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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ul 03. 2023

그 남자네 집

 20대에 레 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개선문’ 등의 전쟁 관련 프랑스소설에 빠진 적이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인간애가 아름답게 느껴져서 좋았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관련된 사랑 이야기, 그것도 여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소설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이 섬세한 묘사와 함께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과 나의 청춘의 기억과 추억을 재소환해 주어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전쟁터에서 부상으로 돌아온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남자와의 첫사랑, 그러나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은행원과 결혼하고서도 밀애를 이어가며 서로를 갈망한다. 그러다 삶의 질곡을 겪으며 마침내 육체를 뛰어넘은 인간적 만남으로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며 각자만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인간적으로 익어가게 된다.

 전쟁통에도 첫사랑에 빠진 그들에게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이 세상이 천국처럼 여겨졌던 그 남자네 집. 그러나 현실적인 선택 앞에서도 끝나지 않던 청춘의 뜨거운 피는 서로에 대한 갈망과 불장난 같은 도전과 모험이 혼자만의 가슴앓이로 싱겁게 끝난다.

      

 아마도 이 장면에서 독자들은 그들이 감히 실행해보지 못한 선을 넘는 도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에 대한 미련을 씁쓸한 미소로 해묵은 회한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 미완성이기에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못하며 그게 첫사랑의 속성이지, 그러니 이제는 미련 없이 흘려버리자는 실없는 다짐과 함께.  

   

 비록 전쟁상황은 아닐지라도 70년대 가난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성공을 위한 또 다른 전쟁을 벌이던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떠했는가? 특히 여성으로서의 내 삶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남성중심적 사회체제와 치열하게 맞서야 했다. 

 게다가 민주화라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던 일들은 형태는 다를지라도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나 청춘들이었기에 나름 낭만적이었지만 서툴고 어리숙한 선택과 기억들로 만감이 교차하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누군들 자신의 선택에 다 만족할 수 있을까마는.  

   

 그러나 이 시점에서 지나온 여정들을 되돌아보면 아쉽고 불안했고 뭘 몰랐던 어리석음과 다행스러움을 넘어서 어쩔 수 없는 수용으로 그 모든 순간을 포용하며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그래서 지금의 나로 이렇게 늙어가며 이나마 성숙해 왔지. 아쉽고 안타까워도 그 모두가 다 나의 선택이었고 내가 걸어온 길이기에 운명으로 여기며 담담하게 바라보게 된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이 땅 어느 구석엔 가에 각자 나름의 ‘그 여자네 집과 그 남자네 집’이 있다.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들 모두를 가슴에 품고서 지난 일들과 인연 닿았던 모두에게 멀리서나마 엷은 미소와 희미해져 가는 기억으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듬뿍 축복을 보낸다. 

 그러면서 지금의 쉰내 나는 우리에게는 끓어오르던 그 빛나던 청춘의 설렘조차 없었던 사람처럼, 마치 지나온 발자취마저 서서히 세월에 의해서 지워진 사람처럼, 무심하고 담담하게 지금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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