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유명산(863m)과 마주하고 있는 중미산(834m)은 유명산과 함께 가평과 양평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유명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중미산이 보여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못지않다.
중미산이란 이름은 아름다움이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답다고 해서 버금 중, 아름다울 미를 붙여 부르게 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조망도 훌륭해 산 정상에 오르면 용문산의 전경과 서울, 남한강, 북한강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중미산 천문대와 중미산 자연휴양림
또한 신복 4리 쪽으로 중미산 자연휴양림과 중미산 천문대를 품고 있다. 이 지대는 고원의 분지 형태를 띠고 있어 천연자연과 천연계곡을 보존하고 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공해도 없고 서울 인근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서울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은 일등성 서너 개쯤이지만 중미산천문대에서는 3,000여 개의 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문은 여름에 저녁 7시 30분부터 연다.
자연휴양림이 같이 있기 때문에 밤에는 별을 관찰하고 낮에는 휴양림에서 삼림욕, 자연생태학습 등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힐링 휴식 또는 휴가지로 꼽힌다.
비 오는 저녁, 중미산으로
산 중턱인 선어치고개까지 37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어 선어치고개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정상까지 거리가 8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짧은 대신 직벽 수준의 매우 가파른 경사로를 여러 곳 로프를 이용해 올라야 하는 난이도가 있는 코스이다.
유명산에서 소구니산(801m)을 거쳐 선어치고개로 중미산에 오르는 연계산행을 할 수도 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더 진행하면 4.7km 산행 거리의 통방산(650m)과 연계산행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는 중미산자연휴양림 정문 앞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정상에 오른다. 임도길을 따라 400여 m 진행하다가 오른쪽으로 등산로로 갈아타 1.5km 정도만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7월 27일, 다른데 다녀오다 시간이 늦어 오후 5시 30분경에 늦게야 중미산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출발이 늦어 해지기 전에 내려와야 해서 중미산 자연휴양림 앞에서 출발해 가장 짧은 코스인 선어치 고개로 내려올 생각이다.
그러나 산행은 늘 돌발 변수가 기다린다. 오늘은 오후 늦게 출발하는 데다 비마저 오락가락 하고 있다.
임도를 걷다가 등산로로 들어선다.
하루종일 오던 비가 출발 때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가 임도를 지나 등산로로 들어섰을 무렵부터 다시 오기 시작한다.
중미산 자체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이 아니어서인지 수풀이 우거져 있고 궂은 날씨라 숲 속은 더 어두워 길을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길이 없는 듯 이어지다 숲 속에서 계곡을 건너는 데크 다리를 만나니 반갑다. 곳곳의 벼랑길에 설치된 난간의 밧줄도 반갑고 고맙다.
곳곳의 벼랑길에 설치된 난간의 밧줄이 반갑고 고맙다.
3,000m 산속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주능선을 만났을 때부터 비가 아예 소낙비가 되어 퍼붓는다.너무 장대처럼 쏟아져 더 이상 진행하기 힘들다. 갑자기 사방이 짙은 숲으로 둘러싸인 막막궁산에 고립된 느낌이 든다.
몇 년 전 대만 허환산(3,400m)에 갔을 때도 비가 왔었다. 애써 올라간 정상이 비와 운무로 가득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허탈해서 내려오는데,날이 저물어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한참을 잘못 내려온 뒤였다. 내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데 비 오는 날 해발 3,000m 넘는 산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한순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시간이 걸려도 다시 오르는 수밖에. 다시 정상을 향해 올랐고, 내려왔던 갈림길에서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밤늦게,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묵었던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립무원에서 실존인식 경험
오늘은 길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의 순간 그때의 고립무원의 기분을 느꼈다. 인간은 고립무원 상황에서 공포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존인식의 경험을 통해 자기 삶의 명료성을 확인하게 된다. 시스템과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돌아보는 체험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자연인의 위치에서 작은 것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근원적 감정을 접하는 것이다. 긍정형 인간의 면모를 강화하는 과정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애써 우산을 받쳐 들고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어 보았지만 이미 젖은 몸에 사방군데서 휘몰아치는 비를 피할 구석이 없다.
비가 약간씩 줄어드는 기세가 보여 비를 맞으며 다시 오른다.
주능선을 만나 편안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아무것도 볼 수 없던 정상에서 상쾌함을 느끼다
마지막 험한 돌길을 올라서는 순간 암릉 위 정상이 하얀 운무에 싸여 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런데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시원한 공기와 사방의 하얀 운무가 끝없이 광활한 세상을 상상하게 해 준다.
한 켠에 앉아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 한마디로 꿀맛이다. 산에서 음식은 보약이자 충전재이다. 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배 고픈 뒤에 먹어서는 안되고 틈틈이 먹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암릉 위 정상이 하얀 운무에 싸여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경이로움을 선사하며 다가온다
정상 암릉을 내려서서 올라온 길로 잠시 내려가면 선어치고개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캄캄해지기 전에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길은 생각 이상으로 가파르다.
다행히도 선어치고개에 내려선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이 내려앉는다. 렌턴을 켜들고 37번 도로를 따라 차를 세워둔 중미산 천문대를 향해 걷는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이 멀찍이 비켜서 지나간다.
1.5km쯤 내려가 중미산 천문대로 들어서는 길 어귀에 "별이 쏟아지는 신복 4리 양현마을"이라는 간판이 반짝인다. 동화의 나라로 들어서는 것처럼 반갑다.
중미산 천문대로 들어서는 길 어귀에 "별이 쏟아지는 마을" 간판
중미산 천문대 쪽으로 가까워지며 보니 불이 켜져 있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아이들의 소리도 들린다. 비가 오고 운무가 자욱한 날에도 이렇게나 많이 천문대를 찾아오고 있다니 놀랍다.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그리고 매 순간 변함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하며 다가온다.
나의 산행 역시 그것이 어떤 경험으로 다가오든, 결과는 뿌듯함과 행복감을 안겨 준다. 나는 자연과 함께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이 경험은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이곳에서 언제나 가장 잘 보이는 별처럼 언제나 반짝거릴 것이다.
2.7km(국도 포함 4.5km), 2시간 이내 다녀올 수 있는 중미산 산행 지도(여럿이면 선어치고개에도 차를 두어 인도 없는 37번 국도를 걷는 것은 되도록 피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