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화 Jan 02. 2024

새해맞이

 가시가 있는 나무는 처음 자라는 동안에는 수많은 가시로 무장한다. 일종의 생존본능으로 살아남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라서 사람이나 다른 짐승으로부터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느끼면 가시가 성글어진다. 가시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시보다는 부드러운 잎을 만들어 탄소동화작용을 이어가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 성장을 이어가다 보면 가시도 사라지고 마침내 가시가 돋았던 흔적마저 지워지게 된다.      

 식물의 놀라운 성장 과정으로 사람이 성장하는 단계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어릴 적에는 보호본능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가시로 무장한다. 누군가 건드리면 바로 상처를 주며 방어하지만 성장해 감에 따라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진 가시가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방어기제만으로는 더는 삶을, 진정한 삶과 적절한 관계를 누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심리적 방어기제에서 벗어나서 부드러운 새 이파리가 돋아나게 되어 자신을 넘어선 전체 우주의 기운을 흡수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 안의 가시의 흔적마저 치유해서 지워버리며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머리에 이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존재였던 것처럼 초연하게 살아가게 된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인가? 당신은? 아직도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 보호해야만 한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이런 유아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가시가 성글어지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한창 가시의 흔적마저 지워나가고 있는가? 

 나무들이 가시를 만드는 이유는 결국 살아남아서 세상에 존재하는 본디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상에서 살다 보니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며 가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성장해서 자신의 힘을 회복하게 되면 가시 없이도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을 이어가는 법을 익혀나가게 된다. 더구나 날카로운 가시보다 부드러운 미소와 손길이 더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런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서 가시를 버리고 가시를 지녔던 흔적마저 지우며 성숙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쉼 없는 용서와 정화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런 성장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건너뛸 수는 없다. 그 단계마다 의미가 있고 각각의 단계를 통해서 여물어가지만, 특정 단계에 집착하거나 고착되게 되면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계속 가시를 지닌 채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더 성장할 수 없고 해탈을 통해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관계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한 손실은 없다, 내 삶을 놓치기에. 그래서 용서와 정화는 나와 함께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삶의 길이기에.      

 용서한다고 하면 마치 용서받는 사람에게 좋은 일 같지만, 사실은 용서하는 사람이 가장 큰 은혜를 입는다, 더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어둡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며 스스로 벗어나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용서하면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오래전에 용서했지만 스스로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스스로 메여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 안에 남아있는 가시는 무엇인가? 그 흔적은 얼마나 남았는가? 아직도 원망과 후회로 되씹고 곱씹으며 버리지 못한 삶의 과정에서의 부산물들이 남아있는가?      

 새해가 진정한 새해일 수 있는 것은, 그런 흔적마저 버리고 마치 한 번도 상처받은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갈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맞이할 때 진정한 새해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푸톡사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