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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Sep 04. 2019

내가 독일에서 방 구했던 이야기

내 한 몸 뉘일 곳 찾기가 이토록 어렵고

 최근 트위터 타임라인에 집을 구하시는 트친이 여럿 보여서, 1년 6개월 전 내가 방 구했던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당시에 트위터에는 마치 무슨 일지 쓰듯이 기록을 해두었지만, 트위터 특성상 찾아보기가 힘든 관계로 여기에도 한 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DSH 시험 후기를 쓸 때 대충 방 구할 때의 얘기를 써둔 게 있어서 그 글과 트위터에 남긴 기록들을 토대로 정리해 보겠다. 혹시나 어 이거 어디서 본 건데? 싶다면 아마 제가 쓴 글일 겁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 2018년 2월 15일이었고, 유학을 가기로 완전히 결심한 것은 2월 말이었다. 당시 내 독일어는 아직 B1 수준으로, 대학 수업을 들을 수가 없는 레벨이었다. 즉, 나는 1년 안에 어학증명서를 가져오겠다는 조건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었다. 내가 가려는 학교는 여름학기부터 시작하는 학교로 늦어도 다음 해 3월(그러니까 올해 3월)까지는 어학 자격증을 제출해야 했다. 계산상 12월에 있는 DSH를 치는 것이 혹시나 한 번 떨어질 경우까지 생각했을 때 최적기였고 12월이 되기 전까지 DSH 시험 준비반까지 가려면 늦어도 4월부터는 어학원에 다녀야만 했다. 그렇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한 달 안에 독일로 떠날 준비를 마쳐야만 하는 것이다.

 

 일단 살 곳부터 찾는 것이 시급하단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많이들 추천했던 방법은, 단기로 머무를 수 있는 쯔비쉔미테(Zwischenmiete 방학 동안 학생들이 집을 비우는 그 사이에 잠깐 들어와 사는 것)를 구하거나 일단 에어비앤비, 유스호스텔 같은 곳에 머무르며 살 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많은 집주인들, 혹은 Hauptmieter(중심 세입자)들이 세입자를 직접 만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집을 구해서 나가는 건 많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보증금 먹튀 사기를 당할 위험도 높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멘탈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 집도 없는 상태로 가서 어학원을 다니며 방을 구하러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지가 않은 것 같았다. 스트레스 개복치인 나는 분명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무조건 3월 안으로 방을 구한다는 것이 나의 결심이었다. 못 구하면 죽음뿐!


 그날부터 WG-Gesucht(https://www.wg-gesucht.de/)를 매일매일 드나들었다. 이 사이트는 우리나라로 치면 다방이나 직방 같은 사이트인데, 여기서 WG란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로 주거공동체라는 의미이다. 기숙사가 아닌, 일반 가정집에 연고도 없는 이들끼리 함께 세 들어 사는 것. 한국에도 요즘 셰어하우스가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일반적이진 않은데, 독일에서는 꽤 많은 이들이 WG에 살고 있다. WG에는 "Zweck-WG"와 "keine Zweck-WG"가 있는데, Zweck-WG는 한마디로 돈을 아끼려는 목적(Zweck) 아래 함께 사는 것으로, 오로지 주거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에만 의의를 둔다. 이렇게만 말하면 셰어하우스가 다 그런 것 아니겠냐 할 텐데, "keine Zweck-WG"를 설명하면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keine Zweck-WG"는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끔 같이 요리를 해 먹고, 파티도 하는 등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들끼리 활발하게 교류를 하는 WG를 말한다. WG-Gesucht 사이트에 보면, 이 WG가 "Zweck-WG"인지, 아니면 "keine Zweck-WG" 명시되어 있는데, 체감상 "keine Zweck-WG"를 더 많이 본 느낌이다. 내 성격상으론 "Zweck-WG"가 더 나에게 맞지만... 나는 이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WG-Gesucht 사이트 화면. 원하는 조건을 세세하게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집을 구하다보면 결국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서울에서 살던 원룸은 관리비며 각종 공과금까지 합해 41~43만 원 정도를 내야 했으므로, 집세 상한선은 320유로로 정하고 그 금액 이하의 WG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대뜸 집주인에게 "Hallo, ist das Zimmer noch frei?"라고 메일을 보냈다. 우리나라도 왜 사이트에서 보고 괜찮은 거 같으면 집주인에게 디렉트로 방 아직 비어있나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가. 나는 단순하게 그렇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답이 전혀 오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그제야 검색을 해봤더니 그건 완전 잘못된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거의... 알바 구하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약간 과장을 보태 자소서 같은걸 써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서, 무엇 때문에 독일에 오는지, 나는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아무래도 공동체 생활에 맞는 성격임을 어필하는 것이 좋다), 흡연자인지 여부와 방세는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등등을 서술해 두는 것이 좋다는 게 공통된 팁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요리를 좋아한다는 말과 청소를 잘한다는 것도 써둘 것을 추천했다. 

 네이버와 구글에서 찾은 팁을 토대로 새 메시지를 작성했다. 


방 구할 때 내가 실제로 쓴 메시지. 개인 정보는 지운 뒤 올립니다.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 할 거 같았기에, 나는 내가 밝힐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썼다. 근데 나를 선택했던 구하메가 나중에 말하길, 내 메시지가 너무 긴 게 오히려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나도 여기 글 쓰면서 오랜만에 읽어보니 쓸데없이 너무 상세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입국 날짜를 밝히는 건 필요하지만, 핀에어를 예약했다는 얘긴 왜 썼을까(..) 아무래도 나는 한국에서 구하고 있었으니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 믿을 만한 사람임을 어떻게든 입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도에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준 것이기도 하다. 이거는 내가 탄뎀 친구를 쓸 때에도 쓰는 방법이다. SNS를 보면 대강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까. 

 위 내용뿐만 아니라, 광고글에 뭔가 특이한 점이 있으면 내가 당신의 광고글을 꼼꼼히 읽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그 내용도 꼭 썼다. 예를 들면, 광고 게시자 중에 내가 가려는 학교를 이미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당신이 다니는 학교를 나도 가려고 한다 라고 쓴다던가. 구하메의 경우에는 "호모포비아와 인종차별자는 이 집에서 살 수 없습니다."라고 광고글에 써 두었는데,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메시지에 썼다. 이것은 내가 나중에 역으로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입장이 되니까 꽤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왜냐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광고글을 꼼꼼하게 읽지 않고 거기에 다 명시된 걸 또 묻는다. 월세가 얼마냐 묻는다던가, 여자만 받는다고 했는데 남자가 메일을 보낸다던가, 가구를 다 넘겨받아야 한다고 써놨는데도 전혀 처음 듣는다는 듯 반응한다던가. 이게 하우스메이트 구하는 입장에서는 꽤 피곤하고 무성의하게 느껴지긴 하더라.

 그래도 어쨌든 내 메시지가 긴 것은 사실이다. 구하메의 경우, 광고글을 올리고 무려 75통의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그 75통의 메일을 다 읽는 건 정말 피로한 일일 게다. 그러니 나처럼 구구절절 적기보다는 필요한 말과 정보만 딱 적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마음이 점점 간절해지니 그러기가 쉽지 않지만..


WG-Gesucht에서 광고 게시자에게 메일을 보내면 자동으로 오는 응답 메일. 이런 게 몇 페이지씩 쌓여있다.

 저렇게 정성 들여 메일을 거의 50통 가까이 보냈는데 정말 답변이 거의 안 왔고 그나마 몇 통 온 것도 이미 하메를 구했다거나, 독일에서 면접을 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메일밖엔 없었다. 나는 작전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광고 게시글에는 종종 본인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유럽의 카카오톡(..)인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내보기로 한 것이다. 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건 메일이 아닌 메시지이므로, 독일과 한국의 시차를 고려하여 그들이 깨어있는 시간에 보낼 것! 왓츠앱은 카톡처럼 이 사람이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내 메일을 읽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답변을 안 하는 건지 아님 아예 읽지도 않은 건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었다. 

 작전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메일보다 답변율이 높았다. 두 사람이 스카이프로 대화를 해보자고 답을 줬다.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떠듬떠듬 인터뷰했다. 다들 친절했고 영상통화할 때 분위기도 좋았지만, 며칠 뒤 거절 메시지를 받았다. 나의 진심이 액정을 뚫지를 못하는 건가! 통탄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근 3주 가까이 지나고 출국이 2주 뒤로 다가오자 너무 초조해졌다. 나는 이렇게도 안정적인 걸 원하면서 왜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가려고 하는지 내 안의 모순을 원망하며, WG-Gesucht에 광고는 이렇게나 많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내 한 몸 뉘일 곳 없는지 슬퍼하며 기계처럼 메일과 메시지를 보내던 어느 날, 한 광고를 보았다. 위에서 말했듯 "호모포비아와 인종차별자는 받지 않는다"는 말이 적인 광고를. 뭔가 운명적인 느낌이 들어 바로 메시지를 보냈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 답변이 왔다. 먼저 스카이프 통화했던 사람들은 며칠 뒤 몇 시에 스카이프로 얘기하자 이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이 사람은 놀랍게도 지금 당장 통화를 하자고 해서, 준비도 하지 못하고 화상통화를 했다. 내가 뭔가를 말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주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며 집도 (화질이 구리지만) 보여주고, 여러 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을 말해주었다. 나는 거의 OK, Yes 이런 대답밖에 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허무하게(?) 인터뷰가 끝났고, 며칠 뒤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정말 무슨 대학 합격 발표 기다리듯이 그의 결과를 기다렸는데, 답변이 왔다. 근데 기다, 아니다의 답변이 아니었다. 그의 말인즉슨, 이전에도 이렇게 계약을 하겠다고 해놓고 직전에 파기해서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며, 혹시 보증금(Kaution)을 미리 보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식당에서 밥 먹는 중이었는데 아.. 이 메시지를 받는 순간 정말 밥이 안 넘어갔다. 왜냐면, 만나기도 전에 보증금부터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사기 수법의 일종이기 때문이었다. 보증금 미리 보내지 말랬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못 보낸다고 하면 이 기회마저도 날리는 거겠지.. 오만 생각을 다 하다가, 이 사람이 나와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하며 얼굴을 보여주고 집도 보여줬던 점, 내가 보증금을 미리 보내주는 대신 계약서도 나에게 역시 미리 보내줄 수 있다고 한 점 그리고 "호모포비아와 인종차별자는 받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던 이 사람의 선의를 믿어보기로 결심하고, 보증금을 보내 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그가 그러면 좀 더 고민해보고 며칠 뒤에 연락을 주겠다고 답변했고, 며칠 뒤 나에게 You are the lucky Winner!"라고 메시지가 왔다. 

 정말 이건 Winner라는 말이 딱 맞다!! 내가 75:1의 경쟁률을 뚫고.. 모두가 어렵다고 했던 한국에서, 독일 WG 구하기에 성공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였던 집 문제를 출국 1주일 전에 결국 해결한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집을 구하고 매우 홀가분해진 것처럼 쓰고 있지만 사실 출국해서 그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사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마음 밑바닥에 여전히 들러붙어있었다. 다행히 구하메가 친절하게도 꾸준히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심지어는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어떻게 오면 되는지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주는 등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물론 구하메는 그런 의도로 보낸 건 아니겠지만. (하지만, 얼굴을 본 적도 없으면서 자기는 지금 해외에 있으니 보증금을 미리 보내달라, 열쇠는 지인을 통해 당일 주겠다 이런 식으로 사기 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기 때문에 계약할 때는 조심! 또 조심! 해야 합니다.)

 나중에 구하메에게 왜 나를 뽑았냐고 물으니, 자신도 고향에서 독일에 살 집을 구해봤기 때문에(하메는 튀니지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고, 또 본인이 한국과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고, 내 메시지에 (너무 길어서 이상하긴 했지만) 설명이 잘 되어있어서 뽑았다고 했다. 


 그렇게 구한 이 집에서 지금 1년 6개월째 살고 있고, 졸업하기 전엔 아마 이사 갈 일은 없을 듯하다. 구하메는 나와 5개월 정도 살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고, 나는 그 자리를 채워 줄 새로운 하우스메이트를 구했다. 하메 구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어서, 나는 메일을 10통째 받았던 날 광고글을 내렸다. 메일을 다 읽기도 힘들거니와 한 명 한 명 만나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고 10명만 해도 너무 많은 선택지였다. 또 많이 만나면 많이 만날 수록 거절 메시지도 많이 보내야 하잖아.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영화를 찍을 때도 배우들에게 거절 메시지 보내는 게 제일 힘들었다. 후보자가 많을수록 나와 맞는 사람을 찾을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만 정말 더 이상은.. Nein...

 지금 하메는 앞서 내가 서술한 그런 메시지를 보낸 하메였다.(물론 저처럼 길게 쓰진 않았습니다...) 거기에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한 점이 왠지 내 예감을 좋게 했는데, 만났을 때도 느낌이 좋아, 이 친구를 하메로 뽑았고 지금도 후회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방을 구했던 그리고 또 반대로 하우스 메이트를 구했던 얘기. 개인적인 사례이고 진리의 케바케라지만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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