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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Aug 29. 2019

키르메스 Kirmes

나는 키어메스라고 읽지만

 앞서 쓴 아헨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Kirmes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한국식 표기법으로는 키르메스라고 쓰는데, 나는 키어메스라고 발음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한글로 작성하고 있으므로, 키르메스라고 하겠습니다. 


 키르메스를 처음 본 것은 독일에 온 지 일주일이 되던 때였다. 날이 너무 좋아 집에만 있을 수 없단 생각이 들어 즉흥적으로 근교 여행을 가보기로 했었다. 목적지는, 구하메의 추천에 따라, 뮌스터(Münster)! 뮌스터에 대한 포스팅은 다음에 따로 하는 걸로 하고, 여기서는 키르메스에 대한 얘기만 해보려 한다. 

 뮌스터 시가지를 구경하고 시가지 너머에 있는 뮌스터 성을 구경하려고 걸어가고 있는데, 성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슨 행사가 있나? 생각했는데 행사가 아니라 성 앞에 아예 놀이공원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 즈음에 웬 놀이공원이 들어서 있는 거라고 비유하면 되려나. 아무튼 너무나 생경한 광경이어서 놀라버렸다.


상점들 뒤에 보이는 것이 뮌스터 성이다.
놀이기구뿐만이 아니라 먹거리를 파는 가게도 많다.

 놀이공원을 너무 오랜만에 와본 데다(진심으로 한 6~7년 만인 거 같다.) 독일 놀이공원은 또 처음이어서 나도 키르메스에서 뛰노는 아이들만큼이나 신나 있었다. 입장료가 무료인 대신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돈을 내야 해서 뭘 타진 못했지만, 대신에 손에 솜사탕 하나를 들고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세련된(이라고 하기엔 나도 놀이공원 안 가본 지가 넘 오래지만) 놀이공원이라기보다는 나 어릴 적 가본 대구 우방타워랜드나, 구미의 금오랜드, 경주월드 이런 지방의 놀이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놀이공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하메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신이 추천했던 뮌스터가 내 맘에 드는지 궁금해했다.


 "놀이공원이 있어서 구경하고 왔어!"

 "놀이공원? 아~ 키르메스 갔었구나?"


 이때 처음으로 "키르메스"라는 단어를 들었다. 사전에 검색해보니 1년에 한 번 서는 큰 장? 도시 축제? 같은걸 뜻한다기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자세히 찾아보았다. 네이버 종교학 대사전과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키르메스는 원래 그 지역의 교회의 건립일을 축하하는 축제였는데, 현대에 와서는 이렇게 간이 놀이공원이 들어서는 식으로 바뀐 거라고. 그런데 알고 보니 Kirmes는 내가 사는 이 NRW지역에서 쓰는 말이고, 지역에 따라 부르는 말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아헨에선 Kirmes를 Kermes라고 표기하고 있어서 갸우뚱했었는데 그 의문이 이제야 풀렸다. 

  


 키르메스는 지역마다 여는 날짜가 다 달라서, 마음만 먹으면 1년에 몇 번이고 키르메스를 방문할 수도 있지만, 놀이공원의 그 분위기를 좋아하기는 해도 놀이 기구를 즐겨 타는 편은 아니기에(단, 대관람차는 무지 좋아함) 뮌스터 키르메스 이후 딱히 다른 키르메스를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트친님이 헤르네(Herne)에서 NRW 지역에서 제일 큰 키르메스를 연다는 제보를 해주셨다. NRW에서 제일 크다는데 안 가볼 수 없지!  

 헤르네는 나도 아직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는, 다른 도시를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작은 도시여서 여기서 NRW에서 가장 큰 키르메스가 열린다는 게 좀 의외였다. 가장 큰 키르메스는 주도인 뒤셀도르프나, 이 주에서 제일 큰 도시인 쾰른에서 열릴 줄 알았는데.



 키르메스를 갈 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안정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상설 놀이공원의 경우에도 간혹 사고가 생기는 데 있다, 없다 하는 이런 간이 놀이공원은 안전 한 건가? 하는 의문. 범퍼카 같은 놀이 기구는 이해가 가는데 대관람차라던가, 롤러코스터라던가, 자이로드롭 같은 높고 큰 규모의 놀이기구는 어떻게.. 뚝딱 세울 수 있는 거지?? 혹시 관련 글이 있나 싶어 구글링을 해보니 나랑 똑같은(부연 설명까지 똑같아)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https://www.gutefrage.net/frage/sind-fahrgeschaefte-auf-der-kirmes-sicher

키르메스의 놀이기구는 안전한가요?


https://www.gutefrage.net/frage/wie-sicher-sind-fahrgeschaefte-karuselle-auf-der-kirmes

키르메스의 놀이기구, 회전목마는 얼마나 안전한가요?


 답변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당연히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TÜV에 의해 안전성을 점검받기 때문에 믿을만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여기서 TÜV는 무엇인가? 네이버와 구글에 검색해보니, TÜV는 Technischer Überwachungverein의 줄임말로, 기술 감독 협회라는 뜻이다. 나는 차에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자동차 검사로 유명한 듯.. 전 세계 걸쳐서 사업장이 있고(우리나라에도 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자 제품 그리고 이런 놀이기구까지 안정성 검사를 하는 신뢰받는 민간 기관이라고 한다.

 얘기가 샜는데 아무튼, 믿을 만한 기관에서 안정성을 검사받는다고 하니 의심은 좀 거둬도 될 듯..


굿즈를 판다고 해서 봤더니... 디자인이 왜 이래요

 헤르네 키르메스는 관련 굿즈도 팔고 있었는데 디자인이 하나같이 이렇다.. 정말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이걸 정말로 팔려고 만든 것인가? 이것이 정녕 전문가의 손을 거친 디자인인가? 그냥 지자체 공무원이 대충 포토샵으로 끼적인 디자인이 아닐까? 

 나는 원래 작고 귀여운 굿즈나 장난감에 환장하는 사람으로, 한국에선 가챠 머신 돌리다 지갑 다 털리는 사람인데 독일에 와서는 정말 반강제적으로 지갑이 지켜지고 있다. 내 입장에서야 예쁜 데 돈 없어서 못 사는 거 보다는 아예 안 예뻐서 구매 의욕 0이 되는 쪽이 덜 괴롭고 낫다. 예쁜 굿즈도 못 사고 이런 거나 돈 주고 사는 독일인들은 뭐.. 내 알 바 아니다.



 독일에도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큰 상설 놀이공원이 있긴 하지만 -NRW 지역에도 두 군데 있다. 무비파크와 판타지아 랜드- 입장료나 접근성 면에서 가기가 좀 주저되는 게 사실인데(특히나 놀이공원은 뭔가 혼자 가기 좀 심심하기도 하고..) 키르메스는 그런 면에서 좋은 대안인 것 같다. 공짜로 구경만 하며 놀이공원 분위기는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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