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도보 국토종주길을 위한 소고(1)
극남과 극북을 이어 국토를 관통
국토종주는 매우 중요한 화두이다. 국토종주의 본래적 개념은 국토의 가장 긴 축인 남북을 중앙으로 관통하는 것이다. 조선 중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국토의 최남단 기점을 땅끝 해남현으로 잡고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한 대로 국토의 극남과 극북을 이어 국토를 관통하며 걷는 것이 본래적 의미의 국토종주이다.
대표성을 갖는 우리 역사와 삶의 다양한 단면
국토종주는 국민들이 소중한 자신의 국토를 직접 느끼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어떤 땅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살고 있는지를 이해하므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공유하게 해 준다. 특히 국토의 중앙부를 관통하므로 본토에 쌓인 대표성을 갖는 다양한 역사의 단면을 만나게 해 준다. 또한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바닷가로 국토의 외곽을 도는 둘레길이 줄 수 없는 중심부의 주류 역사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만나게 해 준다. 즉 한 국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표성을 갖는 길이 국토종주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국토종주길이 활성화되므로 국토의 소중함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되므로 국토의 환경 보전, 전통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화두와도 연결된다.
한 국가의 가장 대표성을 갖는 길을 해외 국민 누구나 와서 걸을 수 있다면 그 나라의 개방성을 말해 주는, 즉 열린 소통 국가의 척도가 된다.
미국이 하이킹의 성지처럼 된 것은 도보 순례길을 국가가 주체가 돼 관리하는 영향이 크다. 도보 순례길에 대한 신뢰와 걷기의 가치를 국가가 주도가 되어 함양하므로 기타 수많은 트레일의 중요성이 같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도 걷기여행을 위해 미국을 찾고, 수많은 도보 유동인구를 만들어 내므로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특히 PCT, AT, CDT 등 3,000km가 넘는 국토종주 트레일이 미국의 다양한 도보길의 대표성을 갖고 걷기여행자의 유입과 유동을 통해 여타 도보길로 유인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걷기산업과 지역경제를 창출한다.
미국은 국가트레일로 지정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경관 및 역사 국가트레일만 83,000km가 넘는다. 이외 휴양 국가트레일과 이들 국가트레일로 접근할 수 있는 연결 및 주변 트레일까지 거미줄 같은 도보길을 마련해 놓고 있다.
다른 해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National Trail, 뉴질랜드의 Walkway, 호주의 Walking Track, 독일의 Wandering Route 등 폐쇄적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한 도보 국토 순례길을 활성화하므로 해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의 진면목을 보며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고 열린 소통 국가가 되는 기초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많은 선진국처럼 한국적 환경과 삶을 알 수 있는 대표성을 갖는 소통로를 확보하므로 누구나 한국을 걸을 수 있게 하고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한국의 대외신인도와 국가적 역량, 즉 국격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도보 국토종주길을 개발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일 수 있다.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엔 다른 나라엔 다 있는 도보 국토종주길이 없다.
국토순환길은 '코리아둘레길' 4,500km가 지난해 DMZ 구간까지 개통되므로 완성되었다.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국토횡단길인 '동서트레일' 849km도 올해 6월 개통 예정이다. 그런데 국토를 종단하는 도보길,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국토종주길이 없다. 예정조차 없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우리나라는 국토 이용의 밀도가 높아 별도의 도보길을 만들 공간을 찾기 힘들 수 있다. 대표적 테마길 중 하나인 평화누리길이나 해파랑길 등 많은 길들이 상당 부분 도로(찻길)를 걷게 돼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긴 축을 도보길로 잇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지자체들이 연대하기 쉽지 않다. 자기 지역 현안에 골몰하는 지자체들이 국토종주길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려면 같은 한 마음으로 큰 결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이끌어낼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 또 어느 쪽으로 길을 내느냐는 문제로 지자체 간 첨예한 이해관계에 부딪히게 되므로 이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 풍파가 많았던 한국 역사와 산업화 과정에 지금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일제와 신탁통치,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고난을 연속하여 겪었고, 이후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도보길이 무시되고 차도 개설에만 바빴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의 9대로 등 사람이 길의 중심인 사람길이 모두 사라지고 찻길로 둔갑해 버렸다. 이는 간단히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과의 단절, 한국적 정체성의 위기가 뒤따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무 성장과 발전에만 매몰돼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잃은 시기이다. 이웃 일본과 선진국들이 1960~70년대부터 국토를 걷는 도보길을 조성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이후에야 국토 도보길 조성 사업이 활발해진 중요한 이유이다.
따라서 도보 국토종주길의 개발은 우리나라가 국토종주길을 만들지 못하는 위의 중요한 세 가지 이유를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극복이 쉽지 않다. 아니, 이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대로 없는 채로 포기해야만 할까
포기하기엔 국토종주길이 가져다 줄 긍정적 효과가 너무나 많다. 다른 길로서 줄 수 없는 국토종주길만이 줄 수 있는 기대효과와 가치가 너무나 크다. 우리 대한민국도 반드시 도보 국토종주길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 세 요소를 극복하고 국토종주길을 열 수 있을까.
극복이라기보다는 문제 해소를 위한 발상의 전환을 하면 가능하다.
누구도, 어느 나라도 가져보지 못한 대한민국만의 특색을 가진 도보 국토종주길을 여는 핵심 관건이 발상의 전환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문제를 해소하고 어느 길보다, 어느 나라보다 멋진 국토종주길을 가질 수 있을까.
첫째, 적어도 국토종주길에 있어서만큼은 고정관념을 벗어야 한다. 고정관념만 벗으면 오히려 더 좋은 국토종주길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보길의 개념을 생각할 때 소위 '둘레길'이 표준으로 정착한 듯 보인다. 즉 우리나라의 도보길의 개념은 '둘레길'로 통칭되는 '조성된 숲길'의 개념에 고정돼 있다. 관 주도의, 예산과 비용을 많이 들여 조성하는 길이다. 새로 조성하는 데엔 사유재산 침해의 문제가 반드시 따라붙는다. 남의 땅을 사들이거나 양해를 얻는 과정 모두가 쉽지 않다. 분쟁 소지가 많고 만들어졌다가도 길이 자꾸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이렇게 국토종주길을 만들 수가 없다. 따라서 둘레길 식으로 길을 새로 조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
둘째, 원래의 사람길인 옛길의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 불가능한 옛길 회복이 아니라 옛길의 개념을 회복하는 것이다. 첫째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여기에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즉 우리나라가 먹고살만해진 뒤에, 그리고 모든 길을 찻길이 독점적으로 잠식한 뒤에, 도보길을 만들려다 보니 억지춘향 식의 도보길이 참 많이 만들어졌다. 한 예로 경기도 권역의 삼남길 영남길 등 지금 옛길이라 칭하는 길들을 보자. 어떻게 옛길이 산을 타야 걸을 수 있게 돼 있는가. 경기 옛길 등 고증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옛길이 알고 보면 상당 부분 억지로 만든 새 길이다. 왜냐면 진짜 옛길의 상당 부분이 찻길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옛길을 그대로 회복해서 걸을 수가 없다.
요즘 새로 만든, 이름만 '옛길'처럼 마루금을 걷는 옛길은 없었다. 오랜 시간 사람이 다니는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람길인 옛길이 찻길로 둔갑해 버렸으니, 옛길이라는 명칭이 붙은 길마저도 아주 힘들게 둘레길 조성하듯 길을 새로 조성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개념으로 국토종주길을 개발하려 한다면 영원히 불가능하다.
옛길의 개념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에 간선도로인 9대 대로는 모두 사람길이다. 우마차가 같이 갈 수 있도록 했어도 어디까지나 사람이 중심인 길이다. 교통 통신로의 역할을 해야 했으므로 주요 원과 원,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수도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편한 길, 가장 가까운 길을 열었던 것이 원형의 옛길의 정의이다. 산을 넘어도 가장 낮은 고개를 넘어간다. 이 같은 옛길의 개념을 적용한 이 시대의 길로서 국토종주길이 생겨야 한다.
셋째, 산길이나 숲길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도보길이 필요하다. 가능성과 적합성을 고려한 바람직한 국토종주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국토종주길에 대한 아이디어의 한 예로 정부는 '백두대간 트레일'의 연장을 말한다. 이 역시 구체적 계획 없는 아이디어 수준이긴 하다. 산림청은 백두대간 마루길 옆으로 홍천, 평창, 인제, 양구, 고성군에 걸쳐 둘레길 식으로 206km의 '백두대간 트레일'을 설치하고 2021년 국가숲길로 지정한 바 있다. 이런 식의 길 조성을 해남 땅끝까지 연장시키면 국토종주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일부 산악 지역에서 산길을 이용해 트레일을 조성한 것을 전국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 산이 없는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조성할까. 아니면 나머지 지역을 둘레길 식으로 조성한다고 하면 위에 언급한 세 문제점에 걸릴 수밖에 없고, 사유재산 침해와 분쟁의 문제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백두대간 트레일의 일부 구간은 탐방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자연의 '보전'이 큰 과제이고, 트레일 자체가 백두대간 마루금의 보완적 이용의 '숲길'에 한정돼 있어 모든 일반 국민이 언제나 부담 없이 걸을 국토종주길로 확장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현실적으로도 실현되기 힘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보 국토종주길의 성격과 관련한 문제이다. 즉 산길의 개념을 국토종주길에 적용하는 것의 문제이다. 산길은 그것이 마루금을 제외한 옆길이라 해도 숲과 산만 보이는 길이다. 산길을 확장하는 것은 아무리 길게 늘여도 산길이지 국토종주길이 아니다. PCT가 로키산맥 마루금을 걷지 않는 것과 같다. 산길은 지금도 백두대간길이 있다.
기본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국토종주길이 되려면 우리 국토의 다양한 모습과 쓰임새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 국토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에 베인 역사, 문화, 전통을 포함해 이 땅의 현재 이용 실상과 지역민의 다양한 삶의 모습까지 이 땅을 진정 이해하는 걷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의 동질성을 찾고 서로의 이해를 확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것이 국토종주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걷기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국토종주길이 없는 이유의 문제와 한계, 그리고 극복의 관건으로서 발상의 전환과 국토종주길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같은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고, 더 좋은 길, 즉 우리 국토의 진면목을 다양한 각도에서 느끼고 제대로 힐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을 우리나라가 가져야 한다. 또한 이 같은 국토종주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