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수 Dec 06. 2020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워

라고 말하기 쑥스러워 써보는 글

01. 요놈 자식

1년의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했던 터라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 두 살 정도 어렸다.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동기들 사이에서 ‘언니’라고 불렸는데, 그중 유독 나를 ‘강지수!’라고 부르는 놈이 친구가 하나 있었다.


아, 그렇다고 막 “야”, “너” 이렇게 부른 것은 아니고 뭔가 혼(?)을 내거나, 칭찬을 할 때 주로 “강지수!”라는 식으로 많이 불렀는데(음... 이 자ㅅㅣㄱ....), 요 놈이 친구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왠지 더 친근하고, 가까운 느낌이 들곤 했다.(비꼬는 것 아니고 진심이다.)



02. 요놈 자식의 생일 축하

학교 다닐 때는 수업도 같이 듣고, 붙어다니기도 꽤 붙어 다녔는데 어느덧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시간 맞춰 얼굴 한 번 보는 일이 참 힘들게 됐다.


그럼에도 가끔 카톡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탄생을 축하하는 연락은 잊지 않았는데, 올해는 요 친구가 축하 인사에 더해 ‘갖고 싶은 걸 말하라’는 미션을 함께 던졌다.


뭘 새삼스럽게 선물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왠지 놓쳐서는 안 될 찬스인 것 같아


“나 책 사줘”


라고 답장을 보냈다.



03. 요놈 자식의 편지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나고, 진짜로 요놈 자식은 생일 선물이라며 서점 로고가 박힌 종이 쇼핑백을 건넸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종이 쇼핑백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책이 한 권도 아닌 무려 두 권이나 있었고, 심지어 편지 한 통도 같이 수줍게 들어 있었다.(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다)


오랜만에 받은 아날로그식 종이 편지라 룰루랄라 하며 열어 본 편지의 첫 문장은, 아니나 다를까 “강지수우~”로 시작.


그렇게 찬찬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중 한 줄의 문장이 시선을 멈추게 했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유 아 마이 에너지야, 알지?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나를 “강지수!”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종종 하던 말이 있었다.

 “이래서 내가 강지수를 좋아한다니까?”
photo by Álvaro Serrano on Unsplash


04. 그러니까 내 말은

때때로(요즘은 특히 더)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 정도로 밖에 못하는 건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과 머리를 무겁게 하곤 한다.


그런 내게, 내가 당신의 에너지라고 말하는 그 문장은, 그래서 내가 좋다는 기억 속 목소리는 무언지 모를 위안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러니까, 지금 이 타이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에너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고, 또 힘을 내보겠다고. 같이 힘 내보자고..! 오케이?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걸 나눈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