠지곤 했다.

 시골에서 4계절을 보내보니 자연의 경의로움과 아름다움이 내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오는 경험은 있었으나 그 외에는 결국 다 사람 사는 일,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너른 마당과 친절한 학교에 진한 추억을 가질 테지만 살림하는 게 전부인 나는 남편 없이 온전히 혼자 보내는 육아 일상이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떠날 일이 서글프다. 여름이면 잡풀과 모기가 기승인 마당과 겨울이면 콘센트 구멍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시골집이 뭐가 좋다고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해방감에 깨춤이라도 추고 싶을 때 마주한 고독처럼 행복에는 불안이, 만족에는 허무함이 언제나 함께라면 그곳이 시골이든 도시든 그냥 살아야지. 행복한 가면을 쓰고. 가면이 진짜 내 것이 되도록 애쓰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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