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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맘 Sep 09. 2021

피비를 알고 달라진 것들.

이 작은 토끼가 내 삶에 펄럭인 날갯짓의 나비효과



피비를 키우기 전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동물에 대해서 매우 무지한 사람이었다.

동물을 돈을 주고 사면 안된다는 것도, 길거리의 고양이들이 매우 힘든 삶을 산다는 것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또한 화장품을 좋아하던 나는 그렇게나 수만수십만의 고문 속에서 토끼가 눈을 잃고 버려진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잘 어울리고 예쁜 색의 화장품을 사기 위해서 늘 고민했고 그걸 살 때면 행복했다.




또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인 동물이라던 토끼,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지능이 낮아서 사람과 소통할 수 없을 거라던 토끼. 가둬서 키워도 되고 물은 주지 않아도 된다던 그 토끼를, 내가 키우게 되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다. 그러나 제대로 키우는 방법을 몰라서 어릴 적 도둑이 들었던 집을 지키라고 아빠가 데려온 진돗개 ‘뽀삐’가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 가고 할머니 집으로 가면서 좁디좁은 2층 난간 앞에 묶여 있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뽀삐가 좋아서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뽀삐가 좋아하는 ‘사또밥’을 사 가곤 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 큰 개를 감당할 수 없었던 할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개장수에게 줘야겠다’고 했을 때도, 얼마 뒤 뽀삐가 보이지 않았을 때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뽀삐가 보신탕 집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무지했던 주인이었던 우리들을 원망하면서 말이다. 아니 아마 마지막까지도 기다렸겠지.. 자기를 구해주기를.. 이건 내가 7-10살 때 기억인데, 이 기억이 나이 먹고 이제 와서 기억이 난 것도, 불현듯 뽀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 눈물이 난 것도, 그리고 언젠가 다시 뽀삐를 만나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전부 내가 ‘피비’를 만난 후 생긴 감정이었다.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한낱 토끼도 감정이 있고 감정을 표출하고 삐지기도 하고 화도 내고 기분 좋다고 표시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피비는 거기에 더 나아가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도 했었다. 된소리를 잘 알아 들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밥 대신에 귀엽게 말하느라 ‘빠삐’ 먹을래?라고 하고 간식 대신 까끼를 귀엽게 하고 싶고 빠삐와 라임을 맞추려고 ‘까끼’라고 한 건데, 빠삐와 까끼를 알아들었다. 그래서 사료통을 흔들지 않아도 그냥 빠삐 먹고 싶냐고 말해도 알아듣고 빠삐가 있는 쪽으로 가 있곤 했었으니까.





그 후 피비가 자기가 먹고 싶을 때 입을 뻐끔거리는 걸 알아냈고, 내가 빠삐와 까끼를 먹겠냐고 했을 때 먹을 것에만 입을 움직인다는 걸 알아냈다. 그래서 그 후 몇 가지 단어들을 된소리로 만들어서 알려주었을 때 피비는 정확하게 자기가 먹을 것에만 대답을 하곤 했다.





피비가 알아듣는 단어는 ‘빠삐 (사료), 까끼 (간식, 처음에는 건과일이었음), 땡초 (생초를 된소리로 발음을 하다 보니 땡초가 됨), 락토 (락토라는 유산균이 있었음), 뉴산깅 (유산균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서 억양을 줘야 알아들음), 뽀두(파파야), 빠빠야(파파야 타블렛이었는데 품절됨), 올라가, 기다려, 마떼, 하지마, 이리와 (혼난다고 생각함), 따과 (건사과), 애뿌르 (아주 잘게 다져진 건사과), 악티부 (액티브이라는 영양제)’등이 있었다.




이 사실은 내 인스타그램에서 오래 피비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피비는 특히나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 그냥 우연히 움직이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텐데, 나 역시도 그런 의심이 들어서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고 이름의 높낮이도 바꿔 보기도 했는데, 피비는 확실히 자기 이름 석자 ‘최피비’ 그리고 ‘피비’를 알고 있었다. ‘대답’이라고 하면 입을 움직여야 하는 걸 알아서 이름을 불러도 화가 나면 대답을 하지 않을 때는 내가 화난 목소리로 ‘대답~!’이라고 하면 입을 마지못해 뻐끔거렸으니 말이다.





난데없는 내 토끼 피비 자랑을 하게 된 건, 그만큼 토끼도 똑똑하고 사람과 교감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내 발밑으로 와서 자기 이마를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들이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근처에서 가만히 누워 있는 것으로도 이 아이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고 나도 이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비가 오고 나서 나는 매우 크게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었고, 삶의 방식도 달라지게 되었다.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느끼고 알고 보고 다 한다면, 그리고 나에게 토끼가 이렇게나 소중하다면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내가 만나든 안 만나든 그들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에 밥을 주기 시작했고,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주기 위한 파우치를 챙겨 다니게 되었다. 한 번은 관악산 정상에 등산을 갔는데 고양이들이 있는 걸 알고는 몇 번을 고양이 밥을 2킬로나 가지고 등산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동물 털로 된 옷은 입지 않게 되었다. 구스털 대신 웰론솜이 들어간 제품을 사고 라쿤털 대신 인조털이 있는 겨울옷을 샀다.

또 나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찾아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쓰고 있던 화장품은 전부 바로 처분을 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브랜드를 찾아서 전부 바꿨고, 그 브랜드가 후에 다시 동물실험을 하기로 회사 방침을 바꿨을 때는 그 브랜드도 손절했다.


그리고 나는 적은 금액이라도 동물단체에 기부를 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길거리 비둘기들이 무섭지 않았고, 어딘가 묶여 있는 진도믹스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사를 간 후 알게 된 50센티 줄에 묶여서 사는 공장지킴이견 ‘또또’라는 친구를 3년 넘게 거의 매일 가서 간식을 주고 오고 있다. 그 이유는 또또가 기다릴 거라는 걸 알아서다.

피비가 감정이 있었듯 강아지 또또는 더욱더 나와 소통이 잘 되고 사람 말을 더 정확히 잘 알아듣는다. 그런 또또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힘들어도 매일 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 피비는 나에게 세상의 약자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불행하게 만든 동물들을 작게나마 적게나마 도울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나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피비를 만나고 나는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또 나는 피비를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도 했다. 이처럼 고작 2만원에 들판에 갖다 버려도 아무도 모를 토끼 한 마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생명은 없다는 것을,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은 귀중하다는 것을 매일매일 가르쳐 주었다.





이 작은 토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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