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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ker 한영 Oct 24. 2024

5년 만에 간 그 길

HANT 첫 걷기

   사람길 국토종주길을 개척한 후 5년 만에 이뤄진 정식 HANT(Human Path Across the Nation Trail)의 첫 걷기는 내 차에서부터 시작됐다.

   첫 HANT 리본을 받아 들고 참을 수 없는 설렘으로 어디든 달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백미러에 달았더니 금세 내 차가 국토종주 차가 된 느낌이다. "그래 이걸 달고 HANT로 가는 거야."



5명의 어벤저스팀


   바로 다음날이 가을의 우리 국토를 느끼기 위해 일정 잡은 '10월의 HANT' 걷기가 있는 날이다. 아침 7시 서울 고속터미널역에 패스파인더들이 모였다. 걷기에는 한계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 분들이다.

   이 OO 님은 2030 세대로 보이는데 실은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회계 전문가로 일하며 걷기가 좋아 휴일엔 무작정 혼자 걷기 시작한 것이 전국의 둘레길을 거의 섭렵한 걷기 베테랑이다.

   박 OO 님은 퇴직 후 코리아둘레길 4,500km를 모두 걸은, 이를테면 최상위 걷기자다. 코리아둘레길 중 DMZ구간은 길이 개통되기 전부터 수차례 군부대에 의해 붙들리면서도 끝내 완주했다. 코리아둘레길 외에도 한국의 둘레길은 모두 섭렵했다. 그러다 보니 길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거의 같이 걸어 안다.

   김 OO 님은 서울시청 근무 때부터 철인 3종경기 대회에 5년간 참가한 이력을 갖고 있다. 퇴직하고 나서도 꾸준히 운동하고 있고, 자전거로 2~3일 만에 서울~부산을 주파한다. 내년엔 도보 국토종주 완주에 뜻을 두고 있다.

   같이 간 조 OO 님은 HANT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후 첫 HANT 걷기에 동행했다.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이분처럼 야생 그대로의 본능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놀라운 분이다. 깊은 산 중에 혼자 떨어뜨려도 이 분은 너끈히 살아갈 야생 생존술을 터득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생식을 하며 단 58일 만에 완주했다.

   나는 이분들께 한참 못 미치지만 걷기를 알고부터 나름 정열적으로 걸었다. 매년 '산악 50km 트레일워커'를 15시간 안에 걷는 미션을 올해까지 10번 수행했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종주산행과 전국 둘레길을 1000번 걸었다.

   이렇게 5명의 어벤저스팀이 꾸려졌다.


날것의 이 땅을 걷는다는 


   국토종주길은 특별히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하루 30Km에 가까운 거리를 산길, 둘레길, 하천길, 마을길을 가리지 않고 걷는다. 날것의 이 땅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느끼며 걷는 길이다.

    전에 '도보 국토종주' 하면 찻길인 국도를 따라 걸었기 때문에 우리 국토의 쓰임새나 지역마다 각양의 삶의 모습, 자연, 지리, 역사, 문화, 전통들과 만날 수 없었다.

   HANT는 이 땅 위에 서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 걷는 길이다. 나를 기른 국토의 진면목을 느끼고, 과거와 미래의 연결자로서 현재의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길이다. 둘레길처럼 정제된 길이 아니고, 백두대간 길처럼 산길도 아니고, 국도처럼 찻길도 아닌, 산 넘고 물 건너 마을을 만나고 논밭길을 걷는 이 땅의 날것을 체험하는 길이다. 우리 국토를 제대로 알기 위해 우리 국토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체험하는 다양한 길을 걸으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 사람길을 찾아 걷는 도보 국토종주길 HANT이다.


사람길 덕분에 발견한 보은군 타임캡슐


   오전 10시 출발지점에 내리자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다. 비 오는 것은 걷기 의욕을 북돋을 뿐이다. 5명이 손을 모았다. "항상 그렇지만 걷기엔 변수가 많습니다. 오늘은 긴 걷기지만 누구보다 걷기를 잘 아는 분들이라 인솔하는 제 마음이 편하네요. 모두의 다양한 걷기 이력이 오늘은 하모니를 이루리라 믿습니다" 파이팅 소리가 말티재 고개 너머까지 비 오는 아침공기를 가르는 기분이다.

   지도나 어디에도 소개돼 있지 않지만 말티삼거리엔 100년 후에 개봉될 보은군 타임캡슐이 있다. '밀레니엄 성황당'이란 이름으로 돌탑을 쌓고, 돌탑 앞엔 "이 시대의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하고 지역의 안녕을 기원한다"라고 쓰인 준공기가 1999년 말일자로 놓여 있다. 그 더 앞엔 어디서도 보지 못한 높이 7m의 거대 석장승 한 쌍이 타임캡슐을 지키고 있다.

   이 좋은 뜻의 멋진 시설이 잘 관리되고 있지 않은 모습에 풀이 무성하다. 이것이 수도권 집중에 소외된 우리 지방의 현주소일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나는 한마디 한다. "편한 길보다 이런 자연 그대로의 길을 걷는 것이 우리 사람길 국토종주입니다." 철인 3종경기  선생이 철인 답지 않게 답한다. "처음부터 겁나네요"



감 익는 마을에 비가 오니


   바로 수리재고개를 넘어 오창마을길로 들어선다. 소복소복 비 오는 마을 어귀에 펼쳐지는 황금들녘과 운무가 휘감아 도는 산아래 마을의 고요에 쌓인 정경이 마치 그림 같다. 그래서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사람길을 걷는다. 만약 찻길로 갔었다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없고 기억될 것도 없다. 기억을 추억으로 회상할뿐 아니라 연상으로 확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인간의 또하나의 행운의 능력이다.



   대학 때 농촌봉사활동을 갔을 때도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그때 여고생인, 집주인의 어린 조카 두 명이 방학을 맞아 와 있었는데 비 오는 대청마루에 앉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주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손톱에 뭘 발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비 오는 대청마루와 처마에 비 듣는 소리, 아래에 멀리 펼쳐지는 황금들녘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이 마을은 5년 전 첫 사람길 국토종주 때 '감 익는 마을'로 기억되는 마을이다. 마을 길가의 한 감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감을 따고 있었는데 부자간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인사하다 보니 한마디 물었다. "감을 따서 어떻게 드시나요?" "곶감 만들어요" "오 맛있겠네요. 그냥 먹어도 맛있나요?" "아뇨 떫어서 그냥은 못 먹어요" 달콤하고 쫄깃한 곶감을 떫은 감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난 그때 처음 알았다.

   5년 전 10월에도 이 길을 걸었으니 그때 그 감나무에 또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을까? 아니면 그때 보다 한 주 늦게 왔으니 그 부자가 다 따버리셨을까. 궁금증에 발길이 빨라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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