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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Oct 25. 2023

하고싶은말 다 하고 사는 우리 엄마

엄마, 나에게도 말조심좀 해주세요

둘째가 12개월인가 18개월쯤이었다. 예방접종을 하고 다음날인가, 아이 목에서 커다란 혹이 만져졌다.

목 언저리에 만져지는 혹은 임파선이 부은거라는 말을 종종 들은 적이 있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소아과 진료할때 물어봤다. 감기나 접종 후에 생길 수 있고, 열이 많이 나거나 아파하지 않으면 몇달 뒤에 없어질텐데 길면 6개월정도 걸릴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안심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나서 만져보면 그 큰 혹이 없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옆에 작은 혹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소아과 갈 일 있을때 또 여쭤보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 6개월을 훨씬 넘겼는데 여전히 혹이 사라지지 않아서 소아과에 또 물어봤다. 선생님은 이렇게 길게 갈 수도 있지만, 혹시 확인을 해보고 싶다면 내과에서 초음파로 촬영하고 조직검사를 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까지 검사해봐야 하는 상황인건지 물었지만, 촉진 말고는 달리 확인할 길이 없는 소아과에서 더 이상의 판단을 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심각하게 조직검사를 권유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므로, 일단 알겠다 하고 소아과를 나왔다.


그리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실 잊고 살았다. 그동안 애가 아프다고 한 적도 없고 늘 잘 먹고 잘 자고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 새로 취업한 곳에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이들 문제는 심각한 사고가 아닌 이상 나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둬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확인되지 않은 몸 속의 혹을 대수롭지 않은 임파선염이겠거니 하고 그냥 두는게 찜찜했다. 별일 아니겠지 싶다가도, 혹시 이러다가 큰 병을 방치하는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가끔 엄습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으므로 몇달을 더 묻어두고 살았다.


그러다가 퇴사를 했다. 이제 시간이 생기자, 그동안 미뤄뒀던 그 찜찜함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 혹이 생긴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혹은 작아지거나 없어지기는 커녕, 외관상 눈에 보일 정도여서 혹시 더 커지고 있는건가 하는 불안감도 생겼다. 주변에서도 찜찜해하지말고 내과에 가서 확인해보는게 상책이라고 해서 동네 검진 가능한 내과를 예약하고 갔다.


초음파를 상세히 촬영하고 의사선생님을 만났는데, 당연히 별거 아니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던 내 기대와는 달리, 혹이 너무 크니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조직검사는 전신마취가 필요하고 조직을 많이 떼야 해서 바늘도 크다고 했다. 애가 고생하는것도 문제지만, 조직검사 결과가 안좋으면? 림프절에 생긴 혹이 나쁜 경우라면 아주 힘든 병일 터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근처에 사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보는 엄마에게 숨길 수는 없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엄마는, 안그래도 걱정인형인 분이라 밤잠을 못자며 저 작은 애기의 목에서 어떻게 조직검사를 한다는건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 나를 붙잡고 임파선염은 흔한거 아니냐, 네가 보기에 커진것 같냐, 열도 안나고 밥도 잘먹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 조직검사를 꼭 해야하는거냐, 그냥 두면 어찌 되는거냐 연일 질문공세였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건 한정되어있었다. 그냥 지켜보래서 지켜보다가 걱정되면 내과검진을 해보라 한거다, 난 걱정이 되니까 내과검진을 받은거고, 거기서 대학병원 가보라 하는데 내가 무슨수로 그냥 두냐. 조직검사 이후 상황이 나쁜 경우는 미리 생각하고싶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말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엄마는 급기야 망언을 했다.


"네가 한가해서 그래. 한가하니까 내과 가서 초음파를 보고 조직검사 하겠다 하지. 너가 바빴어봐. 그냥 뒀을거아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한가해서 조직검사를 한다고? 지금 이게 내가 심심해서 하는 짓인가?

저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한가해서 검사하는거다 + 넌 왜 한가하냐(빨리 일을 시작해라)

하긴 엄마는 내 귀를 의심하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불만이 있을때 여과없이 쏟아내는 분이라, 마음의 상처를 입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언젠가는 터뜨려서 엄마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노고를 쏟을 체력이 없고, 수십년을 묵혀와서 이제 나의 우선순위에서 계속 내려가고 있다.

그냥 뒀다가 큰병이면 어쩔라고 그래! 하고 버럭 소리질러 더이상의 망언을 막았지만, 불쾌한 감정은 '엄마' 라는 감정보따리에 한가득 추가되었다.


다행히 대학병원 예약이 빨리 잡혔다. 촉진과 문진을 하신 교수님은, 크기가 커서 추가 검사가 필요하긴 한데, 모양이 그리 나쁘진 않으니 일주일 정도 뒤에 초음파를 다시 해서 그 사이의 추이도 좀 살펴보고, 힘든 조직검사 전에 피검사를 먼저 해보고, 그러고도 필요하면 그 때 조직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당일에 바로 피를 뽑고 일주일 뒤의 피검사 결과와 초음파 진료를 피가 말리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엄마는 피를 뽑을때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마음아파했지만, 병동과 과 이름을 보고 심장이 얼어붙었는지, 검사가 고생스러워도 별일 아니기만을 바라며 더 이상 나에게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피검사 결과도 깨끗하고 초음파 상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단, 혹시 모르니 3개월 뒤에 초음파와 피검사를 다시 하자고 했다. 며칠간 졸인 심장을 드디어 한숨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기분좋게 병원을 나서며 엄마는 또 한마디 하셨다.


"3개월 뒤에 초음파만 하면 안된다니? 피검사 하는데 너무 울잖아. 굳이 고생하면서 피 또 뽑지 말고 초음파만 보시라 그래~"


더이상 대꾸도 하기 싫다. 엄마가 의사해. 라고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그러고보면 언니한테는 이런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언니는 차갑고 칼같은 구석이 있어서 되도 않는 말은 접수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해야하나보다. 물러터진 막내딸이어서 이래라 저래라 망언을 서슴지 않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나에게도 말조심을 해줄까. 이제부터 좀 쎄한 느낌을 드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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